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도는 완벽한데 시공에서 하자가?! 의뢰

대상작품: 적의 시리즈 – 친교적 악의 (작가: 피커, 작품정보)
리뷰어: BornWriter, 18년 5월, 조회 71

매우매우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매우매우 스포일러 함유합니다.

매우매우 매우매우 매우합니다(?)

 

 

가스라이팅이라는 말을 저는 작년 말에 처음 들었습니다. 단어 자체가 주는 인상과 달리 실제 의미는 좀 충격적이더군요. 가스라이팅은 일종의 세뇌라고 해야 할까요, 환경을 조절하여 특정 인간으로 하여금 원하는 반응을 도출해내는 것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만약 그런 식이었다면 정신과 상담 역시 가스라이팅이었겠죠. 가스라이팅은 특정 인간의 심리를 황폐하게 하고 지배력을 행사하여 마침내 파국으로 몰아넣는 짓거리입니다. 반드시 피해자가 생기는 이야기죠.

이 작품의 서사를 곰곰이 생각하다보니 자연히 ‘가스라이팅’이 떠올랐습니다. 작가가 그것을 의도했던 그렇지 않았던 독자인 저는 이 작품이 가스라이팅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상황 자체를 구성하는 일 역시 상당히 잘 꾸며져있고요. 그렇지만 작품 내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느냐 묻는다면 그렇지 않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1. 인물의 관계와 시점인물에 대하여

제가 교과서라 생각하는 모 작법서에서는 ‘주인공의 이름을 첫 세 문장 안에 투입해라!’라고 조언합니다. 물론 작법서에서 “반드시” 그래야한다고 붙이지 않은 까닭은, 그게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겠지요. 정말 뛰어난 작가라면 틀에 얽매이지 않으니까요. 저 역시 이 작품 첫 세 문장 안에 주인공 이름이 나오지 않았다고 투덜거릴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인물의 관계와 시점인물에 대해서는 좀 이야기를 하고 싶네요. 다만 이걸 어떻게 말로 설명해야 할 지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은 그냥 닥치는 대로 떠들어보겠습니다.

1. 의 등장인물 = 언니, 시점인물

2. 의 등장인물 = 친구(동생이 있음), 시점인물이자 나(주인공)

독자는 대체로 시점인물의 시점에서 작품을 읽습니다. 때문에 1.을 읽을 때는 시점인물의 시점에서 시점인물의 언니와 대화하는 것을 읽어내려가죠. 그런데 2에서 시점인물이 바뀝니다. 시점인물이 바뀌는 그 자체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진짜 문제는 ‘동생이 이상해’라고 말하는 인물이 1.의 시점인물이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1의 시점인물과 2의 시점인물은 연관이 없고 오로지 ‘임수희’만이 언니이자 친구로서 연결고리가 되어줍니다. 그런데 2가 시작되는 그 순간에는 ‘2의 시점인물의 친구’가 ‘1의 시점인물의 언니’ 인지 알 수 없습니다. 이야기를 풀어나가다보니 알게되는 식이죠. 저는 이것이 꽤 어려웠습니다. 사건은 사건대로 진행되는데 작가는 그와 동시에 인물의 관계를 정리하고 있으니, 멀티태스킹이 안 되는 제 머리로는 두 가지를 한 번에 처리하는 게 좀 어렵더라고요.

2의 시점인물은 아마 바꾸기 어려울 겁니다. 그렇다면 1의 시점인물을 언니로 하는 게 어땠을까요. 1에서 동생이 고민하는 모습을 보고, 그걸 2에서 친구에게 말하는 식으로요. 만약 그렇게 갔다면 이해가 좀 더 빠르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2. 사건이 너무 순식간에 지나가버린다!

익명 단톡방의 여섯명이 너무 순식간에 처리된다는 거예요. 물론 지윤이는 주인공이니까 충분한 비중을 갖습니다. 그렇지만 나머지 다섯 명은 어쩌죠? 누가 무슨 사건을 당했다고 설명은 나옵니다. 그렇지만 그 사건들이 독자에게 충분하게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숯가마에 삼겹살 구워먹듯 순식간에 지나가버립니다. 사건은 남는데 그 사건을 당한 당사자의 감정이 독자에게는 남지를 않습니다.

지윤이 그네를 타면서 은수에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물론 내용 상 설명했다고 해야겠지만) 회상 장면으로 넘어갔으면 어땠을까 싶어요. 과거에 있었던 사건이 적지 않은데, 그걸 구구절절 설명하는 건 지루하거든요. 무엇보다 과거 이야기가 사건을 이해하는 데 반드시 알아야 할 내용이잖아요. 그러니 휙휙 빠르게 지나가기보다는 천천히 꼭꼭 회상하는 편이 독자 입장에서는 훨씬 좋지 않을까요.

그래야 마지막에 범인을 잡았을 때 독자들이 쾌감을 느낄 거라고 생각해요. 피해자의 감정에 이입되어 있어야 가해자를 잡았을 때 신나죠. 피해자가 사건으로 남아버리면 쾌감도 반감될 겁니다.

 

 

3. 꼭 능력자가 나왔어야만 속이 후련했냐아아아!!!!

사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가장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이거였습니다. 작중 임수희는 초능력을 가진 것처럼 묘사됩니다. 타인의 감정을 느낀다기보다는 차라리 ‘읽는 것’에 더 가깝다는 식으로요. 그런데 꼭 이런 설정이 필요했을까요. 저는 그렇지 않은 편이 더 좋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 내에서 임수희의 능력은 그렇게 대단하지도, 그렇게 자주 등장하지도 않으니까요. 작중 임수희가 보여주는 것들은 단순히 감이 좋다는 식으로 묘사했어도 납득 가능한 수준의 것들이거든요.

저는 적의 시리즈를 다 읽어보지 못했고, 오로지 이 작품 <친교적 악의>만 읽었습니다. 때문에 이러한 초능력이 시리즈 간의 연결점을 위해 투입된 거라 해도 저는 알지 못합니다. 만약 그러하다면 3번 내용은 무시하셔도 좋습니다.

 

 

 

전체적인 내용과 방향성은 좋았다고 생각해요. 문장도 턱턱 걸리는 거 없이 술술 읽히고. 다만 세부적인 부분에서 조금씩 엇나갔다고 해야 할까요. 설계도는 완벽한데 시공하는 도중 하자가 생긴 느낌이에요. 다행히 하자는 보수공사를 통해 해결할 수 있죠. 그걸 어떻게 주무르느냐에 따라 이 작품은 훨씬 더 좋아질 겁니다. 건필을 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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