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리케의 ‘발칙함’, 낮은 곳에서 위태롭지 않기 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피어클리벤의 금화 (작가: 신서로, 작품정보)
리뷰어: 늘보나모, 18년 6월, 조회 434

중세적 배경을 차용하는 소설에서 여성의 자리는 언제나 문제가 된다.

“여성 캐릭터, 권력을 가질 것인가? 좋다. 어떻게? 남자의 자리를 차지하거나, 여자만의 능력을 발휘해서라도? 아니면?”

이런 것이 여성주연 중세 판타지의 큰 기조라 할 수 있다. 캐릭터가 권력을 굳이 원하지 않거나 작중에서 나레이션 따위로 묘사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러한 소망은 이미 여주 판타지를 점령하고 있다. 여주판타지를 쓰고 소비하는 큰 동기 중 하나다.

그러나 언제나 이것은 질 수밖에 없는 싸움, 반쪽짜리 승리를 향한다. 중세라는 성차별적 세계관에서 ‘여자도 남자처럼 주연이 되고, 권력을 가지고, 야심을 성취할 수 있다’ 라는 소망을 실현하려면 우선, 이미 승리자인 남성 캐릭터와 이미 패배자로 결정된 상태에서 경쟁해야 한다. 심란하게도.

피어클리벤의 금화 주인공인 울리케의 서사도 ‘여자 가지리라 권력’ 기조를 충분히 따르고 있으며, 작품이 발휘하는 매력의 큰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울리케라는 캐릭터의 특징이 어떻지? 일단 적어도 “나는 비록 여자이나 남자들처럼 왕이 될 것이다. 아 권력욕에 굶주린다!” 나, 반대로 “여자이지만 여자라는 위치에서, 허용되지 않는 방식마저도 사용해서 권력을 쟁취할 것이다.” 라는 권력 게임은 이 소설이 아닌 것 같다.

브릿G에는 아예 여자와 남자의 거리를 좁히는 방식으로 저 골치아픈 ‘여자에게 없다 권력’ 문제를 해결하는 소설들도 있더랬다(드라고의 기사, 낙원과의 이별 등). 물론 이 방식이 호쾌하긴 하나 약간 남는 찝찝함이라면 여전히 승리자로 결정되어 있는 남성적 세계들과 경쟁하는 방식이 되어놨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완벽한 승리란 (여주 판타지를 구하는 이들에게) 불가능하고, 설령 승리를 얻어내더라도, 승리가 미리부터 주어져 있는 입장에 비하면 열등한 상태일 뿐이다.

그럼 울리케는 어떻지? 시작부터 용에게 납치되고, 그 다음에는 고블린 포로 신세가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만큼이나 약자가 되는 상황이 있을까? 여성의 고통이나 억압을 표현하고자 하는 장르가 아닌, 여자가 권력을 갖길 원하는 ‘여주 판타지’ 인데도 여주를 약자 입장으로 밀어넣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 한 번 ‘남주 후보'(연인 후보) 처럼 등장했던 크누드는 지혜를 독점하여 울리케의 거리낌을 의미없게 만들려 했었다(오빠스플레인 하는 느낌). 오늘날까지도 울리케는 아버지의 기특한 딸이다. 그리고 영지의 남자들이 떠나고, 행정관이 되어 약간의 권력을 보유하게 된 뒤에도 울리케의 곁에는 언제나 용이 있다.

작품 시작부터 쭉 이어져 온 작품의 핵심관계, 빌과 울리케. 이 관계가 울리케의 위치를 보여준다. 용과의 관계는 분명히 비대칭적이다. 우선 말투부터 울리케는 빌에게 경어를 쓴다. 또 요리를 좋아하는 웃어른 빌 영감에게 맛있는 것을 대접해 드린다. 용은 종종 울리케에게 감탄하고 가끔은 논쟁에서 지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울리케가 절대 이기지 못할 강력한 존재(후원자에 가깝지만)로서 곁에 있다.

이러한 구도를 보면 울리케는 오롯이 홀로 서는 권력자가 될성싶지는 않다. 그러면 울리케는 어떤 방식으로 여주판타지에서 그토록 원하는 권력을 갖지?

울리케는 ‘발칙하다’ 라고 키워드를 꼽아 보았다.

울리케는 낮은 곳에 있되 위태롭지 않다. 아무렇지도 않게 권력자에게 도전하고 그들을 민망하게 만들고, 또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제안으로 설득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그리고 그 설득이 통한다는 점이 작품의 긍정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물론 아무나 그렇게 대범하게 발칙하게 굴 수는 없다. 울리케의 대단한 배포는 작중 주변인 그리고 독자의 감탄 대상이다. 아무나 용에게 납치되고, 고블린 포로가 되고, 용과 대화를 주거니받거니 할 적에 그토록 범연하게, 대놓고 나서서 제안하고, 위를 향해서 도전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용에게 한번 납치되고 간이 배밖으로 나온 울리케는 그렇게 했고, 작중에서 그 방법은 통한다.

훗날, 설령 울리케가 대단한 권력자가 된다는 엔딩이라 하더라도…

이 소설은 약자로서 권력을 쟁취하고 싶어하는 이가 쓴 글이 아니다. 이 소설은 약자의 입장을 사랑하는, 그들이 잘되길 바라는, 그리고 약자의 말을 들을 준비가 된 사람이 쓴 글이다. 그런 작가의 소망을 날개 삼아 울리케는 거침없이 말하고, 아무런 (작가의) 망설임, 심란함, 장애물도 없이 목소리가 들려지는 존재가 되고, 교섭으로 모두에게 이득이 되는 선을 성취해 가고 있다.

작가는 중세 판타지에서의 여성인물이라는 약자의 위치를 이런 방식으로 수용했고, 그런 작가에게 앞서 얘기한 ‘여자에게 완전한 승리란 없다’ 하는 심란함이란 없다. 그리고 그 결과물로 교섭전설이라는 장르가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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