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그책 작가님의 글은 접근이 좀 힘듭니다. 취향의 차이일까요? 호러 장르에서 어쩌면 가장 쓰기 힘든, 인간의 심리와 두려움을 소재로 대부분의 작품을 집필하는데, 어찌 보면 대중성과는 약간 벗어나 있기도 해요. 그러나 곱씹으면 또 가장 무서운 게 바로 이런 심리 소설입니다.
단편 소설을 체계적으로 최초로 정의한 [에드가 앨런 포우]가 바로 이런 심리적인 호러를 아주 잘 다뤘습니다. 그러니까, 비현실적인 상황과 죽음, 한없이 작아지는 나와 두려움, 현실이 기반이 된 절망. 아주 유명한 대표적인 단편 ‘검은 고양이’ 는 너무나도 유명해서 계속 재평가되기도 하죠. 저 개인적으로는, 단편을 정의하고 정리한 포우의 대표작들이 대부분 호러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것에 큰 감명을 받았고 이것이 지금 호러 소설을 쓰는 것에 많은 영향을 끼쳤어요.
아, 포우 같이 쓴다는 게 다 좋다는 건 아닙니다. 저 역시 포우를 존경하나, 포우 스타일의 글은 쥐약이거든요. 시간이 많이 지나 호러 카테고리도 수많이 세분화 된 장르들이 생겨났고, 저도 저 나름 맞춤형의 글을 쓴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는 써보고 싶다라는 욕망은 있어요. 그러니까 포우의 초기 스타일의, 빡빡하고 조이는 품격.
서론이 길었네요. 감히 말씀 드리면, 아그책 작가님의 스타일은 바로 이 포우의 초기작과 비슷합니다. (개인적인 감상이니 욕은 하지 말아 주세용…)
이 작품 변수가 보여주는 것은, 보여주려 하는 이야기는, 정말 세 문장이면 끝납니다. 짧은 분량이니 스포는 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그 간단한 플롯을 아우르는 건, 오로지 묘사입니다. 그것은 보면서 떠올리는 장면이 될 수도 있고, 화자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같이 이입하며 공유할 수도 있습니다. 변수에서 보여주는 묘사는 이야기를 보여주는 부가 아닌, 점점 이야기를 이기는 주가 됩니다. 그리고 그 묘사만으로 이미 기승전결에 다다르고, 여운이 담긴 결말로 마무리가 됩니다.
이야기를 이기는 묘사의 힘이 대단한 작품입니다.
탄탄한 문장력이 있어야 하고, 하나하나 고민해야 하죠. 저는 못 쓰는 글입니다. 하지만 써보고 싶은 글이기도 합니다. 아그책 작가님의 기존 작품 중, 블록이라는 글도 훌륭한데, 제가 그 글을 처음 보고 감탄한 것은 오로지 이 문장 하나였습니다.
무릎에 두 손을 버티고 선 내 그림자가 보도블록 아래 흙 알갱이들로 부서졌다.
굉장히 고딕적인, 우아하며, 품격이 보이는 문장입니다.
변수에서도 물론 등장합니다.
다시 입천장이 울음으로 들끓는다.
집게를 입 안으로 들이밀어 넣어 내부를 긁어내는 느낌이고, 이런 느낌을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가에 대해 말하고 싶어요. 초반에 언급한 것처럼, 어쩌면 가장 쓰기 힘든 호러 소설일 수 있겠죠. 그리고 이런 느낌은 한 호흡으로 읽어 내려가는 분량에서 가장 빛날지도 모릅니다. 분명 엽편의 분량이지만 절대로 가볍지 않아요.
모파상의 [오를라] 같은 환상적인 오컬트 고딕 소설을 쓰면 잘 어울릴 것도 같아요. 물론 현실적인 절망을 기반으로 하지만, 도전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까 싶네요.
이상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