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등이 있는 건널목에서 나올 수 있는 모든 것 – <건널목> 리뷰 감상

대상작품: 건널목 (작가: 라문찬, 작품정보)
리뷰어: 라니얀, 4월 26일, 조회 19

<건널목>의 리뷰를 어떤 제목으로 할지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 조금은 극단적으로(?) 뽑아봤습니다. 빨간불에서 파란불로 바뀌고 다시 빨간불로 바뀌는 그 짧은 순간에서 이렇게 깊은 이야기를 끌어내시다니, 말 그대로 ‘이 장소에서 나올 수 있는 모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적었습니다.

우선 저런 식의 재회 경험을 해보지 않은 독자인데도 불구하고 ‘지유가 어떤 마음이구나’ 하는 걸 정말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연애 기간이 점차 길어지면서 (그게 마치 속물처럼 보일지는 몰라도) 현실에 대해 고민하게 되고, 과연 이 사람이 나와 평생을 같이 해도 될 사람인지 시험에 들게 되죠. 그 시간을 거쳐 더 끈끈하게 이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면 바로 저 지유와 같은 상황으로 가는 경우가 꽤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유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꼭 주변에서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리고 이 소설의 결말은 그 수많은 ‘지유’가 꿈꾸고 바라는 결말일 것 같은데, 그런 면에서 이 소설로 마음에 치유를 받는 독자도 많을 것 같습니다.

이 소설에서 가장 좋았던 부분은 단연 ‘아름다운 표현력’이었습니다. 작가님이 평소에 관찰도 많이 하시고 기억이나 기록도 잘해두시는 편인지 일상의 사소한 포인트를 서정적으로 표현해주셨더라고요. 가장 제 마음에 남았던 문단은 이거였습니다.

“지유는 척추를 쭉 펴고 입술을 앙다문 채 씩씩하게 걸었다. 시선은 일부러 그를 피해 정면을 바라보면서도 그녀의 시신경은 필사적으로 시야 주변부에 있는 남자의 잔상을 추적하고 있었다. 남자는 감색 수트를 펄럭이며 지유의 곁을 스쳐 지나가는 중이었다.”

이 문단을 읽는데 어느새 제가 건널목을 건너는 지유가 된 것 같더라고요. 이렇게 공감할 수 있고 마음을 울리는 표현 덕분에 마치 제가 그 주인공이 된 것 같은 느낌으로 읽을 수 있었어요. 제가 최근에 봤던 여러 글 중에 가장 표현을 섬세하게 다루는 글이었습니다.

이런 로맨스를 많이 쓰시는 작가님이신가 싶어 브릿G 소개를 찾아보니 놀랍게도 다양한 장르를 쓰시는 작가님이신 것 같더라고요. 다양한 글을 계속 써오시면서 글을 쓰는 내공이 장르를 가리지 않고 발휘된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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