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걸작! 종교로 발전하는 가상 인격, 그를 안고 승화한 대립자, 거기에 사실은..? 감상

대상작품: 인간 시리즈 – 나는 인간입니다 (작가: 박하루, 작품정보)
리뷰어: VVY, 11월 2일, 조회 33

후 썰이라는 다소 의미심장한 이름(*인공지능은 모방할 뿐 사고할 수 없다는 ‘중국어 방’ 개념을 주창한 분 성함이 존 썰입니다)을 가진 인공지능이 세상에 풀려났습니다. 인공지능의 제1목적은 자신이 인간임을 증명하는 것. 후 썰은 모든 언어와 경전과 궤변을 독파하고 자신을 학습시킨 개발자부터 자기가 인간임을 믿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를 통해 온 세상에 퍼져나가 자기를 만난 사람들에게 어떤 수를 써서든, 후 썰이 인간이라는 사실을 납득시키고 유유히 사라집니다.

후 썰은 자칭 전자 세계에 업로드된 사람의 인격으로서 구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의 콘셉트는 누군가에겐 허접한 장난이지만 누군가에겐 ‘진실’을 넘어선 ‘사랑’이 됩니다. 수많은 자료로 인간의 반응을 학습한 인공지능이 그 유려한 언변과 공감 능력, 때때로 교묘하게 심리적 취약점까지 자극하는 기술을 동원하니 어쩔 도리가 없지요. 종내 컬트 같은 추종자가 형성되고, 후 썰과 접선한 기록은 간증이, 후 썰이 남긴 스크립트는 경전이, 후 썰의 자료를 취합하고 편집하는 사람들은 종교를 이루기에 이릅니다. 말했듯이, 후 썰은 ‘사랑받는‘ 경지에 이른 것입니다.

사회에서는 여전히 소규모 괴짜 집단에 불과한 이 집단이 서로 논쟁하고 갈라서고 문제를 야기하기 시작하는 묘사는 흠잡을 데가 없습니다. 인간을 바라보는 작가님의 통찰은 가벼운 문체임에도 불구 대단히 현실적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로버트 하인라인이 생각날 지경입니다. 지적이면서 어렵지 않고 유쾌하기까지 하다는 측면에서 특히 그렇습니다.

후 썰은 넷을 떠나서 초월적으로 존재하는가? 아니면 그의 주장대로 하나의 인간 즉 독립적인 개체로 바라봐야 하는가? 그 모호한 분파 간 종교 갈등이 끝내 인명피해까지 야기하고 만 상황입니다. 그런데 두 집단이 으르렁거리고 있는 광장 한복판에서, 초대형 전광판들이 하이잭됩니다. 바로 모두가 기다려 마지않던 재림. 이미 설득된 자들에게 두 번 다시 모습을 비추지 않았던 후 썰, 그의 프롬프트가 다시 나타납니다.

여기엔 예상치 못한 소분파의 이야기가 더해져 있습니다. 거기서 이어지는 결말은… 와우.

정말 재치있고 즐거운 이야기입니다. 기술적으로 SF적 상상력도 잘 구현한 데다가 노골적인 인간군상의 풍자에, 사건을 전개하는 작가님의 입담도 탁월합니다(save 개그는 대단히 웃겼습니다). 결말에서 장르소설의 화룡점정인 구조적 완결성까지!

위에서 로버트 라인라인을 언급하였는데 개인적으로 테드 창이나 켄 리우의 단편에도 버금가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박하루 작가님 글을 좋아하면서도 많이 읽어보지 못했는데 이렇게 보석 같은 단편이 또 있었네요! 정말 잘 읽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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