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리뷰와 소설을 통해서 진실한 이야기를 주고 받고 싶은 Stelo입니다.
안 읽으셔도 되는 사연
이아시하누님과는 ‘오늘의 문장’을 통해서 처음 인연을 맺었습니다. 어떤 소설을 쓰시는지 늘 궁금했지만, 장편을 읽기 시작한다는 건… 큰 결심이 필요했고 망설이기만 했어요. 그래서 이아시하누님이 리뷰 의뢰를 해주셨을 때 올 게 왔다고 생각했습니다. 고민 없이 승낙했습니다.
장편인만큼 읽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매일 1시간 밖에 주어지지 않았으니까요. 10화 x 6회 x 25매 x 200자 니까… 거의 30만 자라는 긴 여정이었습니다. 시간이 길었던 만큼 많은 생각들을 했습니다. 그 모든 걸 짧게 요약하려니 아쉽기만 한데요. 그래도 늘 하던 것처럼 정리해보면 이렇습니다.
좋았던 점 보석함에 숨겨져 있었던 색색의 유리알들을 훔쳐보는듯 예쁜 이야기였습니다. 수 많은 신과 인간들은 각자 선명한 색깔을 가지고 있고 하나하나 빛이 납니다. 이런 부분까지 생각했구나 하고 놀랐어요. 그러면서도 이야기는 늘어지지 않고 확실하게 진행되고요.
안타까웠던 점은 결말입니다. 전 중요한 질문들에 답을 듣지 못했어요. 로난이 히에라를 선택한 걸 납득하지 못했다고 해도 되겠죠. 에르나는 스승님을 만나기 위해서 주저 없이 떠났고요. 유니란은 짧은 고백을 매몰차게 거절당한 뒤 자신을 희생합니다. 신들은 로난에게 애도할 시간도 주지 않은 채 끌고 가 ‘결말’을 지어버리죠.
물론 주인공들은 자기 신념에 따라 선택을 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거대한 섭리가 내려준 선택지 중에 고르라는 건… 사실 선택이 아니잖아요? 어쨌든 이별은 짠내나게 슬픈 일입니다. 로난은 그저 체념한 체 모든 걸 받아들이고 어느새 왕이 ‘되어’ 있는듯 보였습니다.
작가님이 요구하신 건 여기까지인데요. 마지막으로 제 이야기를 조금 더 하겠습니다.
바라는 점 저는 이 친구들이 자기 욕망에 더 충실했으면 좋겠습니다. 주어진 선택지 중에 희생을 선택하지 말고요. 서로 가야할 길을 가지도 말고요. 그런 가짜 해피엔딩에 저항했으면 좋겠습니다. 역사 속에 멈춰있지 말고 계속 전진했으면 좋겠습니다. 불가능한 운명 따위는 부숴버리자고요.
요약이 늘 그렇지만 애매하게 보이죠. 그러니 ‘신의 정원’을 구체적으로 뜯어보려해요. 소설을 쓰는 형식이 주제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걸 눈치채시면 좋겠습니다.
각자의 색깔을 가진 신과 인간
신의 정원은 군상극입니다. 신계와 인간계의 시점이 번갈아가면서 나오고요. 주인공인 로난을 따라가다가도, 유니란이나 네휴레, 영주님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보여주기도 해요. 이건 신계 역시 마찬가지죠.
플롯 역시 두 개의 축이 있습니다. 신계의 사건은 신성神聖한 호수가 오염된 것이고요. 인간의 이야기는 어머니를 잃은 로난의 여행입니다. 이 축에 여러 신들이나 유니란, 에르나, 히에라 같은 캐릭터들이나 괴물로 파괴된 마을들의 이야기가 덧붙여지는 구조입니다.
처음엔 갑자기 많은 이름들이 나와서 당황했지만, 읽다 보니 크게 힘들진 않았어요. 캐릭터들이 선명하기 때문입니다. 이름은 기억나지 않아도 이 친구는 차별 당하는 반신이고, 저 친구는 다혈질이고, 유니란은 로난을 좋아한다는 것 정도는 쉽게 알 수 있죠.
그냥 설정이 아니라 하나하나 섬세하게 조각해놓은 것 같다고 느꼈어요. 일단 대화 사이에 묘사가 많거든요. 말 한 마디를 했을 뿐인데 선명한 제스처로 감정을 표현하고요. 생각하고 고민해요.
거대한 세상 속 인간
이런 군상극은 어떤 장점이 있을까요? 일단 복잡한 세상을 보여주기 좋죠. 작가는 원하는 시점에서 설정을 풀어놓을 수 있습니다. 신은 반신의 삶을 모르지만, 반신 뉴아르는 알고 있죠. 판타지는 세계와 설정이 중요하니… 군상극이어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문제도 여기에 있습니다. 다양한 인물들을 객관적으로 살펴보다보면… 한 캐릭터의 고민을 깊게 파고들기 어렵습니다. 이 소설의 매력은 결국 캐릭터들이고 그 캐릭터들의 마음이에요. 신계나 신성수, 괴물 같은 세계 설정은 잠시 드러나고 사라졌을 뿐이죠. 캐릭터들이 자신의 질문을 던졌고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한 여정입니다.
군상극은 그런 여정에 맞지 않는 방식이었을지도 몰라요. 질문들이 너무 많다고 해도 되겠죠. 50회조차 너무 짧을 정도로요.
자기 삶이 없는 아이의 여행
신의 정원의 캐릭터들은 선명하지만 단순하게 느껴지곤 합니다. 예컨데 유니란한테는 로난을 빼면 삶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아요! 주저 없이 자기 삶 전부를 희생할 수 있는 것도 그래서죠. 복잡한 인간이었다면 좀 더 주저했을 겁니다.
주인공인 로난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시 이유는 모르지만 여행을 떠나는 캐릭터들은 욕망도 야심도 없이 방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소중한 사람을 잃어버려서 그럴지도 모르죠. 누군가 던져준 목표가 삶의 전부인듯 여행을 떠납니다. 하지만 로난이 왜 여행을 떠나는지 가장 가까웠던 유니란도 모릅니다. 동행했던 에르나한테도 말하지 않죠.
이 친구들에겐 욕망이 없거나 하나 밖에 없습니다. 그저 앞으로 나아가면서 위기가 닥쳐오면 극복할 뿐이죠. 자기가 원하는 걸 위해 불가능에 도전하지 못해요. 책임지지도 못합니다. 로난이 죽은 어머니를 보고 싶다는 자기 욕망을 추구한 대가는 죽음입니다. 한 소녀가 자기 대신 희생하려 했을 때 그걸 받아들여버리죠. 물론 머뭇거렸고 짠내나게 슬펐지만 그 정도입니다. 반항하지 않아요.
그렇게 얻은 삶이라면 유니란을 잊지 않고 무얼 위해 살아야할지도 생각해보지 못해요. 그저 신들이 시키는 대로 호수를 정화하고요. 로헤튼을 비롯한 신들이 자기 운명을 놓고 대화하는 동안 한 마디도 하지 못해요. 신들이 죽으라 하면 죽고, 살려준다고 하면 살아요. 왕이 되라고 하면 왕이 되죠.
유니란도 결국 얻지 못할 사랑 앞에 희생으로 도망쳤다고 할 수도 있겠죠. 에르나도 스승을 찾는 것말고 원하는 게 없다는 이야기는 언급만하고 넘어갈 게요. 반신들도 마찬가지죠. 그들의 욕망은 섭리 앞에 ‘어리석은’ 범죄일 뿐이었어요. 이 소심한 혁명은 시작하기도 전에 싹이 잘렸어요.
결과만 남았다면, 무엇을 위한 과정이었나?
모든 것은 주관성을 잃고 역사적 원근법의 저편에서 고전이 되어간다.
언젠가 현재의 우리도 미래의 누군가의 고전이 되리라.-어느 추리소설
물론 신계의 사건은 해결되고, 로난은 아버지가 준 목표를 달성하고 왕이 되고 아내를 선택해요. 하지만 저는 계속 찜찜했어요.
로난은 왜 여행을 했으며, 여행을 통해서 뭘 배웠을까요? 다시 말해 유니란이나 에르나와 함께 했던 시간은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요? 증오하는 아버지와 사랑하는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어떻게 정리된 걸까요? 그 수 많은 마을과 괴물들은 뭘 위해서 존재했던 걸까요?
저는 결말에서 그 답을 듣지 못했어요. 어쩌면 다음 이야기를 위한 떡밥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로난의 이야기는 지나간 역사 기록이에요. 로난이 여행하는 과정은 아름답지만… 지나간 과거죠. 과거는 현재와 달리 이미 정해진 채로 멈춰있어요.
그렇기에 답을 얻진 못할 것 같아요.
Stelo가 아이시하누님에게 하고 싶은 말
“흐으음. 근데 왜 거길 가는 거야?”
신의 정원 6화. 유니란이 로난에게 물은 말
아니 답을 찾아야 해요.
결말에 대해 길게 이야기를 했는데요. 거꾸로 말하면 결말을 빼면 좋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해요. 저는 로난의 여행을 즐겁게 따라갔어요. 신도 사람도 누구나 방황을 해요. 하지만 그 사이에서도 아름다운 일들이 있고, 뭔가를 배운답니다. 그 과정은 헛된 시간이 아니에요. 우리는 목표를 향해 가장 효율적으로 달려가려고 사는 게 아니니까요.
유니란이 로난을 쫓아갔을 때 우리는 뭔가 배우지 않았나요?
로난과 에르나가 함께 숲과 괴물들을 헤쳐나갔을 때는 어떤가요?
반신으로 차별 받는 뉴아르의 아픔을 보면서는 어떤가요?
저는 모든 캐릭터들과 질문들이 진실하게 느껴졌어요. 그저 설정에 불과하다고 느끼진 않았어요. 신의 정원은 진실하게 그 질문들을 담아냈다고 생각해요. 다만 거기서 조금 더 나아가길 바래요.
오히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싶은지 목적지를 알아내기 위해서 여행을 해요. 내가 뭘 욕망하고 소중히 여기는지 알기 위해서요. 그걸 깨달았다면 이제 용기를 내야해요. 머리도 좀 써야하고요.
세상의 섭리는 순응하라고 정해진 길을 가라고 압박할 거에요. 하지만 규칙에는 허점과 예외가 있기 마련이죠. 때때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도 가능해져요. 사랑하던 사람을 얻게 될 수도 있고, 집착하던 사랑을 잃고서 진짜 행복을 찾을 수도 있어요. 이도저도 아닌 다른 답이 나올 수도 있고요.
과연 어떤 답이 나올지 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우리가 어디에 도착할지는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몰라요. 그러니 다시 여행을 떠나주세요. 운명에 지지말고요. 내 욕망을 따라서요. 아셨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