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엔딩은 없다 공모 공모채택

대상작품: 오후 3시의 환상 (작가: , 작품정보)
리뷰어: 피오나79, 18년 5월, 조회 48

얼마 전에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 주느라 오랜 만에 피터팬 이야기를 만나게 되었다. 집 없는 소년들이 모여 사는 네버랜드, 그곳에서 피터팬과 소년들은 영원히 어른이 되지 않을 수 있었다. 동화 속에서 피터팬은 어른이 되기를 거부한다. 영원히 어린아이로 남아 매일 모험을 즐기며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기 때문인데, 어린 시절 이 동화를 읽을 때 나도 비슷한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났다. 그리고 사실 어른이 되어 가족과 자기가 속한 사회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이런 심리 상태를 피터팬 증후군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굳이 이런 거창한 이유를 들지 않더라도 누구나 마음에 네버랜드에 대한 자기만의 환상이 있지 않을까 싶다. 힘들 때나 우울할 때 또는 심심할 때 들여다보는 유쾌하고 즐거운 상상 말이다. 그런데 바로 그 상상을 비틀면, 섬뜩하고 오싹한 괴담이 되기도 한다. 바로 이 작품처럼 말이다.

 

혜진과 희연은 매일 학원이 끝난 후 오후 3시부터 6시까지 놀이터에서 놀곤 했다. 그 날도 그런 평범한 오후 3시였는데, 혜진이 과하게 흥분된 표정으로 달려 왔다. 마녀를 만났다는 거였다. 매일 자기 전에 자신의 어린이날 소원을 들어달라고 기도를 했더니, 그 소원을 이루어 줄 마녀가 진짜로 등장했다고. 물론 희연은 들떠 있는 친구에게 차마 헛것을 본 거라고 말하지 못하고, 적당히 맞장구나 치기로 했다. 혜진이 마녀에게 들어달라고 부탁할 소원은 바로 이것이었다.

 

어른들이 사라지게 해주세요.”

 

어린이날 딱 하루만이라도, 어른들 없이 아이들끼리만 놀고 싶다는 거였다. 그리고 별다른 일없이 일상이 이어졌고, 희연도 마녀에 대해서는 까맣게 잊어 버렸다. 그런데 5 5일이 되었고, 정말로 세상에서 어른들이 모두 사라져 버린다. 그들은 어른들이 없는 마트에서 먹고 싶었던 과자도 실컷 먹고, 장난감도 잔뜩 챙기고, 놀이동산의 동물원에도 가서 하루를 실컷 즐긴다. 마녀는 약속을 지켰고, 시간은 평소대로 흘러갔다. 그리고 다음날 오후 3.. 그러나 혜진은 나타나지 않았다. 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이쯤 되면 오싹해지기 시작한다. 혜진은 사실 오빠에게만 애정을 퍼붓는 부모에게 찬밥 신세였으며, 언제나 엄마 아빠는 나 같은 거 신경도 쓰지 않는다고 불만이었다. 타인인 희연이 보기에도 혜진의 부모가 이상해 보일 정도였으니, 아마 당사자인 어린 혜진이 느끼는 결핍은 더 했을 것이다. 혜진은 마녀를 통해서 단 하루의 짜릿한 행복을 맛보게 된 후로, 또 다시 구석으로 밀려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매일이 오늘 같았으면 좋겠다고, 그래서 마녀를 다시 만나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희연은 혜진이를 다시 만날 수 없었다.

 

이후에 이어지는 작은 반전과 마지막 장면은 그야말로 자신만의 네버랜드를 꿈꾸었던 이들에게 찬물을 퍼붓는 섬뜩한 결말일 것이다. 한때 유행했던 잔혹동화의 미니 버전 같은 이야기라고나 할까. 피터팬의 잔혹동화 버전에서는 몸과 마음이 성장하지 못하는 병에 걸린 피터팬이 자신이 원하는 이상적인 네버랜드를 만들기 위해 어른으로 성장하는 어린이들을 모두 죽이는 걸로 나왔었다. 이 작품 <오후 3시의 환상>은 그에 비하면 덜 잔혹한 설정일지도 모르겠지만, 이야기가 자아내는 분위기나 풀어내는 방식은 충분히 흥미로웠던 것 같다. 작가 분이 동화를 쓰고 싶으셨다고 하신 걸 보면, 원래 의도가 잔혹 동화 쪽은 아닌 것 같기도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세상에 그냥 벌어지는 일은 없지 않은가. 특별한 소원을 빌었다면 그에 마땅한 대가를 치뤄야 하는 게 당연할 것이다. 그러니 애초에 이 작품은 해피엔딩이 될 수 없었다는 것. 그리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이 마음에 들었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