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게 열려있는 SF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수행자들 (작가: 박낙타, 작품정보)
리뷰어: Lasxtono, 18년 7월, 조회 89

리뷰에 앞서서, 말하고 싶은 건 많아도 글 쓰는 재능은 없는지라 두서없는 글이 될 것 같으니 양해 부탁드려요.

SF는 오랫동안 ‘공상과학소설’로 불려왔습니다. 일본 번역어를 비판 없이 그대로 받아들여 사용하는 일례지만, 현재도 그렇게 칭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합니다. 이 단어에 담겨있는 함의는 ‘공상’, 즉 현실에 없는 빈 상상이라는 말이 보여주듯이 비현실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 그 자체입니다.

우리나라는 근현대 역사를 거치면서, 현실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관념을 멀리하는 풍토를 쌓아올렸다고 생각합니다. 대박났거나 이름있는 소설, 영화들을 보면 사회비판적인 요소가 없는 컨텐츠를 찾아보기가 힘들죠. 시사성이 없는 이야기는 한국에서 인기를 끌기 어려워 보입니다. 소위 ‘허무맹랑한 이야기’에 대해 말을 꺼내면 사람들은 “그건 말도 안 된다”거나, “실제와 허구를 구분 못하게 된다”거나 “그게 사는 데 무슨 도움이 되느냐” 라고 말하기 일쑤죠.

하지만 저는 현실에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이야기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면 그 자체로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소설이라면 감정이나 묘사를 중요시하는 일반 소설보다는, 논리적인 일관성을 갖춘 이야기를 자신의 독창적인 세계 속에서 자신만의 룰에 따라서 풀어나가는 SF가 더 위대하다고 생각하구요. 검증된 현대 과학 법칙을 꼼꼼히 따라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테드 창의 <일흔 두 글자>에는 사물의 진명을 연구하는 ‘명명학’이라는 가상의 학문이 등장합니다. 현실세계에서는 전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지만, 소설 속의 세계에서는 주인공이 겪는 문제도, 해결 방법도, 결말도 작중의 보이지 않는 논리적 규칙의 틀 안에서 움직입니다. 그 자체로 우리 삶에 직접적인 교훈을 주거나 도움이 되진 않아 보입니다. 하지만 그 구조는 완벽하게 돌아가는 기계장치처럼 아름답습니다. 골드버그 장치처럼요.

서론이 길어졌습니다만, <수행자들>의 흡입력은 대단합니다. 간결하고 힘있는 문장 덕분에 술술 읽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장면에 도달했을 때는 순간 정신이 멍해졌습니다만, 개인적으로 수행자들의 열린 결말은 떡밥을 회수하지 못한 게 아니라, 회수할 필요가 없도록 잘 짜여져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정말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다음 소설 기대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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