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쓰기에 앞서, 저는 원래 무협 독자가 아니라는 점을 밝힙니다.
- 장르에 대해 하나도 모르면서 장르에 대해 쓰기
말도 안 되는 일이죠.
앞서 말씀드렸듯 저는 원래 무협 독자가 아닙니다. 장르 소설을 읽는다고 하더라도 모든 장르를 꿰뚫고 통달할 수는 없는 법. 아무리 장르 소설을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읽다보면 아, 이 장르는 정말 나와 맞지 않는구나 싶은 것 하나쯤은 있을지도 모릅니다. 불행하게도 저에게 있어 무협이 바로 그러한 장르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특정 시기의 동북아시아 문화권에서 자라나며 완전히 무협의 전통을 저버릴 수는 없는 법. 어렸을 때 외할머니를 따라 무협 영화를 잠깐 본 기억은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력이 매우 좋지 않다면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 스쳐지나간 한순간을 생생하게 떠올리기란 지극히 어려울 것이고, 그것이 자신의 삶에 별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면 더욱 그러할 터입니다.
불행히도 무협은 저에게 아무런 감흥을 남기지 못했습니다. 재미는 있었습니다만, 그것이 인생을 바꿀 만한 재미는 아니었던 셈입니다. 외할머니 옆에 앉아 아무것도 모르면서 무협 영화를 보던 어린아이는 언젠가 치매 걸린 외할머니를 옆에서 간호하며 주무실 때마다 리모컨으로 TV 프로그램을 몰래 돌리는 어른이 됩니다. 어린 시절 무협 영화를 대여해주던 비디오 가게가 사라져갔듯, 무협은 그렇게 제 삶에서 멀어졌습니다. 다만 ‘저 사람들은 왜 저러고 살지? 이해가 안 되네.’ 정도의 막연한 인상만이 남아있을 뿐입니다.
이 글도 역시 그러합니다. 물론 <들개이빨> 자체는 잘 쓴 글입니다. 저는 장르를 뛰어넘은 재미를 느꼈고 객관적으로 따져도 다른 사람에게도 역시 그러할 것을 압니다. 그러나 저는 이 <들개이빨>을 근본적으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들개이빨을 들고 사지로 뛰어드는 들개의 심리를 본질적으로 이해한다?
그것에 깊이 공감한다?
더 나아가 그 모습에서 하나의 정취를 느끼고 깊이 감탄한다?
적어도 저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러니, 무협이라는 장르에 대해 하나도 모르면서 무협에 대해 쓰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임을 알면서도 제가 이 리뷰를 쓰는 까닭은, 어렸을 때부터 느꼈던 ‘저 사람들은 왜 저러고 살지? 이해가 안 되네.’라는 짧은 소감의 근원을 탐구해 들어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2. 협
협이란 대체 무엇일까요?
위에 언급한 치매 걸린 외할머니가 아직 살아계실 무렵 할머니가 좋아하실 만한 영화를 필사적으로 찾아다녔더랍니다. 할머니는 어린 시절 영화관에 가서 밤늦도록 영화를 보던 기억을 유난히 자주, 그것도 매우 즐겁게 말씀하셨거든요. 뭐, 그 원대한 계획은 “노인네가 주접스럽게 영화관 따위 가는 게 아니다!”라는 일갈과 함께 스러졌습니다만, 그러다보니 보게 된 영화가 있습니다. 장철 감독의 <오독>이지요.
장철 감독의 최고작은 아니라고 들었고 객관적으로 보아도 소품이라는 말이 걸맞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오독>이 유난히 제 기억에 남아있는 까닭은 그 영화를 다 보고 난 감상이 다음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뭔가 재미있고 비장하고 나름 멋있었는데 왜 나는 이 영화를 이해하지 못한 것일까?”
조금 더 풀어보자면 이렇습니다.
영화의 발단 부분, 누구나 존경하는 관리가 나옵니다. 그런데 그 관리에게 상인이 사과를 던져줍니다. 저는 그때 “아, 저 관리가 사사로이 금품을 수수하는 부정한 놈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저 장면을 넣은 것이로구나!”하고 굳게 믿고 이야기 내내 그 관리를 주시했습니다.
아니더군요.
그 관리는 무협에 무지한 사람도 누구나 다 협의 정신을 계승했다고 여길 만한 의로운 이와 친분이 있습니다. 그들은 한 식당에서 대화를 나눕니다. 무공을 닦아도 내보일 수 없는 현실에 분개하는 것은 좋습니다. 그런데 그 의로운 이가 갑자기 “으아아아!”하고 크게 기합을 넣더니,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무공 수련하는 사람을 처음 보시오!”라고 되려 일갈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때 “저 사람은 혹시 아주 기본적인 사회성이 부족한 건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니더군요.
영화의 결말이 가까워지자, 무협에 무지한 사람도 누구나 다 협의 정신을 계승했다고 여길 만한 의로운 이가 죽습니다. 그러자 누구나 존경하는 관리는 잔뜩 화가 나서는 단골 식당에 들어가 사람을 물린 후 벌컥벌컥 술을 아무거나 들이킵니다. 저는 그때 식당 주인이 쫓아가서 “나리, 무슨 일이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아무리 단골이라고 해도 이러시면 곤란합니다.”라고 간곡히 이야기할 줄 알았습니다.
아니더군요.
대체 이 현상은 무엇일까요?
3. 들개이빨
제가 그 영화를 한 10번은 넘게 보고 또 본 끝에 내린 결론은 이것입니다.
이 사람들은 결국 나와 다른 세계 속에 사는 다른 문화 속 다른 사람이구나.
<들개이빨>을 되풀이해서 읽고 느낀 바도 그러합니다.
이 사람들은 결국 나와 다른 세계 속에 사는 다른 문화 속 다른 사람이구나.
<들개이빨>의 이야기는 지극히 멋지고 비장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현대 사회로 가져가서 적용해 보세요.
아무리 이야기가 비장하다고 한들 기본 토대가 어그러지는 순간, 이야기의 논리도 같이 어그러지고야 말 것입니다. 일단 중년인의 대척점에 서 있는 협객의 이야기부터 말이 안 됩니다. 아무리 악당이라고 해도 떠돌이 무사를 사사로이 처단하는 것이 말이 됩니까? 사법부가 엄연히 살아있는데 순간의 의협심에 사로잡혀 인간을 살해하다니, 말이 안 되는 소리입니다.
중년인을 바라보면서 느낀 감정의 정체도 그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숭고하기까지 한 비장미를 깔고 있지만, 그렇게 사는 것이 제가 사는 세상에서도 곧 옳게 사는 것이냐 묻는다면 저는 대답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악당이라고 세간에서 비난하는 자의 복수를 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비장함이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근대 사회의 근본적인 가치와 덕목에 얼마나 어울릴까요? 자유와 인권이 그 비장미 안에 들어갈 틈새가 있을까요? 저는 회의적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글을 근본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사람으로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무협을 보는 순간마다 의구심을 느끼며 결국 멀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제가 사는 세상의 논리와 맞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현대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여성이고, 세상이 점점 바뀌어감에 따라 어렸을 때부터 영어 과외를 받고 최신 문물과 문화는 당연히 서양의 것이라는 논리를 의식적으로도 무의식적으로도 학습하며 자라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무협에 대한 어린 시절의 인상이 고작 ‘임청하는 세상에서 제일 예쁘다. 멋진 여자는 자고로 남장을 해야 한다. 그런데 저 사람들은 왜 저렇게 살지? 이해가 잘 안 되네.’ 정도로 끝난 까닭은 불행히도 그러합니다. 멋지다거나 비장하다는 직관과 감정을 넘어서서, 제가 사는 세상의 논리와 너무나 말이 어긋났기 때문이지요.
다시 말하자면, 저는 제가 몸을 담은 세상에서 계속 이렇게 살라고 하는데도 다른 세상에서 다른 가치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정도로 공감 능력이 뛰어나지는 못했던 것입니다. 인류학과에 진학할 수도 있었는데 안 가길 정말 잘했지요. 대학원 가서 진지하게 연구자가 되어 봤자 돈만 버리고 끝났을 테니까요!
다른 세계 속에 사는 다른 문화 속 다른 사람이더라도 사람은 사람이라 동감할 구석은 있지만, 타인은 타인입니다. 슬프게도 사람은 타인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무협을 읽는 것일까요?
특별히 공감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라서? 아닙니다. 무협의 바탕이 되는 기본 정서와 문화가 지금까지 존속하기 때문이지요. 만약 그러지 않는다면 저는 ‘왜 나는 이것을 이해하지 못할까?’라는 의문을 품기는커녕 영화를 보는 내내 열심히 졸았을 것이고, 이 <들개이빨>을 읽으면서 ‘이렇게 멋진 소설에 왜 나는 동감할 수 없을까?’라는 의문을 품기는커녕 ‘유명한 작가님이로군요, 하지만 저와는 맞지 않네요.’라며 리뷰를 쓸 생각도 하지 않고 첫머리만 대강 보다가 잊어버렸을 터입니다.
이쯤에서 눈치를 채신 분도 있겠지만, 이 글은 주렁주렁 님의 <무협의 지기와 강호>(이 지극히 멋진 평에 담긴 참뜻을 생각하면 ‘지기’와 ‘강호’를 꼭 한자로 쓰고 싶은데, 맥에서 사용하는 글자 입력기가 오작동을 일으키는 바람에 한자 입력이 정상적으로 되지 않습니다.)에 대한 다른 형태의 답이기도 합니다.
그분은 무협에 대해 진정 아는 사람이 왜 무협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지, 그리고 <들개이빨>이 자신이 생각하는 무협의 정신을 얼마나 잘 담아냈는지에 대해 쓰셨지요. 그렇다면 저는 무협에서 말하는 도리가 점점 이 땅에서 멀어져가는 현실에 대해, 그리고 그러한 사회 속에서 자라나는 사람들이 장르 소설의 독자가 되어가는 세상에 대해 쓰고 싶었습니다.
무협의 미래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아닙니다. 장르는 이유 없이 지속하지 않고 무협을 사랑하는 사람은 꾸준히 나올 것입니다. 그 사람들은 계속 무협을 이어나갈 것이고 무협이 이어지는 한 사람들은 계속 무협을 읽어나가겠지요.
그러나 언젠가 세상은 달라지기 마련이고 장르 또한 세상에 맞춰 그 모습을 바꿀 것입니다.
저는 현대 사회의 무협이 어떤 모습일지, 그리고 진정한 무협의 전통은 이 사회에서 어떻게 이어질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