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 어떤 내용이냐고 제게 묻는다면 저는 이렇게 답할 것입니다.
호명(呼名)하기 위해 발명(發名)하는 이야기
라고요.
먼저 밝히자면, 저는 이 작품에 연계된 작품들과 세계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런즉 이 단편에 대해서 제가 말하는 것은 모두 이 작품만을 접했음을 전제합니다. 판타지에 대해서 먼저 말해보도록 하죠. 저는 판타지에 있어서 필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상(狀)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말로는 이미지라고 할 수 있겠네요. 즉, 판타지는 그 이름을 들었을 때 어떠한 맥이 잡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반지의 제왕을 들으면 절대반지와 엘프와 난쟁이가 생각나고, 나니아 연대기를 들으면 아슬란과 동화적인 풍광이 그려지고, 어스시의 마법사를 들으면 섬과 섬을 누비는 쪽배의 이미지가 연상되는 것처럼요.(물론 독자마다 연상하는 이미지들은 다르겠습니다만) 판타지는 분명 그 자신만의 세계를 그려내는 만큼 독자적인 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체로 그러한 상은 시각적인 묘사를 통해서 이뤄집니다. 혹은 어떠한 사건을 초두에 제시함으로써 거기에 엮인 사물들을 적절히 배치해 상징적인 ‘첫인상’을 만들기도 합니다. 중요한 건 판타지는 장편이건 단편이건, 이 처음에 제시하는 상이 매력적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 작품은 이미지를 제시하는 것이 다소 미흡했다고 생각합니다. 단편의 맥락을 제시하는 ‘이름’과 ‘용’에 대한 설정은 추상적이고, 이후에 등장하는 제사장, 조감나무, 아뎁투스, 카르마 같은 개념들은 생소하기만 합니다. 어떤 구체적인 이미지를 제시하지 않은 채 사건이 쭉쭉 전개가 됩니다. 사실상 유일하게 구체적인 상을 가진 건 뱀 한 마리의 외형이었죠. (이러한 서술 비중으로 인해 이 뱀이 용이라는 건 너무나도 쉽게 알 수 있었지만, 반대로 이 용이 될 뱀 외에 모든 이미지는 막연하고 흐릿하게 잡혔습니다) 이후에 꾸준히 나오는 조감나무와 회신자 같은 단어들, 마을에 대한 풍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작가가 어떠한 이미지를 구축하고 있단 것은 분명히 느껴집니다. 그런 게 없다면 꾸준히 등장해서 꾸준히 쓰이지 않았을 테니까요. 하지만 독자에게 공유가 안 되면 독자의 덕목 중 하나인 ‘기꺼이 속아주기’가 작동되지 않습니다. 물론 이것은 이 단편이 ‘파생된’ 단편이기에 선행적으로 다른 작품의 독해를 요구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런 점이라면 작가님께서 적당히 걸러들으시길 바랍니다. 만일 선행되는 독해가 요구되는 단편이라면, 적어도 이 작품은 ‘입문자’를 위한 영업용 단편은 아니란 뜻일 테니까요. 이러한 비판은 곧 모든 이미지를 세세하게 그려내고 모든 개념과 설정을 매 단편에 삽입하라는 얘기는 아닙니다. 다만 ‘이름’과 ‘용’을 둘러싼 이야기에 어떠한 색채가 잘 느껴지지 않고, 어떠한 이미지가 자세히 잡히지 않으니 기억하기 쉬운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름이 없기에 기억하기 힘든 것처럼요. 그렇다고 이 단편이 정녕 무색무취인 것은 아닙니다. 비록 명확한 상은 가지지 못할지라도, 그 흐름과 구성이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명확한 편입니다. 다만 마을의 원한관계가 좀 더 앞서서 복선으로 존재하거나 암시됐으면 어땠을까 싶네요. 반전으로서는 좋았지만, 다소 ‘갑자기?’라는 인상이 있던 건 사실입니다. 그 끝에 소녀가 이름을 얻고 앞으로의 여정을 시작한단 점에선 다소 프롤로그격의 이야기라는 생각도 드네요.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이라는 느낌이 강했습니다.(중간중간 소사가 소자로 적히는 등의 오타도 밟혀서 더더욱…) 뭔가 리뷰의 마무리가 갑자기 이게 끝? 이라는 느낌이긴 한데, 정말로 이게 끝입니다. 잘 읽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