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소설의 정의를 어떻게 내리느냐에 따라 의견이 갈리겠지만 ‘연애를 하고 싶게 만드는 소설’이라고 조작적 정의를 내린다면 이 소설은 분명 로맨스소설입니다. 다만 연애를 하고 싶게 만드는, 날이 따뜻해지는 이 와중에도 여우목도리건 늑대목도리건 하나 장만하고 싶다며 훌쩍이게 만드는 그런 소설이지만 그 뒷맛은 매우 쌉싸름합니다. 딱 5월의 곰취 맛이로군요. 첫 맛은 5월 신록의 맛이거니와, 뒷맛은 매우 쌉쌀하여 아련하게 남는 그 향취가 그렇습니다.
단편리뷰이다보니 내용 소개가 상당히 많이 들어갑니다. 아직 본편을 읽지 않으셨다면 내용 폭로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이혼 전문 변호사인 나는 굉장히 다양한 사람들의 의뢰를 받아왔습니다. 비가 추적추적 오는 이 날의 첫 손님도 특이한 사유로 이혼 신청을 해왔고, 점심 시간 직전의 마지막 손님 역시 같이 살 수 없는 이유가 생겨서 이혼을 하려 한답니다. 나는 이런 의뢰뿐만 아니라 이러저러한 일을 해치우고 퇴근 시간 전에 직원을 내보낸뒤 퇴근 준비를 합니다. 영업시간도 이미 지난 그 때, 새로운 손님이 등장합니다. 영업시간이 끝났음을 알리고 다음에 찾아오라는 나에게, 그 손님이 묻습니다.
“한 가지만 물어봐도 될까?”
“응.”
“뱀파이어와의 이혼도 의뢰 가능해?”
호기심이 생긴 나는 의뢰인을 사무소 안에 들이고 커피를 대접하며 의뢰인의 사연을 듣습니다.
외국에서 뱀파이어와 결혼했고 그 뒤에 이 곳으로 옮겨왔다는 의뢰인은 여러 이유로 다시 외국에 나가서 절차를 밟는 것은 어렵다 말하고 그간의 사정을 이야기합니다. 뱀파이어인 배우자와 이혼하기를 원하지만 배우자는 이혼을 원하지 않는다. 양쪽 모두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있고 처음부터 뱀파이어라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사기결혼은 아니었으며 매우 사랑해서 한 결혼이었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의뢰인이 읊어주는 그간의 결혼 생활은 아주, 매우 달달합니다. 신혼여행의 영어 단어인 허니문은 꿀단지에 빠진 것처럼 달달한 생활이라는데서 유래했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얼핏 들었는데, 정말로 의뢰인과 그 배우자의 사이는 달다 못해 듣는(읽는) 사람이 나도 연애를 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입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아직도 사랑한다는 뱀파이어와 이혼하고자 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인간과 결혼한 뱀파이어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매번 복잡다단하고 번거로운 검사를 거칩니다. 또 뱀파이어이기 때문에 사람의 피를 먹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고 또 궁극의 맛에 가까운 것이었음에도 그 모든 것을 인내하고 참아냅니다. 글세요. 굳이 표현하자면 한국인의 식단에서 마늘을 빼는 것과 비슷할까요? 김치고 뭐고 그렇게 즐기지 않지만 가끔은 발효음식, 마늘이 들어간 음식이 미친듯이 먹고 싶을 때가 있던데 말입니다.
하여간 그렇게 지극히 사랑하는 부부 중 한 쪽이 일방적으로 이혼을 하고 싶다 요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는 후반에 밝혀집니다. 보기만 해도 행복하고 절로 웃음이 난다고 하지만, 그리고 지금도 그렇고 마지막 장면을 보아도 더 없이 사랑하는 부부지만 그럼에도 이혼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타당했으며 또 공감되더랍니다.
그 부분에 대한 이야기는 슬쩍 감춰두지요.
이 단편은 변호사의 어느 일상적이지만 일상적이지 않은 어느 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평범한 의뢰인이지만 또 평범하지 않은 의뢰였고, 이야기는 변호사의 입장에서 의뢰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의뢰인은 이야기를 하고 또 보여주는 형태입니다. 단순하지만 이 이야기가 색다르게 느껴지는 건 오전 내 등장했던 의뢰인들의 특이한 사항뿐만 아니라 평범하지 않은 존재와 결혼했지만 그 사유는 평범하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거기에 나의 이름은 등장하지 않지만 의뢰인을 비롯한 몇몇 등장인물들은 보통명사의 이름을 갖고 있군요. 뱀파이어는 예외이지만 이 단편의 태그를 보면 투고 시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니 보통명사라고 우겨봅니다.
다 읽고 나면 ‘내’가 그러했듯, 저 역시 글을 닫지 못하고 한참을 들여다 보다 다시 보게 됩니다. 크흑. 이 행복했던 부부는 왜 이리 되었을까요. 옆구리가 시리지만 또 그래서 씁쓸한 단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