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작가가 부족한 부분을 지적해 달라 할 때면 항상 당혹스럽다. 일단 본인부터가 취미로 글을 쓰기에 타인을 평가할 사람이 아닐뿐더러, 혹여나 나의 미천한 글이 작가에게 상처를 입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또한, 리뷰를 쓰겠다고 마음먹은 작품들은 어느 정도 수준이 있다고 느낀 것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또, 아무리 작가의 요청이라지만, 리뷰를 작성하면서 오점을 찾으려고 하는 태도가 은연중에 생기는 듯하기에 글을 쓰기가 조심스럽다. 그렇기에 필자는 이 리뷰가 작가가 원하는 리뷰가 아닐 수도 있다는 점에 대해 미리 양해를 구하고 싶다. 그럼 리뷰어의 변명은 이쯤에서 마치겠다.
필자는 글을 읽으면, 글 자체에서 오는 느낌을 가장 크게 느낀다. 문체나 글의 진행이 필자가 작품에서 받는 느낌을 많이 좌우한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한 표현일 수도 있겠다. 아무튼, 이 작품을 처음 읽었을 때 받은 느낌은, 이어령 같은 문체를 가진 작가의 글처럼 유려하고 매끄러운 문장에서 오는 느낌과는 달랐다. 본 작품의 글은, 앞으로 나아가면서도 어딘가 불안하고 삐걱거린다. 마치 <광장>이나 <서울, 1964년 겨울>처럼. 이런 분위기 속에서 작가는 익명의 “재수생”을 등장시켜 이야기를 진행한다. 그런데 이야기의 진행 방식도 특이하다.
이 작품은 갈래를 단정 짓기 어렵다. 분명 익명의 재수생을 등장시켜 서술자로 삼고 있지만, 그 점을 제외하면 소설의 성격을 띠는 부분을 찾기 힘들다. 다른 등장인물은 등장하지 않으며, 직접 묘사되는 갈등도 찾아보기 힘들다. 기승전결의 인과관계로 이루어진 플롯의 서술보다는 그저 하루 동안 변화하는 “재수생”의 심리 묘사에만 집중하고 있다.
한 사람의 심리묘사가 가장 중추가 되는 장르는 수필이다. 그렇다면 이 작품을 수필로 본다면 어떠한가. 이 분류도 문제가 있다. 수필은 작가 자신의 경험담이기에 1인칭의 서술과 시점이 나타난다. 이 글에선 작가가 작품 속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며, 자신의 일상을 서술한다는 증거가 글 속 어디에도 없다. 이 작품의 시점은 어디까지나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이며, 서술의 초점이 주인공의 눈과 작가의 눈을 오갈 뿐이다.
필자는 이 작품을 ‘수필의 요소를 반영한 소설’이라 해야 할지, ‘소설의 형식을 띤 수필’이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나타나는 장르의 모호함은, 글의 분위기와 맞물리면서 장점으로 작용한다.
서술자의 불안한 심리를 그대로 느끼게 해주는 문체, 수필과 소설을 넘나드는 서술 방식, 그리고 수능이라는 소재까지 이용하여 Clouidy 작가는 독자에게 “재수생”의 삶을 가감 없이 드러낸다. 흔히 보기는 힘든 형식의 글임에도, 이 글에는 빠져들게 된다. 왜일까. 필자의 사견으로는 이 “재수생”의 심정을 우리가 모두 느껴봤기 때문이다. 독자의 강한 공감을 얻은 “재수생”은 이제 내 옆에 앉은 이름 모를 학생으로 독자에게 다가온다. 또, 독자는 이 작품을 “재수생”이 자신을 3인칭으로 지칭하며 쓴 수필처럼 느끼게 된다. 그리고 “재수생”의 수필을 읽던 독자는 어느샌가 “재수생”의 일일은 곧 나의 하루였거나 하루임을 깨닫게 된다.
필자는 이 작품을 읽고 나서 한 편의 순문학을 읽는 것 같았다. 특히 그중에서도 현대 문명이나 이념적 갈등에 비판적인 성격을 취한 작품들과 유사하다. 그 작품들은 당대 사회의 모순을 부각하고 고발한다. <노베이스 재수생의 일일>도 마찬가지다. Clouidy 작가는 그 작품들에서 나타난 특징들을 오늘날 10·20세대의 상황에 맞게 재해석하여 우리 사회의 어두운 일면을 상기시킨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는 <노베이스 재수생의 일일>은 짧은 편임에도 독자들에게 긴 여운을 주는 수작이라 평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