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끼고 있는 소도시, 고등학생 한 명이 산 속에서 목을 맨다. 결코 작은 일은 아니었지만, 일어날 수 없는 일도 아니었다. 게다가 그의 아버지는 죽은 지 오래였고, 어머니는 캄보디아에서 온 사람이었다. 죽은 장은 반은 한국, 반은 동남아 피가 흐르는 캄보디아 혼혈인이었다. 공부 머리가 없어서 운동을 했으나 그 역시 시원 찮아서 대학 지명을 받지 못했다. 그러니 그의 죽음에 대해서 그다지 안타까워하는 사람은 없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말이다. 사인은 자살이었지만 주인공을 비롯한 축구부원들은 누가 실제로 장을 죽였는 지 알고 있었다. 아마 그들 말고도 꽤 많은 사람들이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대체 축구부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어릴 때 죽은 친구는 그냥 잊어버리게 돼. 몇 년 지나면 이름과 얼굴도 기억이 안나더라. 어린 나이에 받아 들이기에는 너무 큰 일이라 마음이 그냥 지워버리는 거지.”
그러나 과연 그럴까, 주인공 나는 장이 죽은 여름에서부터 늦은 가을까지 일어났던 일들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나’와 ‘장’은 중학교에서 처음 만나 중학 축구부에 동기로 들어가 금방 친해졌다. 그리고 고등학교까지 같이 가게 되었고, 축구부 생활 역시 계속 이어진다. 학교 밖에서든, 교실이든, 운동부 합숙소든 어디에나 폭력은 있었지만, 그들과 동기들은 어느 정도 그에 익숙했고, 나름 마음 편하게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재단 이사장의 아들이 코치로 새로 부임하게 되면서 악몽이 시작된다. 욕설과 구타를 일삼는 코치의 주요 타켓이 된 것은 바로 장이었다. 동남아 혼혈이라는 이유로 장은 집요하게 괴롭힘을 받게 된 것이다.
이야기는 인종차별로 시작해, 학내구타, 사학비리 등 한국 사회가 가진 병폐들로 인해 익숙하게 전개되는 듯 보이지만,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방향으로 오싹함을 안겨 준다. 폭력과 차별로 점철된 악몽이야 학창 시절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스토리에서 자주 등장하는 플롯이지만, 저자는 그것을 민간신앙과 복수라는 테마로 풀어내 무섭지만 가슴 시린 슬픔을 안겨 주는 독특한 작품으로 만들고 있다.
“그냥 이대로 넘어 가는 거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스토리는 중반 이후부터 전혀 현실같지 않은 복수의 방식으로 독자들을 어리 둥절하게 만든다. 마치 꿈속에서 꾸는 꿈처럼 말이다. 아들을 죽인 놈에게 복수하기 위해 장의 어머니가 나를 찾아 온다. 그리고 이어지는 후반부의 마지막 경기 장면은 보기에 불편할 만큼 엽기적이지만, 그에 못지 않게 슬프고 마음이 아프다. 호러지만 가슴이 먹먹해지는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