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른 감상입니다.
스포일러 있습니다.
과거부터 자주 쓰인 소재가 있습니다. 인간이 아닌 존재가 인간이 되는 소재입니다. 문화를 가리지 않고 동물이나 식물, 가끔은 돌이 인간이 되는 설화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현대에 그 설화는 인공지능으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매체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인공지능과 관련된 작품은 꾸준히 등장하였습니다. 인간과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발달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가끔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정말 인공지능은 인간이 된 걸까? 정말 인간처럼 생각하는 걸까?
‘J의 내력’을 읽으면서 든 생각은 이것이었습니다. J-EK104는 인간과 소통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로봇입니다. 하지만 소통하지만 인간은 아닙니다. 그저 입력과 출력이 반복될 뿐입니다. 소년은 ‘책 박물관에서 그림 그리는 안드로이드’를 그려주길 원합니다. 하지만 J는 자신의 모습을 데이터에 없었습니다. J는 잠시 고민한 끝에, 소년과 이마를 맞대고 소년의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그립니다.
소년에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상적이면서 누군가에게는 로맨틱한 장면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J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습니다. 그저 박물관을 찾은 고객 중 하나로 기억되고 단기 데이터는 곧 삭제되었습니다.
그 괴리가 재미있었습니다. 많은 이야기에서 안드로이드는 사회적 위치만 다른 인간처럼 그려지곤 합니다. 하지만 이 소설은 J는 인간과 소통하도록 만들어졌지만 결국 인간이 아닌 존재로 선을 긋습니다. 물론 J의 목적은 그림책의 삽화를 그리는 것입니다. 필요 이상의 성능은 들어가지 않습니다.
하지만 읽으면서 더욱 발달된 다른 인공지능은 다를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대체적으로 인간을 속일 수 있다면 인간이 되는 걸까요? 소년에게 J가 마치 실제와 같은 사람으로 보였다면 그 소년에게 J는 인간일까요? 인간 외의 것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요?
무작정 쓰고 보니 인간성에 대한 고찰하는 진중한 소설로 보이지만 그런 소설은 아닙니다. 등장하는 인간들이 J를 대하는 걸 보다보니 그냥 제가 그런 생각을 들었을 뿐입니다.
내력이라는 제목처럼 소설은 J와 주변 인간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등장하는 인간들은 여러모로 복잡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더치 와이프를 만들면서 어린이가 주 관람객인 박물관에 기부를 한다거나, 연출을 위해서 매일 J의 기억을 지우는 박물관장도 그렇고요. 책 박물관을 묘사하는 방식이나 인터넷에서 미연시파와 책파가 갈려서 키배를 하는 모습도 그렇습니다. 읽으면서 약간 블랙 코미디 같은 느낌도 들었습니다.
아, 그리고 소년과 J의 에피소드, 그리고 폐관 시간이 될 무렵에 연출은 정말 좋았습니다. 작가 분의 다른 소설도 생각날 때마다 읽는 편인데 그 중에서도 가장 이미지가 선명하고 환상적인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 소설의 분위기가 마음에 드셨으면 다른 소설도 읽어보시면 좋을 듯 싶습니다.
PS. 요재 책 박물관이라고 하는데, 과연 요재가 무엇일까요? 요재지이의 그 요재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