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한 객관적인 리뷰를 쓰려고 노력합니다.
…
예, 노력만 가상합니다.
이 리뷰는 8. 전생체가 없었는데요, 있었습니다 (8) 까지의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제 글쟁이 인생 대망의 첫 리뷰네요. 유상 작가님의 의뢰를 받고 부족하게나마 끄적여 봤습니다.
리뷰는 제 편의상 세계관, 스토리텔링, 캐릭터, 못다 한 이야기로 나뉘어 진행됩니다. 제가 평소에 영화나 애니메이션 비평을 저렇게 하거든요. 아무튼 잡설 끊고 시작합니다.
세계관
좋은 세계관이란 무엇일까요? 우선 독창적이어야겠죠. 그러면서 동시에 설득력이 있어야 합니다. 꼭 현실적일 필요는 없습니다. 하늘에 용이 날아다니든, 아니면 숲이란 숲마다 몬스터가 우글거리든. 독자가 납득해준 다면 그걸로 충분하니까요.
당연하지만 독창성과 설득력을 동시에 충족시키긴 어렵습니다. 더 신비롭고, 더 창의적이고, 다양한 설정을 집어넣을수록 작가와 독자에게 부담이 늘어나니까요. 전에 없던 설정을 넣을 때마다 작가는 그것을 설명해야 하고, 독자는 이해해야 합니다. 네, 귀찮고 번거로운 과정이에요. 그래서 정말 ‘독창적인’ 판타지 세계관은 세상에 몇 없습니다. 쓰기도, 읽기도 힘드니까요.
그래서 대다수 작가가 보다 실용적인 길을 택합니다. 기존에 있는 세계관을 차용하는 것이죠. 고블린이라는 종족은 따로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대다수 독자는 이미 고블린을 알고 있습니다. 키가 작고, 뾰족한 귀와 코에 전투력은 별로지만 조직력이 뛰어난. 오크는 돼지 같은 인상에 취이익 거리는 이상한 소리를 내고, 엘프는 아름답고 숲에 살며 인간을 무시하거나 두려워합니다.
이런 설정을 차용하는 것이 나쁘다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클리셰로 포화된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고, 새로운 클리셰를 만드는 건-혹은 부수는 건 프로 작가에게도 힘든 일이니까요. 하지만 이런 편한 길에는 반드시 함정이 있기 마련입니다. 바로 작품의 ‘디테일’까지 묻어버릴 수 있다는 점입니다.
8화까지 읽으면서 제가 느낀 것은 무미건조입니다. 고블린은 고블린입니다. 정말 그냥 고블린이에요. 작가님은 그저 지나가던 잡몹 1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하셨겠지만… 아뇨, 전 그걸로 만족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작중 나오는 고블린들은 어떤 동굴에 살고 있죠? 어떤 식량을 먹으며 어떤 위계질서를 가지고 있나요? 이들의 주변에는 어떤 식생이 서식하며, 무엇이 이들의 생존과 이익을 위협하나요? 그리고 다른 지성체와의 관계는 어떤가요?
독창적인 설정은 팟! 하는 아이디에서만 나오지 않습니다. 현실과 그 세계에 있을 법한 모든 디테일을 하나하나 점검하며 잇다가, 돌연 예기치 못한 전혀 새로운 그림이 만들어지기도 하는 거죠. 또한 세계관의 설득력이란 곧 작중 세계가 얼마나 ‘그럴듯하게’ 만들어졌냐에 달려있습니다.
이와 관련해서 돌직구로 말씀드릴게요. 작중에선 그런 고민의 흔적이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작중 등장하는 고블린들은 그저 평범한 몬스터일 뿐입니다. 마치 게임 데이터를 복사해놓은 것처럼요.
여기 브릿G에 좋은 예시가 있습니다. 현재 탑 순위 작품인 ‘피어클리벤의 금화’가 그것이죠. 피어클리벤에서도 고블린이 나옵니다. 용도 나오고 트롤도 나오죠. 하지만 저는 위 작중 등장하는 몬스터들에게 ‘흔하다’라는 인상을 전혀 받지 못했습니다. 바로 디테일이 살아있기 때문이죠.
피어클리벤에 등장하는 고블린은 군대와 같은 위계질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작중에는 주인공 울리케의 시점으로 그들이 어떤 식량을 먹고, 어떤 요새에 살며, 어떤 식으로 생활하는지 정말 세세하게 묘사됩니다. 또한 지성체답게 각자 개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블린답지 않게 주인공과 협상하려 드는 리더, 고블린답게 호전적이게 행동하는 간부 등등. 피어클리벤에 등장하는 고블린들은 살아 숨 쉬는 생명체로서 세계관을 풍성하게 하고, 몰입감을 더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작중 플롯에 매우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도 하죠. 그냥 지나가면서 한방에 잡고 마는 잡몹이 아니라요.
설정에 디테일이 부족한 부분은 이외에도 많습니다. 그중에서도 제가 가장 이질적이게 느꼈던 부분은 주인공 만호가 스켈레톤이 되는 과정과 그 직후입니다.
스켈레톤. 만호가 생각한 가장 이상적인 신체는 현재로선 이것이었다. 실험용 마우스의 육체로 던전을 이곳저곳 쏘다닌 만호는, 던전 내에 해골병사들이 유난히 많고 그걸 고블린들이 딱히 적대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근처 시체들의 뼈를 하나하나 낑낑대며 조립해 가져왔더니, 짠.
…(중략)
묶여있는데다 상처투성이인데도 불구하고 느긋한 태도를 취하고 있는 남자는, 만호가 처음 이세계에 올 때 보았던 빌헤임이라는 전사였다. 만호가 던전을 돌아다니다 우연히 아는 얼굴을 보고 깜짝 놀라 [아직 살아있었어?!]라고 물어본 게 시작이었다. 빌헤임은 만호가 다른 자아없는 스켈톤과는 다르다는 걸 깨닫고 서로 정보를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자, 다시 디테일로 들어갑시다. 일개 ‘마우스’가 어떻게 고블린들의 뼈를 다 모아올 수 있었을까요? 여러 시체에서 나온 뼈를 얼기설기 맞춰도 스켈레톤이 되는 건가요? 고블린의 뼈 구조는 인간과 동일한 가요? 아니, 당연히 동일하지 않겠죠. 그렇다면 빌헤임의 눈앞에 있는 주인공은 고블린의 뼈로 된 스켈레톤일 텐데, 빌헤임은 죽은 고블린에겐 호의적인건가요? 아니면 던전에 있는 고블린들 중에서는 인간에게 우호적인 개체도 있는 건가요? 애초에 지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언데드와 인간이 친해지는 게 일반적인 일인가요?
분명 디테일은 귀찮은 요소입니다. 생각하기도 힘들고, 쓰기도 힘들고, 독자들을 이해시키는 건 더 힘들죠. 하지만 동시에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되는 필수재료이기도 합니다. 디테일은 곧 설득력이며, 새롭고 참신한 설정으로 자라날 수 있는 씨앗이기도 하니까요.
생각보다 이야기가 길어졌네요. 세계관 리뷰를 마치기 전에 격언(?)을 하나 소개해드리고 싶습니다.
우리가 신을 신이라고 부르는 까닭은 전일 근무 가능한 무보수 만능 하인이라는 본명이 부르기 지나치게 번거롭기 때문이다.
-가이너 카쉬냅
이영도 작가의 작품 곳곳에서 출몰하는 지식인(?) 가이너 카쉬냅의 격언입니다. 저 문장에서 신을 다른 단어로 대체해보죠. 이를테면 사령술이라는 단어를 넣어봅시다. 주인공이 뼈를 모아와요. 그리고 대충 하나로 합칩니다. 그리고 ‘짠’! 전일 근무 가능한 무보수 만능 하인이 스켈레톤을 창조해줬습니다. 당연하지만 여기엔 어떤 디테일도 필요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마법과 우연’에 의지한 전개는 독자에게 설득력이 없습니다. 그리고 독자를 설득하지 못한 세계관은 죽은 세계관입니다. 마치 복사해서 붙여넣은 게임 데이터처럼요.
물론 작가님의 세계관엔 충분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작중 가장 중요한 설정인 ‘영혼 교환기’가 그거죠. ‘주인공이 이세계의 시체에서부터 시작한다.’ 최소한 저는 전에 보지 못한 독창적인 설정입니다. 충분히 씨앗으로 기능할 수 있고, 충분한 노력과 시간만 있다면 언젠가 커다란 나무로 자랄 수도 있을 테죠.
스토리텔링
작가님의 1, 2화는 꽤 멋집니다. 평이하게 이어지다가 평이하지 않게 끝나죠. 아니! 이세계에서 깨어나 보니 내가 쥐가 됐다고?! 저는 이 장면에서 주인공이 다시 현실로 돌아올 때까지 정말 재밌게 읽었습니다. ‘흥미로운 도입부’라는 어려운 과제를 작가님이 푸셨어요. 제가 바로 다음화로 넘어갈 정도로요.
그러나 이어지는 3화에서 문제가 생깁니다. 일단 저는 이야기 전개에 힘이 빠졌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로 작가님의 힘이요.
파삭 녹아버린 콘센트를 보고서 만호는 이해했다. 아마 번개 때문에 영혼 교환기가 오작동했을 것이라고. 이로 인해 그 기묘하게 실감났던 [꿈]이 영혼 교환기가 일으킨 것이라는 가설을 세운 만호는, 거듭된 실험을 통해 몇 가지 사실을 알아내게 되었다.
하나, [영혼교환기]를 이용하면 이세계로 갈 수 있다는 것.
둘, 이세계로 갈수 있는 건 만호 자신의 영혼과, 영혼교환기 반대편에…….
아니아니 잠깐만요. 예, 주인공은 과학자입니다. 그러니 이렇게 논문식으로 설명하는 게 아주 부자연스러운 건 아닙니다. 하지만 상황이 자연스럽든 아니든 무엇을 구구절절 ‘설명’하는 것은 명백히 좋지 못합니다. 주인공이 마우스가 됐던 경험을 연구하고, 기계의 특성을 하나하나 파악하는 건 충분히 ‘보여줄 수’ 있는 설정입니다. 먼저 생각해봅시다. 평생 연구만 하고 살던 과학자가 쥐가 되는 꿈을 경험합니다. 그러더니 바로 다음 컷에 그 꿈의 정체를 모조리 파악해서 하나둘셋 번호까지 매깁니다. 이게 과연 일반적인 사람의 반응일까요?
보통 사람이라면 일단 방금 있었던 일에 충격을 받고, 기계를 멍하니 쳐다보다가, 죽은 쥐를 보고 깜짝 놀라고, 저도 모르게 쥐를 쓰레기통에 던졌다가, 심호흡 몇 번에 뛰는 심장을 가라앉히고, 다시 조심조심 쥐를 꺼내서 탁자 위에 올려놓고, 심도있게 분석하고, 과학자답게 여러 가설을 세운 뒤, 다시 영혼 교환기를 사용하기로 마음먹고… 예, 저 하나둘셋넷 늘어놓는 ‘설명’ 하나가 본래는 최소 2~3회 분량의 ‘장면’이 됐어야 합니다. 영혼교환기라는 설정과 만호라는 캐릭터를 독자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는요.
제가 아쉬운 점은, 이런 ‘보여주기’가 1, 2화에서는 있었다는 겁니다. 쥐가 됐다가 다시 사람으로 돌아오는 과정이 2화 전체를 차지합니다. 그 과정에서 만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떻게 행동하고, 그리하여 어떻게 역경을 헤쳐나가는지 자세히 묘사되지요. 그런데 3화로 돌아온 순간 2화의 문장과 플롯에 살아있던 힘이 싹 사라집니다. 그리고 만호는 어느새 자신의 감정마저 구구절절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작가님에겐 서사를 이끌어갈 문장력이 분명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부분에 힘을 주냐에 따라 그것이 들쭉날쭉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제가 감히 예상하건대 작가님은 1, 2화에 많은 공을 들이셨을 겁니다. 어느 소설에서나 도입부는 중요하니까요. 그러한 노력을 뒷부분에도 똑같이 들일 수 있다면 분명 더 좋은 작품이 탄생할 겁니다.
캐릭터
캐릭터에 대해서는 크게 말씀드릴 게 없네요. 캐릭터에 대해 온전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최소 수십 회는 읽어봐야 할 테니까요. 일단 제 사견으로는 만호의 ‘과학자’ 이미지를 더 강조하면 어떨까 합니다. 그것도 아주아주 나쁜 과학자로요. 상대를 시체로 만들어서 몸을 강탈하는 매드 사이언티스트! 제 기준에서는 아주 멋집니다! 깔깔깔!
히로인(?) 으로 추정되는 민희도 매력적인 캐릭터입니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문제들로 인해 그 매력이 반감되는 감이 있습니다. 제가 민희에 대해 느낀 인상은 특이한 성격을 가진 창고 NPC정도였습니다. 그녀에 대한 모든 것이 만호의 설명만으로 독자에게 전해지니까요.
못다 한 이야기
어, 음, 어… 그러니까, 음…….
쓰다 보니 주화입마에 빠졌습니다. 덕분에 조금 많이 신랄한 글이 된 거 같은데, 작가님이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주시 바랍니다. 처음 써보는 리뷰라 여러모로 어설프지만, 불량식품이라도 먹으면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부디 이거라도(?) 드시고 무럭무럭 자라주세요.
그럼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