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일 세상이 나를 억까하나 싶을 정도로 나쁜 일이 몰아치는 날이 있다. 알람을 맞춰 놨는데도 늦잠을 자고, 급하게 나가다 커피를 쏟고, 버스는 눈앞에서 떠나고, 겨우 도착한 자리에서는 예상치 못한 실수를 하게 되는 날. 그런 날은 꼭 하나로 끝나지 않고 연달아 이어진다. 마치 어디선가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다가 타이밍을 맞춰 장난을 치는 것처럼, 작은 불운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럴 때마다 나는 자연스럽게 한 단어를 떠올린다. 머피의 법칙.
어렸을 때 한 번쯤은 들어봤던 말이다. 토스트를 떨어뜨리면 꼭 잼 바른 면이 바닥으로 떨어진다거나, 급하게 나가야 할 때 엘리베이터가 가장 늦게 온다거나 하는 식의 이야기들. 그때는 그저 웃고 넘길 수 있는 농담 같은 개념이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리고 책임져야 할 일들이 많아질수록 그 말이 농담처럼만 느껴지지 않는 순간들이 생긴다. 어떤 날은 정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일이 꼬이고 또 꼬인다. 그럴 때면 ‘오늘은 운 안 좋은 날이구나’ 하고 체념하듯 중얼거리게 된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느낀 점은, 우리가 너무 익숙하게 알고 있던 이 개념을 꽤 신선한 방식으로 풀어냈다는 것이었다. 단순히 개인의 불운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국가 단위의 재난 상황처럼 확장했다는 설정이 흥미로웠다. “지금부터 24시간 동안 대한민국 전체에 머피의 법칙이 적용됩니다.”라는 문장은 짧지만 강렬했다. 평소라면 농담처럼 넘겼을 말이, 재난 안내 문자라는 형식을 통해 전달되니 전혀 다른 무게를 가지게 된다.
요즘 우리는 재난 안내 문자를 너무 자주 받는다. 폭염, 한파, 태풍, 미세먼지, 지진, 코로나 같은 감염병까지. 처음에는 긴장하며 읽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순간 무감각해지기도 한다. 휴대폰이 울리면 ‘또 뭐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날도 많다. 그런데 이 소설은 그 익숙함을 뒤집어 놓는다. 자연재해나 사고가 아니라, ‘불운’이라는 개념 자체가 재난이 된 상황. 그 발상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특히 주인공 하은이 처한 상황이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중요한 면접을 앞둔 날, 전국에 머피의 법칙이 적용된다는 문자.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긴장감이 생긴다. 인생에서 몇 번 오지 않는 기회를 앞둔 때, 우리는 사소한 징조에도 예민해진다. 버스를 놓치면 ‘오늘 뭔가 잘못되려나’ 하고 불안해지고, 작은 실수 하나에도 ‘이거 망하는 거 아니야’ 하고 마음이 무거워진다.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이 있다. 그 당시 만났던 선배들은 후배를 잡는 걸로 유명했기에, 촬영 후면 남아서 욕을 먹고는 했다. 처음이면 촬영 현장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모르는 것은 당연한데 일주일이면 인수인계가 될 줄 알고 그저 나를 내던져야 했다. 내가 소품의 자리를 다 외워야 했고, 나를 콕 집어서 말하지 않아도 귀찮은 일은 다 내가 맡아야 했다.
그렇게 힘든 직장도 하고 싶은 이들이 많다. 사람들이 방송연예계는 늘 동경하며 다가오기 때문이다. 방송작가였던 내 자리도 30대 1을 뚫고 들어간 자리였다.
그래서인지 이 소설 속 면접 장면이 유난히 생생하게 느껴졌다. 면접이라는 공간은 언제나 긴장으로 가득 차 있다. 특히 예술계 면접은 더 그렇다. 정답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어떤 질문이 나올지 예측하기 어렵고, 그 자리에서 자기 생각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말하느냐가 중요하다. 작품 속 교수들이 던지는 질문들이 공격적으로 느껴졌다는 묘사도 현실적이었다. 실제 현장에서는 의도적으로 지원자를 흔들어 보기도 한다. 얼마나 유연하게 대응하는지, 얼마나 자기 생각이 단단한지를 보기 위해서다.
나는 방송국에서 일할 때 촬영 현장을 여러 번 경험했다. 현장은 항상 긴박하게 돌아간다. 카메라가 돌아가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초 단위로 움직인다. 누군가 한 번 실수를 하면, 그 실수가 연쇄적으로 이어진다. 마이크나 조명 장치가 고장 나면 그 과정에서 시간이 계속 밀린다. 출연자가 피곤해 하거나 펑크가 나도 마찬가지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런 기억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작가가 영화 촬영 현장이나 예술계 환경을 꽤 잘 알고 있는 사람처럼 느껴졌던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세밀한 묘사들이 현실과 비슷했다.
이야기의 후반부에서 모든 수험생들에게 문자가 동시에 도착하는 장면은 꽤 강렬한 반전이었다. 처음에는 국가 전체에 적용된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특정 상황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더 직접적으로 작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면접을 마치고 나온 수험생들의 표정이 모두 무표정하다는 묘사가 인상적이었다. 그들은 크게 울지도, 분노하지도 않는다. 그냥 힘이 빠진 얼굴로 조용히 걸어 나온다. 그 모습이 오히려 더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사람은 정말 크게 좌절하면, 감정이 폭발하기보다 오히려 멍해지는 경우가 많다. 눈물이 나지 않을 정도로 지치기도 한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서야, 갑자기 눈물이 터지기도 한다. 소설 속에서 대기실에 앉아 있던 수험생 한 명이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도 그런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또 하나 흥미로웠던 점은, 마지막에 사이렌 소리가 들리는 장면이었다. 처음에는 그것이 머릿속에서 울리는 환청처럼 느껴지지만, 점점 실제 소리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 순간 독자는 다시 처음의 문장을 떠올리게 된다.
“대한민국 전체에 머피의 법칙이 적용됩니다.”
이 설정은 단순한 공포나 재난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우리가 일상 속에서 느끼는 불안과 압박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치처럼 느껴졌다. 특히 경쟁이 치열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하루하루가 작은 재난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시험, 취업, 승진, 계약, 평가. 언제나 누군가와 비교되고, 언제나 결과를 증명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종종 ‘왜 나만 이렇게 일이 안 풀리지?’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머피의 법칙이 단순히 불운을 설명하는 말이 아니라, 인간이 불안을 이해하기 위해 만들어 낸 언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우리는 이유를 찾고 싶어 한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명확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럴 때 ‘머피의 법칙’이라는 말을 떠올리면, 조금은 마음이 편해진다. 마치 그것이 개인의 능력 부족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현상인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나쁜 일이 연달아 생길 때마다 이렇게 생각하려고 한다.
‘지금은 그냥 운이 안 좋을 때야. 잠시 후면 지나가.’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 덜 괴로워진다. 모든 일이 나의 잘못이라고 느껴질 때보다, 잠시 지나가는 흐름이라고 받아들이는 편이 훨씬 견디기 쉽다.
또 한편으로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운’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는 흔히 운이 좋다, 운이 나쁘다라는 말을 쉽게 한다. 하지만 그 운이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아니면 우리의 해석에 따라 달라지는 것인지 명확하게 말하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 면접에서 떨어지는 일은 분명히 나쁜 일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그 경험이 나중에 더 잘 맞는 길을 찾게 해 준다면, 그것은 결국 좋은 일이 될 수도 있다. 반대로, 어떤 기회를 쉽게 얻었지만 그 선택이 오래도록 후회로 남을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요즘 이런 생각을 한다. 운이 좋고 나쁨은 결과가 아니라, 그 일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아닐까 하고.
이 소설 속 하은 역시, 면접을 망쳤다고 생각하는 순간 세상이 끝난 것처럼 느낀다. 하지만 이야기는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사이렌이 울리고, 또 다른 상황이 시작될 것을 암시한다. 그것은 단순한 절망으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니라, 아직 끝나지 않은 삶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개인적으로는, 머피의 법칙을 조금 더 판타지적으로 확장해 보는 상상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어, 정말로 특정 지역에 ‘불운’이 물리적인 형태로 나타난다거나, 사람의 감정에 반응해 현실이 변하는 설정 같은 것. 내가 장르소설을 좋아해서 그런 상상을 하게 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이 이미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절묘하게 넘나들고 있기 때문에, 그런 방향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운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 같다.
결국 이 작품을 읽고 난 뒤 내 마음에 가장 오래 남은 생각은 이것이었다.
나쁜 일이 많이 생기는 날이 있더라도, 그 하루가 인생 전체를 결정하지는 않는다는 것.
살다 보면 정말로 운이 없는 날이 있다. 하지만 내가 운이 좋아서인지 나쁜 일 다음에는 좋은 일이 생기더라.
마치 영화가 끝나기 전까지는 결말을 알 수 없는 것처럼, 우리의 삶도 마지막 장면이 나오기 전까지는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될지 알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은 단순히 머피의 법칙을 소재로 한 이야기라기보다, 불확실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건네는 하나의 메시지처럼 느껴졌다.
나쁜 일이 연달아 생길 때, 우리는 쉽게 좌절한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어딘가에서는 작은 좋은 일이 준비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믿는 마음이야말로, 어쩌면 우리가 버틸 수 있게 해 주는 가장 큰 힘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