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바탕의 소동극. 그러면서 독자를 이리저리 휘두르고 조였다 풀어줬다 가지고 노는 맛이 제법인 단편입니다. 장르는 SF. 냉장고가 한 번 고장나 음식이 상할까봐 걱정해 보신 분들은 소설 속 우주선 ‘석빙고’의 곤란이 훨씬 잘 이해되실 것 같네요. 바로 그런 상황을 겪습니다. 어째서 먼 미래의 우주선이 전근대적인 수은 온도계로 냉장고를 유지하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 온도계가 고장나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순수 수은이 없어서 우리의 우주선 ‘석빙고’는 음식 보존의 치명적인 차질로 식량난이라는 중차대한 문제에 직면합니다.
두 명의 입을 줄이지 않으면 모두의 생존이 불가능한 상황.
우주선의 모든 대원들은 집단 지성의 힘을 빌려 그 문제를 해결해 보려 하지만 해결은 커녕 서로에 대한 불신과 무시, 갈등만 일으키고 맙니다. 내놓은 대책들이 하나같이 희생하는 쪽에서 자신은 열외하려는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었기 때문이죠.
그런 까닭에 이 소설을 읽으면 어쩔 수 없이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란 우화가 떠오릅니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모두가 거기 나오는 쥐들과 똑같거든요. ‘무한도전’이 한 때 퍼뜨렸던 ‘나만 아니면 된다’는 게 여기도 만연해 있는 것이죠. 당연하게도, 가장 힘들고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일은 가장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사람의 차지로 돌아갑니다. 그게 어떤 일이고 누가 그 일을 하게 되는지는 스포일러가 되기에 말하지 않을게요.
사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이 단편은 리뷰로 쓰기가 참 어렵습니다. 사건이 쉴 새없이 전개되는데, 소설을 재밌게 즐기려면 사전에 아무 정보 없이 읽는 게 가장 좋거든요. 그냥 이야기가 흘러가는대로 푹 빠져서 읽어야 제대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단편이니 이러니 저러니 떠드는 리뷰는 ‘거드는 왼 손’이 아니라 오로지 방해하는 왼 손이 될 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리뷰란 걸 쓰고 있군요. 이러는 제가 이상해서 왜 쓰고 있느냐고 물으신다면, 이렇게 재밌는 이야기에 리뷰가 하나도 없는 게 너무 안타까워서라고 말하겠습니다. 그런데 쓰고 나서 더욱 실감했습니다.리뷰가 없는 게 당연했다는 것을. 소설에 나오는 사건들을 스포일러의 위험을 피하면서 쓴다는 게 너무 어려워서라는 걸. 당신이 이 소설에서 얻을 수 있는 재미를 망치지 않기 위해 이렇게 노력하고 있는 저를 봐서라도 이처럼 두리뭉실하게 쓰는 것을 부디 용서해 주시길.
SF는 설정 놀음이라고 할만큼 초반 설정에 많은 비중을 할애하는 경향이 많은데, 이 소설은 그런 경향을 가볍게 무시하듯 상황을 툭 던져놓고 시작해서 이채로웠습니다. 진행에서도 그렇더군요. ‘설정 따위야 독자가 소설을 읽으면서 스스로 알아가면 되는 거고 일단 이 사건과 인물들이 얼마나 재밌는지 듣기나 해 봐!’라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시종 유쾌한 분위기가 유지되어 간만에 즐겁게 읽은 듯 하네요. 가볍게 즐길만한 유머러스한 작품을 찾으시는 분들께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