우선 이 작품을 몇 번이나 읽었다. 리뷰를 쓸까 말까도 몇번 망설이다 그만두었다. 딱히 뭔지 모르겠는데 끌리는 건 분명히 있고 끝까지 읽게 하는 힘은 있는데 뭔가, 뭔가, 그게 뭔지 모르겠는 뭔가가 좀 부족하단 느낌 때문이었다. 사실 여전히 그 ‘뭔가’가 뭔지 확실치 않다. 여전히 리뷰를 쓸까 말까 하면서 쓴다. (리뷰를 쓰다 보면 알게 되려나?)
내가 이 소설을 읽기 시작한 건 파리라는 낯선 배경과 책에 관련된 이야기라는 점이었다. 난 책과 작가가 관련된 이야기는 그게 어떤 종류의 이야기든 끝까지 읽는 버릇이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이 소설을 읽게 되는 것과는 조금 다를지 모르겠다. 작가에 관련된 이야기라 나는 이 소설을 끝까지 읽었지만 다른 독자들이 이 이야기를 끝까지 읽게 되는 건 어떤 이유 때문일지 사실 잘 모르겠다. 특별히 흥미를 끌만한 사건이 별로 없고 전개가 평이하기 때문이다. 다만 만국어번역기라는 새로운 기계가 등장하기 때문에 그 호기심 때문에 읽게 되는 독자가 있으리라는 생각은 든다.
만국어번역기는 이 세상에 존재한 적 없던 새로운 기계임은 분명하다. 사람 하나가 들어가기에 충분한 크기의 커다란 상자. 거기에 책을 올려놓으면 바로 번역이 되는 신기한 물건. 모든 번역가들을 실업자로 만들만큼 획기적인 물건이다. 사람이 한 것보다 더 좋은 번역을 해내는 이 기계에 대한 테스트 겸 감수를 위해서 고용된 ‘나’는 그 일 외에도 다른 속셈이 있다. 바로 자신이 쓴 소설을 파리에서 번역해서 출판하고자 하는 거다.
번역가였다가 실업자가 되고 이제 작가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라 만국어번역기에 대해 별달리 위협을 느끼지 못 하는지도 모르겠다. 주인공은 본국에서 환영받지 못한 소설, 대중적이지 않고 마이너한 작품이라 거절당한 자신의 작품을 이곳, 파리에서는 출판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에만 전념하는 것처럼 보인다.
빠듯하게 맡겨진 일을 처리하기 위해 번역되지 않은 책들을 찾아 파리의 서점들을 돌아다니고 이야기 처음에 등장했던 노번역가를 다시 만나 대화하고 틈틈이 자신의 소설을 번역시키고 파리 구경을 하면서 시간이 흘러간다. 만국어번역기는 완벽해 보인다.
번역된 자신의 소설을 읽기 전까지는. 문장이 조금씩 바뀌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당신을 사랑합니다’가 ‘달이 아름답다’로 바뀌어 있다. 기계가 문장을 바꿔놓다니… 이제 만국어번역기가 달라 보인다. 설명서를 찾고 보니 그 기계 이름이 비비라는 것도 알게 된다. 잘 쓴 글의 경지, ‘프로의 세계’는 훨씬 더 높은 곳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데 비비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건 씁쓸하기도 하다. 다음날 만난 노번역가에게 자신의 소설을 보여주자 그도 재밌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달이 아름답다’는 문장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 장면은 번역가와 작가의 차이를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제인에겐 이후에도 많은 일들이 일어난다. 노숙자가 되어 글을 쓰면서 비참한 생활을 계속 한 끝에 신작과 비비주니어를 완성해낸다.
그리고 만국어번역기가 말을 걸기 시작한다. 근데 여기서 의문 하나, 비비주니어는 핵심 부품을 모방해서 만든 기계인데 어째서 비비일 때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걸까? 솔직히 이 부분은 지금도 갸웃거리는 부분이다.
후반부 만국어번역기와 제인의 대화는 뭔가 쓰기는 쓰지만 출판하지 못한 작가들이 느끼는 비애를 표현하고 있어서 좋았다.
그러다가 찾아온 언니가 만국어번역기가 더 큰 일을 할 것이라며 일자리를 제안한다. 그리고 제인은 비비에게 ‘최고걸작’이란 네 단어를 써서 올려둔다. 그 장면에선 많은 걸 생각하게 됐다.
결국 작가마저도 대체 가능하게 되는 순간의 도래를 기다리는 느낌. 씁쓸하기도 하고 비비주니어를 만드는 것보다 어려운 것이 출판할 작품이라는 것도 아이러니인데 비비는 최고 걸작도 아무렇지 않게 써낸다는 이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지점은 참 좋다고 생각하는데 이걸 좀 더 극대화시키고 단숨에 읽어내게 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나는 이 소설의 줄거리를 잡아내는 것에 좀 애를 먹었다. 전개가 평이한 것처럼 보이지만 한 줄기로 오롯이 떠오르진 않는다. 나만 그런지 모르지만 앞서 말한 문장의 여백 없음과 별개로 뭔가 쉽게 읽히지 않고 약간 산만하고 장황한 무언가가 있었다. 그게 아마 확실치 않으며 부족한 그 ‘뭔가’인 것 같다.
다 쓰고 났는데도 그 ‘뭔가’를 확실히 설명할 순 없다. 그래서 입이 쓴 건지 기계에게 모든 걸 내줘야 하는 이 현실이 입이 쓴 건지… 아무튼 이 소설을 읽고 나면 좀 안타깝다.
* 앞 부분 가독성 관련 부분은 수정된 것 같아서 삭제했고 스포일러의 줄거리 요약이 너무 상세한 것 같아서 조금 줄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