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진리를 찾아 헤매는 Stelo입니다.
리뷰에도 여러가지 종류가 있죠. 소설을 소개하고 추천하는 리뷰가 있는가하면, 이 소설을 다 읽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시선’을 보여주는 리뷰도 있습니다.
이 리뷰는 후자입니다. 스포일러?랄 것도 없지만요. 소설을 읽으신 뒤에 리뷰를 읽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이 소설에 대해서는 노말시티님이 훌륭하게 분석해주셨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에 올바름에 비유하신 부분에서는 탁월하다고 느꼈습니다. 이 소설을 이해하고 싶으시다면 노말시티님의 글을 읽으시면 될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다른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리뷰라기 보다는 리뷰를 빌어 제 이야기를 하려는 겁니다. 아마도 #호러를 의도했을 이 소설이 별로 무섭지 않았거든요. 여러분도 무섭지 않으시도록 해독제를 풀어보려는 겁니다. 이건 장사를 망치는 게 아닐까 싶지만요. 그것도 재미있지 않을까 싶어요.
한 줄로 요약하자면… 저 역시 김지훈 같은 사람이라는 이야기입니다.
1.
저는 물리학이 좋아서 물리학과에 진학했습니다. 중3때 삼각법을 배운 뒤에 학교 건물의 높이를 계산했고요. 아직도 고등학교 때 작용 반작용을 이해했던 행복한 순간을 기억합니다. 그 봄은 정말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1-2
저는 ‘디지털 논리회로’ 수업에서 졸던 중이었습니다. 그 날은 교수님이 오지 않으셔서 대학원생 형이 수업을 대신하고 있었죠. 하지만 조교 형은 어느 순간 막혀버리고 설명을 못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 깨어났습니다. 칠판에 뭔가 적혀 있더라고요. 게을러서 예습 따위는 하지 않았습니다. 교과서를 대충 훑어보니 무슨 말인지 이해했습니다. 16진법을 10진법으로 변환하는 회로는 참 경이로웠습니다. 누가 그 방법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참 똑똑하더군요. 저는 앞으로 나가서 조교 형에게 이게 뭔지 설명을 했죠. 조교 형은 긴가민가하다가 칠판에 숫자를 썼습니다. 논리회로를 따라 계산을 하더니…
탄성을 질렀습니다.
“와 정말 되네!?”
1-3
저는 적분의 개념을 이해하고 나서, 극좌표 적분을 스스로 고안해 원의 넓이를 구한 적이 있습니다. 애초에 적분이 아르키메데스가 원의 넓이를 구하던 것부터 시작했으니 자연스러운 수순이었죠. 나중에 교과서에서 극좌표 개념을 보고 고개를 끄덕끄덕거렸습니다.
1-4
한 교수님이 대학원생을 하지 않겠냐며, 교수실로 부르셔서 논문들을 뽑아주시던 기억도 나네요.
언젠가 다들 저를 김지훈처럼 생각하더군요. 저는 평범한 인간인데요.
2.
노말시티님이 말씀하셨듯이… 이 소설이 주는 공포는 꿈을 포기한 사람에게 ‘하면 된다는 희망’을 주는데서 오는 공포입니다.
수학과 물리는 고통스러운 학문입니다. 그 수 많은 수식과 개념들을 외우고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하죠. 그런데 심지어 직접 풀이법을 만들고 증명하는 사람은 놀라울 뿐입니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있을까하고 대학원생의 길에 들어선 사람은 힘겨운 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나는 그런 천재가 아니라는 겁니다. 15살에 NASA에 들어가거나, 핵융합로를 만들거나, 적어도 해외 유명 대학에서 SCI급 논문을 쓰거나, 최소한 과학고에 진학하거나, 고등학교 때 대학교재를 보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거죠.
그 열등감을 직접 겪어보지 않은 사람에게 설명하기는 참 어렵습니다.
저는 그 열등감을 느껴봤습니다. 저는 서울대나 카이스트, 포항공대가 아니라… 적당히 취업을 중시하는 인서울 대학교에 진학했거든요. 과학고는 커녕 영재교육도 받지 못했습니다. 고3 3월 모의고사에서 수학 5등급을 받았던 적도 있고요.
저는 천재가 아니었습니다. 주인공처럼 애매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었죠. 아름다움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아름다운 걸 만들 수는 없는 사람 말입니다. 어느 날 그 모든 게 힘들어서 배게에 얼굴을 묻고 울어본 적도있습니다.
3.
적어도 고등학교 때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저는 물리학과 수학에 기여하는 것도, 세상을 구하는 것도 회사원이 되는 것과 비슷하다 생각합니다.
갑자기 ‘세상을 구하는 것’이 등장했으니 당황하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계몽주의 철학자 칸트가 이렇게 말하기도 했거든요.
“생각하면 할수록 놀라움과 경건함을 주는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내 위에서 항상 반짝이는 별을 보여주는 하늘이며1, 다른 하나는 나를 항상 지켜주는 마음속의 도덕률이다”
저는 사람들이 죽는 걸 싫어합니다. 제가 쓰는 글들을 읽어오신 분들은 이 말이 얼마나 끔찍한 무게를 지녔는지 아시겠죠. 그렇기에 죽어가는 사람들을 구하는 것은 진리를 추구하는 일이며, 정말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 그 진리 추구가 회사원같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3-2
저는 영화 뒤에 나오는 엔딩 크레딧을 좋아합니다. 세상에 그 무엇도 혼자 만든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유명한 배우나 감독의 이름만 기억하지만, 사실 그 한 명 한 명이 없으면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없었을 겁니다.
세상 모든 게 그렇습니다. 스티브 잡스만 혁신가인 게 아니라, 애플에서 아이폰을 디자인하고 설계하고 생산하고 판매한 한 사람 한 사람의 노력이 없었다면… 스마트폰 시대는 열리지 않았을 겁니다. 일단 잡스가 터치스크린이랑 와이파이를 개발한 것도 아니잖아요.
이건 수학도 마찬가지이며, 세상을 구하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진리를 찾는 것은 원래 보잘 것 없어보이는 회사원 같은 일입니다.
3-3
남과 비교하면 내 성과는 보잘 것 없어 보이고, 의미가 없어보입니다.
옆 사람은 100가지 풀이법을 찾아냈는데, ‘나’는 열 가지 밖에 찾아내지 못했다고 해봅시다. 심지어 독창적이라 생각했던 9가지 풀이법은… 이미 남들이 찾아냈다고 합시다. 당연히 ‘나’는 재능이 없구나 싶을 겁니다. 노력하기도 싫어지겠죠.
하지만 저는 개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남들이 모르는 1가지 풀이법을 찾아낸다면, 그게 김지훈 같은 천재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것도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건 정신승리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뒤집어보면, 우리가 그런 노력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닐까요. 세상이 엔딩크레딧에 나오는 한 명 한 명을 존경하고 인정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개성있는 난쟁이들을 인정해주는 세상을 만든다면, ‘나’도 행복하게 수학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가난한 대학원생도 연구자로 생계를 걱정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세상이라고 해도 되겠습니다.
그게 정말 꿈 꿀 수 있는 세상이 아닐까요. 수학도 더 발전하고, 더 많은 진리를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어떻게 그런 세상을 만들지 늘 고민하고 있습니다.
4.
물론 인생의 전부를 일에 쏟아부을 필요가 없듯이, 인생을 진리 추구에 바칠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회사원처럼 자기 할 일을 적당히 하면서, 진리에 기여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진리가 수학인 사람도 있겠지만, 수학은 모르고 소설을 쓰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어디선가 핸드폰 포장을 하거나, 영업 기획을 짜는 사람도 있겠죠. 저는 그 모든 일이 의미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제 삶이 실패했다고 느낄 때마다 회사원으로 일하면서 유엔 난민 기구에 매 달 30만원을 보내는 삶을 살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건 참 영웅적인 삶이죠. 월 3만원을 내는 사람은 많아도 30만원은 힘드니까요.
그리고 그 이상도 가능하리라 믿었습니다. 저는 오래 전부터 [진리의 배]라는 사이트라고 할까 운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브릿G에 소설을 쓰고 공부를 하는 것도 다 그 꿈을 위해서죠. 물론 이 운동이 실패할 수도 있고, 세상을 바꿀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조금씩 세상을 바꿔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5.
저 역시 이 답을 혼자 생각해낸 게 아닙니다. 살면서 많은 책들에서, 많은 사람들에게서 배웠습니다. 브릿G에서 소설을 쓰는 분들에게도 배웠습니다.
그 중에는 조회 수가 0인 분들도 있고,
추천작에 올라간 분들도 있고,
공모전에서 수상하신 분도 있고,
이미 책을 여러 권 냈지만 생계가 어려운 전업작가도 있으며,
공무원이나 회사원으로 일하면서 틈틈히 글을 쓰는 분도 있습니다.
저희의 삶은 보잘 것 없습니다. 다들 할 수 있다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건 압니다. 물론 저희를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죠. 김지훈 같은 사람이 네 소설이 “정말 좋아. 많은 걸 배웠어.” “너도 할 수 있을 거야”라고 하면 고맙다가도, 나를 끔찍한 길로 밀어넣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할 겁니다.
그런 때는 도망치셔도 괜찮습니다. 대학원생이 될 필요도 전업작가가 될 필요도 없습니다. 회사원처럼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고, 남는 시간에 글을 쓰며 살아가도 좋겠죠. 2 물론 취직도 그냥 ‘하면 되는’ 건 아니지만요. 일하면서 글을 쓰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운이 좋으면 책을 낼 수도 있겠고, 많이 팔릴 수도 있지만… 몇 명의 독자만이 나를 알아주는 정도로 끝날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합니다. 남들이 하지 못할 의미있는 이야기를 써주세요.
이게 저의 답입니다. 여러분의 풀이가 “없었으면 하지 못했을” 답이죠.
그저 계속 글을 쓰고, 수학 문제를 풀고, 세상을 바꿔주시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은 저에게 없는 걸 가지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풀이도 아름답습니다.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놀라운 일들을 해내실 거라고 믿습니다.
이렇듯 저는 김지훈 같은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