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야 한다. 그것 말고는 이유가 없다. 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무한한 미래들의 작은 조각 (작가: 별고양이, 작품정보)
리뷰어: soha, 18년 5월, 조회 64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 리뷰는 작가의 의도와 다를 수 있습니다.

 

 

1

 

수학 문제를 푸는 방법 중 가장 문학적이라고 할 만한 방법은 귀류법일 것이다.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주변을 검토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그 모습, 마지막으로 끼워 넣은 조각이 그동안 쌓아올린 모든 수식들을 처참히 무너뜨리는 그 순간, 그리고 그 잔해 속에서 머리를 털며 일어난 뒤 뒤를 돌아보며 ‘아 역시 이 길은 아니었어.’라고 말할 때의 미묘한 감정까지 그 모든 순간 하나하나가 소설과도 같다. 결국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할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으면서도 사람은 결승선까지 전력을 다해 달리고, 모든 게 어긋난 장소에 도착하고서는 가지 않기로 선택한 길이 정답이었다는 결말을 미묘한 표정으로 내린다.

귀류법이란 그런 것이다. 올바른 방향이 어느 곳인지조차 알 수 없는 문제들에 정면으로 맞서는 대신, 분명하게 보이는 틀린 방향으로 문제에 상처를 내고 집요하게 파헤쳐 결국 쓰러뜨린다. 하지만 이 방법이 비겁한 방법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귀류법을 제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바깥으로부터 주어졌던 초기조건이 무엇인지 잊지 말아야 한다. 몸은 틀린 방향을 향해 나아가며 잘못된 논리들을 쌓아나가고 있더라도 나에게 속하지 않았던 것은 순수한 상태로 내버려두어야 한다. 그러지 않을 경우 틀린 가정으로 세운 논리가 무너지지 않고, 잘못된 풀이와 함께 성취감을 얻고 만다.

 

2

 

철학과 B는 자신이 공무원A의 마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 한다.

그런데 철학자들이 늘 그렇듯 혜시가 딴지를 걸었답니다. 당신이 물고기도 아니면서, 물고기 마음을 어떻게 아느냐!는 거죠.

철학과 B는 이 고사를 이야기하면서 “그렇다면 제가 당신 마음을 모른다는 걸 당신은 어떻게 아시냐?”고 묻고 의기양양해 했다고 합니다.

공무원 A는 이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공무원 A는 당신이 어떻게 내 마음을 아느냐? 그것도 폭력이고 2차 가해라고 말했답니다.

두 사람은 같은 논리를 펼치고 있다. ‘다른 사람은 내 마음을 알 수 없다.’ 두 사람 모두 문제를 풀기 위한 첫 발걸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서로의 말을 붙잡으며 다투는 와주에 문제는 점점 흐릿해지고, 결국 아무도 결말을 향해 길을 떠나지 않았기에 직장에서 겪은 차별에 대한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모임은 끝나고 만다.

“그 쯤 되니까. 어찌어찌 둘이 화해하고 끝났어. 끝나고 보니까 2시간도 넘게 지났더라. 10분 정도 남긴 했는데 더 하기도 뭐하고… 서로 인사하고 헤어졌어.”

이러한 문제를 귀류법을 사용하지 않고 푸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인간의 수명은 길지 않다. 어느 방향으로 가야하할지도 확실치 않은 상황에서 평생을 바쳐 생각하더라도 풀 수 없을지 모를 문제에 매달릴 만한 여유를 가진 사람들은 거의 없다.

그렇다고 해서 귀류법을 사용할 수도 없다. 귀류법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문제의 초기 조건들을 모두 알고 있어야만 한다. 마지막 단계에서 논리를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끼워 넣을 마지막 조각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김별은 철학자A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그래서 ㅇㅇ 오빠에게 그랬어. 언니 마음을 정말 100% 이해한다고 생각하시냐고. 당연히 아니라고 했어. 자기도 군대에서 잘 적응 못했던 기억이 떠올라서 그렇게 말했을 뿐이라는 거야.

ㅇㅇ 오빠에게 그랬어. 여자들이 조직 생활을 못한다고 생각하냐고. 아니래. 사실 ㅁㅁ누나가 자기보다 더 당당하고 리더십도 있는 건 사실이지 않냐고. 그 상사가 이상한 거라고 하더라. 자기도 그런 차별이 문제라는 건 인정한데. 깜짝 놀랐다니까.

철학자 A는 끼워넣어야 할 조각 몇 개를 가지고 있다. 그는 이 조각들이 전부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이 조각들로 자신의 위태롭게 서 있는 논리가 무너지지 않았을 때 발을 구르지 않게 조심하며 조심스럽게 만세를 부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증명은 완성될 수 없다. 그것이 그 논리가 옳기 때문인 것인지, 아니면 아직 끼워 넣어야할 조각이 남아서 그런 것인지 그는 알 수 없다. 그는 세상의 모든 정보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3

 

‘나’는 등장인물들 중 유일하게 귀류법을 사용할 수 있는 인물이다. ‘나’는 미래에 대한 모든 정보를 알고 있으며, 현재 상황이 어느 결말로 이어질지를 알고 있다. ‘나’는 수없이 많은 잘못된 길을 따라 걸은 후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별과 함께 길 하나를 따라 걷는다. 이러한 과정은 들여쓰기를 통해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이어진다.

하지만 과연 ‘나’는 자신이 걷는 길이 옳은 일인지 정말 확신할 수 있을까? 귀류법을 사용해서 풀어야 하는 문제들은 정면으로 맞서 풀기에는 버거운 것들뿐이다. 미래의 일어날 경우의 수들을 모두 살필 수 있는 ‘나’이지만 처음부터 올바른 길만을 택할 수 있는 능력은 없는 듯하다. ‘나’가 귀류법을 사용하여 문제를 풀었고, 갈 수 없었던 한 길을 선택하여 별과 함께 걷는다면 ‘나’는 그저 다른 길들은 모두 잘못되었다는 것만을 알고 있을 뿐이다. 만약 문제 자체가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었더만 마지막으로 남은 길 또한 잘못되었을 수 있다.

어쩌면 ‘나’는 모든 길을 이미 다 돌아보고 별에게로 되돌아왔을 수도 있다. 모든 만남은 결국 이별로 끝난다. 인간은 영원히 살 수 없다. ‘나’가 확인한 모든 결말이 비극으로 끝났다면 ‘나’에게 무엇이 옳은 길이고 무엇이 잘못된 길인지는 더 이상 중요한 것이 아닐 것이다. 이것이 ‘나’가 철학자 A와는 다른 태도를 보이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귀류법을 사용하여 소중한 것들을 모두 무너뜨려본 ‘나’에게는 철학자 A처럼 다른 사람의 논리를 무너뜨릴만한 열의는 없을 것이다.

무언가를 증명한다는 것은 힘들고 고달픈 일이다. 만약 ‘나’가 그 모든 과정 끝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결국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 ‘나’는 마침내 주변을 둘러볼만한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된다. 설령 잘못된 길을 향해 가는 것일지라도 이는 ‘나’에게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습니다. 별이랑 함께 걷고 싶었거든요.

별이가 어떤 말을 할지는 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또 이야기를 들어주려고 합니다. 그래야 마음이 풀릴테니까요. 웃어줄테니까요. 그리고…

‘나’가 A에게로 돌아와 함께 길을 걸을만한 이유는 하나뿐이다.

저는 별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해야 한다(자기 앞의 생, 로맹 가리). 그것 말고는 결국 비극으로 끝날 삶을 살아갈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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