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는 언제 들어도 좋습니다. 음악을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골라 듣는다면 클래식보다는 재즈를 듣습니다. 특히 일할 때나 글 쓸 때 배경음악이 필요하다면 재즈를 선택합니다. 그래서 모처에서 구한 스위스 재즈 라디오는 아예 즐겨찾기에 걸어 놓고 생각날 때마다 틀어 놓습니다. 다양한 음악을 듣다보니, 예전에 좋아하던 음악을 우연하게 다시 찾고, 제목을 알고, 다른 버전으로도 듣게 되는 일도 많군요.
이 소설도 재즈와 함께 시작합니다.
나와 그 일행은 비내리는 날, 재즈카페에서 창 밖의 비를 바라보며 재즈와 칵테일을 즐깁니다. 둘은 재즈와 비가 잘 어울리는 이유에 대해 잠시 대화를 나누다, ‘나’는 무언가를 찾는 듯한 카페 직원을 보고 궁금증을 느낍니다. 뒤이어 일행인 도하는 재즈와 비가 잘 어울리는 이유에 대한 답이라며 카페의 손님인 어느 커플을 가리킵니다. 각각 재즈와 비를 상징하는 것 같은, 잘 어울리지만 뭔가 묘한 분위기의 커플을 보고 도하는 새로운 수수께끼를 내놓고 둘은 커플에 얽힌 일상적이지만 비일상적인 수수께끼를 풀어 갑니다.
자유게시판에서 이 소설을 추천하신 분이 있어 덥석 물었습니다. 처음 읽은 그 날은 마침 비가 내렸고, 종일 비가 온 덕에 저도 무의식 중에 재즈를 틀어 놓고 있었거든요. 덥석 물어서 보고 있는 동안 슬며시 웃음이 나오더군요. 탐정 콤비는 다른 작품들 속에서도 종종 만나는 전형성을 지닙니다. 약간은 막무가내며 눈이 매우 좋고(관찰력이 좋고) 집중력도 좋은 탐정, 그리고 그런 막무가내 탐정에게 휘둘리는 입장이며 본인은 평범하다고 여길 탐정의 친구. 일단 시점은 후자인 ‘나’의 1인칭 관찰자 시점에 가까우니 나에 대한 정보는 많지 않습니다. 그러니 그 인물상은 확신할 수 없지만, 내가 보는 타정- 도하의 정보는 상당히 많습니다. 단편이라 길지 않은 이야기임에도 탐정의 성격이나 습관 등에 대해 이것 저것 파악할 수 있는 것도 콤비 덕분이겠지요.
작은 이벤트가 얽힌 이야기는 다 공개하면 재미없으니 접어둡니다. 다만 재즈카페에서 작은 사고가 발생했고, 탐정 류도하는 그 사건을 해결하는데 공을 세웠으며 그 뒤에 친구의 심장을 들었다 놓았습니다. 전체 이야기의 프롤로그로도 볼 수 있지만 이 자체로도 충분히 완결성이 높습니다. 읽는 동안 미소가 입가에서 떠나지 않는 그런 이야기였고요. 슬쩍 웃으며 그 커플을 축하할 수 있었습니다.
소설 읽으면서 가장 걸렸던 부분은 탐정인 류도하의 설정입니다. 읽으면서, 라노베나 만화에서 튀어나올 것 같은 인물이지, 솔직히 일상적으로 만날 수 있는 그런 인물은 아니라는 위화감이 있었습니다. 외모나 관찰력, 집중력은 좋지만, 친한 친구와 대화하면서 놀리는 과정에서 혀를 내밀고 메롱이라. 음. 그렇게 긴 삶을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 이런 사람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거든요. 제 주변뿐만 아니라 보통의 이성 친구 사이에서 그런 모습을 보이는 인물은 앞서 말했든 창작물 속에서만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 어딘가의 재즈카페에서 일어날 법한 이야기가 살짝 뜬 것 같은 위화감이 들었습니다. 거기에 주인공 둘의 관계 설정이 그런 맥락으로 이어지는 전형성을 가진다는 것이 아쉬웠고요. 뭐라해도 맨 마지막에 도하가 선언한 일이 실제 발생한다면, 그 와중에 ‘내’가 도하에게 내내 휘둘릴 것이란 점은 불 보듯 뻔히 보입니다.
하지만 읽으며 조금 투덜거리더라도, 읽고 나면 소설에 등장한 재즈 곡들을 찾아 듣게 됩니다. 그리고 곡을 들으며 다시 한 번 소설을 읽습니다. 여운이 좋은 소설로, 그 자체의 완결성도 좋지만 이게 다른 긴 이야기의 프롤로그라 해도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