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영’과 나와 우리들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사춘기 (작가: , 작품정보)
리뷰어: 한켠, 18년 6월, 조회 154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안나 카레니나>의 유명한 첫 문장을 살짝 수정하면 이렇게 될 겁니다.

불행한 여자는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행복한 여자는 모두 제각각의 행복을 안고 있다.”

 

<사춘기>는 효자이자 장남인 아버지와 남편에게 순종적인 어머니오빠와 보수적인 시골의 친가 근처에서 자라다가 도시로 이사 왔고철학과에 진학하고글을 쓰고 대학원에 가고 싶어했으나 포기한 이십 대 여자가 나는 왜 아직도 사춘기에서 벗어나지 못 했나에 대해 토로한 글입니다주인공은 평범하고,어찌 보면 복 받은’ 가정환경에서 자랐습니다아버지와 오빠가 물리적인 폭력을 휘두르지도 않았고가족 중 누군가가 사고를 치지도 않았으며가난하지도 않았고부모가 학원도 대학도 보내 주었습니다그렇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화자에게는 분노,불평불만좌절 등 부정적인’ 감정이 꽉꽉 들어차 있습니다.화자(주인공)도 이를 잘 알고 있습니다다른 가족 구성원들은 다 정상인데 (아버지 말대로자기에게 문제가 있다고 하지요.그러나 이건 자기비하나 반성이 아닙니다반어법이고 비아냥입니다당장 호칭부터 시종일관 어미’ ‘아비’ 하면서 이죽대고 있지요.

화자는 내가 왜 이렇게 되었나를 어린 시절부터 되짚어 가며 말합니다. ‘82년생 김지영보다 열 살쯤 어린 화자의 일생은김지영과 별로 다를 게 없어 보입니다제지되지 않는 사촌 남동생들의 관음은 화자가 절대 그들과 마주치지 않으려 친척들을 거부하고개인정보 공유와 카메라를 두려워 하는 원인이 됩니다부모의 외모 고나리질과 돈을 벌게 되면 한 달에 100만원 씩 달라는 아버지의 세뇌딸을 이해하고 대화하는 척 하면서 오히려 가부장적 질서에서 딸이 벗어나지 못 하도록 하는 어머니화자보다 못났는데도 인생은 더 편하게 사는 오빠화자는 가족들과 말하지 않고, ‘애교 많은 딸의 역할도 거부합니다화자는 영민하지요가족들이 절대 바뀌지 않을 것을 아니까 이들과 대화하지 않습니다가족들이 시키는대로 대학에 가고 대학원에 가지 않고 글을 쓰지 않고 사촌동생의 성폭력을 가족 내부에서 공론화하지 않고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자해하고 가족들을 공격합니다.

상황이 여기까지 치달은 데에는 화자의 외골수적인 성격도 한 몫을 하지 않은 건 아닙니다화자는 절대 유하게 넘어가지 않습니다하나하나 따지고 속으로라도 반박하지요. ‘외모 고나리질을 내가 왜 당해야 하는지오빠는 무난하게 학원 보내주면서 나에겐 왜 이렇게 허들이 높은지, ‘키워준 값으로 아버지에게 왜 한 달에 100만원을 갚아야 하는지 의문을 가지고요글을 쓸 거라서 대학은 가지 않아도 된다 라고도 생각합니다그 모든 걸 이해하지 못하는 부모를 원망하고 증오합니다. ‘철없는 딸내미가 부모에게 받을 건 다 받으면서 지 하고 싶은 대로 군다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왜 이렇게 될 수 밖에 없는 걸까요화자가 깨인’ 부모를 만나지 못해서화자가 너무 되바라지고’ 똑똑해서 시대와 불화하는 걸까요저는 읽으면서 내내 저 지경이 될 때까지 우리 사회는 뭐 하고 있나’ ‘82년생 김지영 이후 십 년 동안 발전한 게 뭔가했습니다화자는 부모에게 자기 의견을 말하지 않습니다부모가 안 바뀔 게 뻔하고, ‘탈가정할 수 없으니까요.

<이상한 정상가족>이란 책에서는 아동학대가족 이기주의,부모의 자녀살해 등 가족문제의 원인으로 사회가 복지 등으로 책임져야 할 영역을 가족에게 부담지워서 믿을 건 가족 뿐이란 인식이자 현실이 팽배하게 된 것을 지목합니다가족의 문제는 사실 사회의 문제죠화자의 인생의 단계들마다 사회의 개입이 있었으면 화자의 삶은 다른 방향으로 흘렀을 거고더 행복한 어른이 되었을 겁니다.

사촌동생에게 성폭력을 당했을 때 교사나 가족 외부의 신뢰할만한 어른이 그것은 성폭력이라고 알려주고신고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요책임질 어른(방관한 부모도 포함입니다.)이 처벌받고미성년자인 사촌은 교화(교육)을 받고화자는 가정과 격리되어 충분히 심리치료를 받고 보호받을 수 있었다면 그렇게 오래 트라우마에 시달리지 않게 되었을 겁니다.

부모는 아들인 오빠에게 기대치가 낮고 화자에겐 외모부터 시작해서 남에게 완벽한’ 조건을 갖추고 가부장의 보호 아래서감정노동(딸의 애교라거나…)’을 제공할 것을 요구하는데요.만약 사회가 여성에게 너 자신으로 충분하다고 했으면 어땠을까요. 면접에 생얼에 면티 입고 들어가도 합격에 영향 미치지 않는다면, 여성을 평가할 때 외모가 기준이 아니라면 어땠을까요.

화자가 진로 문제로 부모와 갈등할 때 진로교육이 제대로 되었으면진로상담을 할 수 있는 전문가나 업계 선배가 있었다면 부모와 감정대립할 필요가 없겠지요예술가 복지제도가 있거나 기본소득저렴한 청년 주택이 있다면 화자는 가정에서 나와서 마음껏 하고 싶은 대로 해 볼 수 있을 겁니다그러면 자기 소질을 가늠해볼 수도 있을 거고다른 길을 탐색해볼 수도 있겠죠실패해도, 1~2년쯤 방황해도 되는 사회적 안전망이 있다면요학비부담이 없고원하는 학생을 모두 수용할 수 있는 대학기숙사가 있다면화자는 대학입학과 동시에 집에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아직 우리 사회에서 전업작가로 먹고 살기는 현실적으로 어렵고, 자식이 자립하지 못하면 부모가 먹여살릴 수 밖에 없는 구조에서는 부모가 나의 진로에 강하게 개입하게 되지요.

결혼자금을 대 주겠다는 헌신적인’ 부모면서 동시에 한 달에 백 만원을 달라는 부모는 같은 사람들입니다. (지금 부모님께 백만원 주지 마세요부모님 더 나이 들어 아프시면 한 달에 백만원 쯤은 우스울 정도로 술술 돈이 나갈 수도 있어요…)화자는 결혼하지 않을 거라고 하지만결혼을 하더라도 부모 없이도 결혼할 수 있을 정도로 주거정책이 잘 되어 있어야 합니다부모가 아들에게는 돈 달라는 말 없는 건아마도 딸은 시집가면 출가외인이고 아들은 결혼해도 부모를 부양할 거니까 아들에겐 그 때 받자는 계산일 수 있는데만약 부모가 간병받아야 할 상황이 오면 이 부모라면 며느리나 딸을 찾을 겁니다부모의 노후는 자식이 아니라 국가가 연금이나 의료복지로 해결해야 합니다월 백 만원국가가 보살펴 줄 텐데 왜 필요하냐고 반박할 수 있을 정도로요.

부모는 자식에게 헌신하고 자식의 인생을 책임지며 자식은효도와 순종으로 보답하는 가족 모델은 이제 없어지고국가는 가족이 아니라 개인을 보살펴야 하지요행복한 개인이 모여야 행복한 가정이 이뤄지고행복한 가정이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냅니다이 작품은 반성문이나 수필이 아니고 고발장이며독자에게 보내는 편지가 아닐까요내 경험을 말하고,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짚고,국가에게 요구하고사회에 소리치고다음 세대에는 김지영도 사춘기가 끝나지 않는 여자도 없게 하라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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