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속의 레즈비언들 / 백합물과 “동성애 코드” 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졸업식 (작가: 김태연, 작품정보)
리뷰어: HaYun, 18년 7월, 조회 987

지금 아래에 쓴 것들은 모두 이 글에 대한 리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다른 모든 경향들과 리뷰들에 대한 것이기도 합니다.

 

냉장고 속의 레즈비언들

냉장고 속의 여자들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스토리를 위하여, 그러니까 남자 주인공의 각성이나 전환점 같은 것들을 위해서 여자 캐릭터들이 죽거나, 살해당하거나, 성폭행 당하거나 하는 현상들을 말합니다. 이 말은 1999년 그린랜턴 시리즈의 주인공 카일 레이너의 여자친구 알렉산드라 드윗이 악당들에 의해 살해당하고 냉장고 속에 유기된 것에서부터 시작된 비유입니다. 만들어진 것은 20년도 안 되었지만, 거슬러 올라가면 그리스 신화에서도 영웅 헤라클레스의 전설도 아내 메가라와 자식들을 헤라의 저주에 의해 자신의 손으로 죽이면서 시작됩니다. 슈퍼히어로물에서 특히 두드러지기는 하지만 다른 장르의 소설에서도 굉장히 많이 나오고는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꼭 여성 캐릭터들에게 한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경향이 좀 더 심하게 나타나는 캐릭터는 여성 성소수자 캐릭터입니다. 이전 시대에 성소수자 캐릭터들이 악역의 속성으로 나타나곤 했습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인어공주(1989)에 나오는 마녀 우르술라는 드랙퀸 배우이자 가수인 디바인의 모습에서 따온 것이고, 짱구는 못말려 극장판 핸더랜드의 대모험(1997)의 악역은 중성마녀(오카마마녀)들이었죠.

반면에 최근에 등장하는 성소수자 캐릭터들은 덜 악역입니다. 대신에 많이 죽습니다. 2015-2016년 동안 미국 TV 쇼에서 살해당한 여성 성소수자 캐릭터는 전체 살해당한 캐릭터의 10퍼센트 정도라고 말합니다. 분명 그들이 그 전체 등장 캐릭터의 10퍼센트 정도로 나오지는 않는데 말입니다. 악역의 자리에서 물러난 대신 살해당하는 것입니다. 평화적으로 시위하다가 어설픈 진압에 의해, 범죄를 은폐하려고, 여성 파트너에게 배신당해서, 치정으로 인하여, 자동차 사고, 혐오범죄 기타 등등. 극을 전개시키기 위해서 굉장히 많이 살해당하기 때문에 소위 “냉장고 속의 여자들” 중 성소수자들만 다시 골라서 모아보면 비율이 굉장히 높아집니다.

그리고 이 글에서 보이는 것과 굉장히 유사한 패턴이 있는데, 여성 캐릭터 사이의 로맨틱한 텐션이 올라갈 때쯤 그들이 죽는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차 안에서 고백했는데 그 순간 차 사고가 나서, 고백을 듣고 도망치는 상대를 따라가다가, 데이트 약속을 한 후에 기다리다가, 이 글에서는 기숙사에서 기다리다가 화재가 나서. 그리고 이러한 형태의 죽음이 가장 안 좋은 점은 성소수자들을 위축되게 한다는 겁니다. 너의 사랑은 불가능성의 영역에 있다고 학습시킵니다. 그리고 그 끝이 죽음일 것이라고도요. 굳이 그들의 죽음이 거짓된 페르소나를 깨는 것이라고 전통적인 문학 이론을 들먹이면서 그렇게 함으로써 동성애 혐오를 내재화시킨다고 말할 것도 없이, 몇십번씩 결국엔 죽고 마는 성소수자 캐릭터의 결말을 보다보면 알아서 위축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캐릭터들도 죽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소수자 캐릭터라고 죽지 말라는 법은 당연히 없습니다. 게다가 심지어 자살율도, 살해당하는 비율도 많은 사회적 약자라는 현실이 그들의 죽음에 더 개연성을 부여해주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들이 성소수자 캐릭터들을 그만 죽일 필요가 있습니다. 여성 캐릭터들을 편의를 위해 무심결에 죽이곤 했던 1990년대의 미국의 만화작가들 같은 짓을, 평소에 성차별에 민감하던 사람들의 창작물들을 포함해서 몇 십 번씩이나 보고 있자니(그리고 성소수자 당사자인 창작자들까지도 그런 것에 익숙하다보니 그렇게 하고 있는 걸 보다보니) 짜증이 나는 건 어쩔 수가 없습니다. 여성이 범죄를 더 많이 당했다고 냉장고 속의 여성이 정당화되지는 않듯이 모든 성소수자 캐릭터의 살해가 정당화되지 않고, 저는 모든 여성과 성소수자들이 불행하지 않았으면 하거든요.

 

백합물, 여고와 동성애 코드

소위 백합이라는 장르가 있습니다. 이건 동북아시아에 고유한 장르입니다. 이걸 영어로 번역할 때 레즈비언 서브컬처라고 번역한다면 크나큰 오역입니다. 백합물 속의 주인공들은 현실 속의 레즈비언들과는 조금 거리를 둔 캐릭터들이고, 이것을 제외하면 이 장르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때문에 대개는 (너무 명백히 이성애자 남성들의 판타지를 위해서 만들어진 최근의 포르노들을 제외하면) 현실 속 레즈비언들에 기반한(차별과 혐오가 섞여있기도 하지만) 서구의 레즈비언을 묘사하는 창작물과는 성격이 꽤나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건 백합이 20세기 초에 태동한 에스(エス)문화의 파생물이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종류의 문화이던 간에 그 문화가 꽃피우기 위해서는 거점이 필요합니다. 절대왕정의 궁정, 흑인 빈민가, 살롱, 시장판 등등 다양할 수 있습니다. 성소수자들의 문화도 마찬가지여서 다들 거점이 존재했습니다. 20세기 초 파리의 레즈비언 문학가들의 서클이나,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전간기의 베를린의 유흥가들, 20세기 중반까지의 미 여군이 그런 곳이었습니다. 20세기 전반 일본 제국에서는 그걸 여학교들이 담당했습니다. 당연히 식민지 조선에도 영향을 끼쳤고, 그 이후에도 익숙했습니다. 일제강점기의 여성 문학가들도 많이 증언하고 있고, 굉장히 여러 신문들에서 가십거리로 보도한 내용이기도 하기 때문에 식민지 조선에서도 여학교들을 중심으로 그러한 문화가 있어온 것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박완서의 단편에서도 S언니라고 하는 에스문화의 은어가 나오는 글을 본 것 같은데 지금 잘 기억이 안 나네요.

그 때문인지 이 문화의 특징 중 하나는 여군을 바탕으로 성장한 미국의 레즈비언들이 굉장히 강인하고 마녀같고 위협적인 모습으로 재현되곤 했던 것(저는 아직도 어릴 적 본 이름을 모르는 미국의 어떤 수사 다큐멘터리인지 가상극인지에서 레즈비언들을 섹스에 미친 범죄자처럼 그렸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과는 달리 여학생들의 미성숙한 문화, 그래서 이 여학교 생활이 끝나면 그런 생활도 끝나고 결국에는 남성과의 결혼으로 끝나는, 그리고 성적인 관계가 배제된 채 감정적인 교류를 중심으로 한 것이라고 주류 사회가 해석해왔다는 것이 특징이라면 특징입니다.

 

하여튼 그것 때문에 이 글은 작가가 의도했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이 글은 굉장히 익숙한 백합물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주인공들이 레즈비언으로서의 자의식을 보여주지도 않고요. 따라서 저는 이것을 레즈비언 소설이라기보다는 백합 소설에 가깝게 읽힙니다. 그런데 그렇게만 읽기에는 백합물이라기에는 후반부는 백합물이 아니라 사회에 대한 알레고리가 됩니다. 이 지점에서 자꾸만 제 머릿속에서 이렇게 써서는 안 된다고 말하게 됩니다. 백합물과 사회적 메시지의 이질감과 괴리감 때문에 그러하거니와 윤리적인 고민들 때문에 그러합니다. 만약 어떤 작가가 A라는 민감할 수 있는 사회적 속성인 동시에 개인적인 속성을 자세히 묘사한 후에 반전으로 사회적 메시지를 던지는데 막상 그 사회적 메시지는 A라는 속성과 너무 무관하고 동떨어져 있다면 그건 굉장히 이상해 보입니다. 한국은 아직 성이 주변화 될 정도로 많이 얘기되지 않았으며 성소수자들의 삶은 아직도 치열한 전쟁터입니다. 사회에 대한 알레고리를 쓰려고 하면서 그렇게 한 것은 약간 무책임해 보입니다. 후반부를 사회에 대한 알레고리로 쓰지 않았다고 해도 하여간 그렇게 읽히니까요.

그리고 작가가 백합적 이미지를 차용하고 끝맺지 않았을 때 등장하는 반응들에 대해도 조금 말하고 싶습니다. 앞에서 백합에 대한 얘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이유이기도 한데, 이 문화적 특징이 다음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지나치지 않은 동성애 코드”. 순수성에 대한 집착. 성적인 관계나 어른스러운로맨스의 배제. 졸업 후에는 이성애적 문화로 복귀할 것. 여성 간의 동성애를 미성숙하고 어리숙한 과거의 추억으로 남겨둘 것. 이러한 것들은 독자평이나 아마추어 서평가들에게만 보이는 게 아닙니다. 요새는 그렇지 않지만 수많은 문학가들과 평론가들이 그것들을 요구해왔습니다. 이러한 요구들은 대체로 실존하는 레즈비언/바이섹슈얼 여성들에 대해 모욕임에도 불구하고 재생산되어온 이미지에 부합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작가의 잘못은 아니지만 그렇게 읽어내고 다시 재생산하는 사람의 책임은 되지요.

 

결국 이도 저도 아닌 듯한 모양새가 메시지들과 윤리적 고민들을 날려버렸습니다. 잘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P.S.

저는 제가 좋게 읽은 글들에 대해서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글만 쓰나 봅니다. 잘 읽어놓고 리뷰가 어째 이런 모양이라 죄송한 마음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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