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크 소리로 소설은 시작된다. 누군가 문을 두드리고 있는데 문밖에 누가 서 있는지 모른다면 이미 호기심이 생겨버린다. 주인공은 그렇게 예상치 못한 낯선 방문객을 맞이한다.
당신은 문밖의 손님이 누군지 모른다. 당신은 무기력하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집안 꼴은 엉망이다. 그러한 당신에게 꼭 필요한 손님이 방문했다. 바로 가사도우미.
가사도우미형 안드로이드 AHA- 112라고 소개하는 로봇이 집안으로 들어온다. 너무도 쾌활하고 싹싹하게 할말 다하며 기쁘게 노동까지 하는 여성 로봇이 집안 청소를 시작한다. 그러나 이 손님이 반갑지 않은 이유가 따로 있다. 이 로봇은 파산자를 위한 생활보조 사업이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파산했고 모든 재산이 법원으로 넘어간 상태다. 가사도우미도 그쪽에서 보내준 서비스의 개념이다.
그래서 주인공은 이 가사도우미의 출현이 반갑지 않다. 처음에는 이 로봇이 달갑지 않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자살할까봐 혹은 도망갈까봐 감시하러 온 것이 아닌가 의심하고 시간이 좀더 지나서는 며칠 후 거주지를 옮겨야 할 때를 대비해서 미리 청소를 하러 온 것이란 생각도 하게 된다. 결국 파산자를 위함이 아니라 남겨질 집을 청소하기 위한 가사도우미다. 주인공은 이내 쓰레기통까지 내주고 체념을 하고 외출까지 하고 온다. 여기까지는 다분히 비즈니스적이다.
‘그러나 이야기가 계속 될수록 비즈니스적이지만은 않은 영역으로 넘어간다. ‘재개발에 가까운 대청소’를 하면서도 시종일관 쾌활한 로봇과 여전히 침울한 집주인의 대비가 마음 저 밑바닥을 흐뜨러뜨린다. 인간보다 더 따스한 안드로이드에게 작은 위로를 받아야 하는 인간의 슬픔 같은 것이랄까.
이 시대는 아이도 로봇들이 키우기 때문에 부모가 만지는 것조차 찝찝하다는 시대란다. 안드로이드에게 귀를 맡기고 편안해하며 안드로이드의 온기가 불편하지 않으며 살풋 잠에 빠지기까지 하는 것을 보면서 가장 인간적이라고 해야 할 감정조차 로봇들에게 얻어야 하는 시대가 온다면 정말 인간들은 무엇으로 어우러져 살게 될까 하는 궁금증이 인다.
서툰 손글씨로 ‘힘내세요’라는 메모까지 남기고 간 가사도우미 로봇이라니. 정말 최강이다.
저런 로봇이 있다면 정말 편하겠구나 싶은 생각 한편으론 정말 저런 로봇들이 존재하는 시대에 산다면 저렇듯 뛰어난 존재에게 더 많은 인간들이 대체 가능해질 것이고 선택 못 받은 것에 대한 비애와 절망감이 더 커질 것만 같다.
남자들은 잔소리만 늘어놓고 이것저것 요구하는 아내보다 암말 않고 힘든 가사노동도 척척 다 해내고 친절하고 다정하고 여늬 여자보다 따스한 이 가사도우미를 사기 위해 혈안이 되지 않을까? 그러다 보면 점점 더 계산적이게 될 수밖에 없고 배우자로서 인간을 찾기보다 언제나 대체 가능한 안드로이드를 구매하는 쪽으로만 발전하게 되지 않을까 그러다 보면 결국 인간간의 단절은 더욱 심화될 테고 …. 이야기 외적인 온갖 두려운 상상들이 따라붙는다. (내 상상은 왜 이런쪽으로 흐르는지 모르겠다.)
물론 소설속에서 주인공은 최악의 상황속에서 이 하루만큼은 그래도 특이한 안드로이드에게 위로 받고 있는 건 확실해 보이니 다행이지만 말이다 .
읽고 나면 조금 씁쓸하면서도 먼 미래에 어쩌면 가능할 수도 있는 이 상상의 발랄함에 슬쩍 미소짓게 된다. 그리고 파산에 더해 왠지 추후에도 계속 그 가사도우미를 그리워할지도 모를 주인공이 가엾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