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할 나위 없이 요즘 날씨와 잘 어울리는 작품!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피오니호스텔 (작가: 한정우기, 작품정보)
리뷰어: 피오나79, 18년 7월, 조회 42

중국 사람들은 음력 7월을 귀신의 달로 여긴다고 한다. 특히 음력 7월 보름날에는 천국과 지옥의 문이 열리고, 돌아가신 조상을 포함해 모든 혼령과 귀신이 땅으로 내려온다고 믿는다. 이들 혼령을 위로하기 위해 음식을 바치고 향을 피워 제사를 지내며, 종이돈을 태워 공양하거나 경극 공연으로 혼령들을 즐겁게 하는 날이 바로 중원절이다. 이 작품은 바로 그 지옥문이 열린다는 중원절에 타이난으로 여행을 간 남자가 겪는 일을 그리고 있다.

목요일부터 월요일까지 출장을 가야하는 회사의 거지같은 일장에 투덜대며, 그래도 대만의 거래처가 주 5일제를 칼 같이 지키는 덕에 남자는 주말에 시간을 내어 타이난으로 여행을 가기로 한다. 숙소는 피오니 호스텔, 감성 가득한 이름이지만 최소한 50년도 넘어 보이는 오래된 호스텔이었다. 그의 방은 504호. 중국에서는 숫자 4를 불길하게 여겨 쓰지 않으므로, 실제로는 404호인 셈이다. 죽을 사가 두 개인 방, 과연 그에게 무슨 일이 벌어질까.

이 작품은 묘사가 굉장히 뛰어나 읽는 동안 독자들을 그야말로 타이난의 거리 한 복판으로 데려 간다. 남자가 느끼는 숨이 턱 막힐 정도의 뜨거운 열기와 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 느낌까지 고스란히 그대로 말이다. 중원절을 지내는 도시의 풍경, 낡은 호스텔의 을씨년스러운 느낌, 대만 특유의 컬러와 무더운 날씨, 이국적인 향신료 냄새까지 모든 게 생생하게 살아 있는 글이다. 요즘은 워낙 서사에만 치중하느라 문장에 공을 들이지 않는 이야기들이 많은데, 뛰어난 묘사야말로 허구의 세계를 진짜라고 속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도구이지 않은가.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짧은 분량이 아쉬울 정도로 잘 쓰여진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이제 다음 주 부터 본격적인 휴가철이 시작되는데, 어디론가 떠나고 싶지만 이런 저런 여건으로 갈 수 없는 이들에게 추천한다. 이 작품을 읽는 동안에 당신은 대만을 여행하는 듯한 느낌이 들테니 말이다. 대만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로 종종 우리나라의 경주나 일본의 교토와 비교되는 곳 타이난. 빈티지와 아날로그 그리고 고풍스러움이 동시에 상존하는 그곳에, 작가는 서늘하고 오싹한 정서를 함께 풀어 놓는다. 여행물로도, 호러물로도 더할 나위 없이 요즘 날씨와 잘 어울리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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