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우스 네메토르: 응보의 집행자 감상

대상작품: 제우스 프로토콜 (작가: B형남자, 작품정보)
리뷰어: 드리민, 2시간 전, 조회 12

지금은 복수자 제우스께서 성난 눈길로 저들을 내려다보시기를!

– 아이스퀼로스 <테바이를 공격한 일곱 장수> 484~485행, 천병희 옮김

 

사법 불신은 언제나 있고, 앞으로도 있을 것입니다. 사법 불신이 생기는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그중에는 실제로 사법부의 구성원들이 여러 이유로 공정하지 못한(것처럼 보이는) 판결을 내린다는 것이겠지요. 물론 이에 대한 민중의 감정이 항상 올바른 것도 아니고, 풀리지 않는 오해도 분명 존재합니다. 민의라는 것이 언제나 올바른 법은 아니니까요. 그러한 민중이 사법 시스템을 오해하여 생기는 사법 불신을 적극 해명하여 민중을 이해시키거나, 명확하게 사법 시스템이 귀책이 있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더딘 것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도 유감스러움을 금치 못하는 편입니다.

그러나 사법 불신의 존재에서 다른 의의를 생각해 볼 수도 있겠습니다. 믿지 않음, 믿지 못함은 다르게 말하면 비판적인 사고입니다. 물론 이 비판이 언제나 정당하지 않더라도, 그것이 맹신보다 나을 때도 있습니다. 감히 확대하여 해석하자면, 사법 불신이 존재하기에 사법 시스템과 그 권위 그리고 정의라는 개념 역시 비판과 감시의 대상이 되며, 더 나아가 심판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시대가 흐름에 따라 호색한에다 난봉꾼 이미지가 강해졌으면 강해졌지, 약해지지는 않는 제우스입니다만, 제우스는 엄연히 정의의 신입니다. 그의 권능과 역할을 드러내는 여러 별명 중에는 법 그 자체를 가리키는 ‘노모스(Νόμος)’, 접대의 율법을 다스리는 ‘크세니오스(ξένιος)’, 그리고 복수자이자 응보의 집행자를 가리키는 ‘네메토르(Νεμέτωρ)’가 있습니다.

정의의 신으로서 가지는 제우스의 면모는 제우스의 애인들과 자식들에게서도 드러납니다. 제우스는 율법의 여신 테미스로부터 정의의 여신 디케를 얻었습니다. 데메테르는 때로 ‘법을 가져오는 자’라는 뜻의 ‘테스모포로스’라는 별명을 갖는데, 그로부터 얻은 딸 페르세포네 역시 정의의 여신이라는 뜻인 ‘프락시디케’라는 별명을 가집니다. 일설에서는 제우스는 신들도 어겨서는 안 되는 ‘스튀스 강의 맹세’로 유명한 여신 스튁스로부터 페르세포네를 얻었다고도 하는데, 이 점 역시 주목할 부분입니다. 또한 제우스의 아들들이자 크레테의 왕이었던 미노스와 라다만튀스, 아이기나의 왕이었던 아이아코스는 사후 지하 세계의 재판관이 되었습니다.

일설에 따르면 제우스는 응보의 여신인 네메시스로부터 트로이 전쟁의 원인이 되는 헬레네를 얻습니다. 헬레네의 이러한 출생을 전하는 작품 ‘퀴프리아’에서, 트로이 전쟁은 불경한 인간들을 줄여달라는 대지의 간청에 따라 제우스가 테미스와 함께 계획하여 헬레네의 납치를 이용한 것으로 나타납니다. 정의, 율법, 응보에 따라 불경한 인간들에게 행해진 거대한 심판이었던 것이지요.

 

B형남자 작가님의 <제우스 프로토콜>은 짧은 엽편이고, 그 내용은 다소 진부하고 식상한 편입니다. ‘사법 불신이 판치는 사회에 사법 시스템의 보조 AI가 등장하고, 이 AI가 자체적인 성장을 통해 각성한다. 그리고 사법 불신의 원인으로 사법 시스템을 구성하는 인간들을 지목하여, 그들에게 참회를 요구하여 사회적 파문을 불러온다.’

그러나 이 AI의 이름에 다른 누구도 아니고 제우스를 붙였다는 것이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사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테미스나 디케도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이름입니다. 한국 신화로 눈을 돌리면 정확하게 정의의 신은 없더라도 천지의 질서를 바로 세운 천지왕, 혹은 염라대왕의 도구이자 죄인들의 죄를 비추는 거울인 업경을 사용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연인지, 의도인지 모르겠으나 B형남자 작가님은 제우스를 선택했습니다.

제우스는 모든 것을 쓸어버리는 폭풍의 신이기도 합니다. 뤼카온을 대표 사례로 타락한 인간들을 전부 폭풍우와 홍수로 심판하려고 했지요. “정의는 왜곡되고 있다.”라며 부정한 판결을 저지른 판사들을 12시간 후에 공개하겠다고 통보하는 장면은 흡사 대홍수를 일으킬 결심을 내린 제우스를 보는 것 같습니다.

 

제우스 프로토콜이 내린 통보를 사람들이 받아들일지, 없애려 할지는 알 수 없습니다. 어쩌면 제우스가 다음 심판 대상으로 검찰이나 경찰을 고를지도 모르지요. AI가 정의를 이유로 폭주하여 모든 사람을 통제할 수도 있습니다. 흔한 소재와 전개이지만, 신화를 좋아하는 저에게 있어서는 이름의 무게가 개인적으로는 남달리 느껴지는 작품이었습니다. 뒷이야기가 있다면 좋겠네요.

이야기를 적어주신 B형남자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 개인적으로 무척 흥미롭고 재밌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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