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하고 세세한 설정으로 더욱 신나게 읽었습니다.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나인스카이즈(초고) (작가: 랄프C, 작품정보)
리뷰어: 후더닛, 18년 3월, 조회 41

다시 한 번 사이버펑크 작품을 만나니 반갑네요.

현재 25회까지 연재된 ‘나인스카이즈’는 단순하게 말하자면 영화 ‘매트릭스’와 ‘인셉션’이 뒤섞인 느낌입니다.

그런데 소설을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것은 영국 드라마 ‘닥터 후’의 한 에피소드에 나왔던 ‘저승 세계’였습니다. 그 에피소드는 저승의 개념을 영화 ‘매트릭스’와 같은 곳으로 그려 신선한 느낌을 주었는데요, 인간의 영혼이 하나의 디지털 데이터화 되어 거기 머무르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정작 그 주체는 가상 현실 속에서 생전의 육체와 의식으로 살아가게 되지요. 보면서 종교가 말하는대로 저승이라는 게 존재한다면 저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했습니다. 물론 그 방대한 서버를 과연 누가 관리하고 있는가 하는 것에 대한 건 논외로 하고 말이죠.

소설은 그와 비슷한 ‘마인드루프’를 주 무대로 하여 진행됩니다. 영화 ‘매트릭스’와 비슷한 가상 현실인데, 오직 개인만의 세계라는 점에서 그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전적으로 개인만을 위한 가상 현실 세계인 것이죠. 그렇게 가상 현실 속에 머무르는 개인의 의식을 소설에선 ‘스피릿’이라 부릅니다. 네, 영혼이죠. 그러한 개인 가상 현실이 모여 있는 곳이 ‘마인드루프’입니다. 거의 25만이나 됩니다. 이만하면 도시라고 해도 무방하겠죠. 이렇다 보니 닥터 후의 ‘저승 세계’가 연상되었던 겁니다.

그러면 영화 ‘인셉션’은 왜?

그건 꿈과 관계 있어서가 아니라  ‘마인드루프’가 주로 트라우마나 조현병처럼 마음에 커다란 상처를 입었거나 정신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을 치료하기 위해 이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냥 그 곳이 더 좋아서 머무르는 사람도 많습니다만 그래도 소설은 그렇게 타인의 정신에 간섭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보여주기에 ‘인셉션’이 떠올랐던 것이죠.

개인적인 생각으론 지금까지 말한 이 두 가지가 ‘나인스카이즈’를 이해하기 위한 핵심으로 보입니다.

이런 식의 ‘사이버펑크’는 처음 만나보았기 때문에 꽤 독특한 느낌을 받으며 읽었습니다. 작가도 그리고 있는 세계가 독자에게 그다지 친숙하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설정을 설명하는데 많은 분량을 할애했더군요. 덕분에 설정을 이해하는 건 쉬웠는데 좀 과도한 친절로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핵심적인 사항을 추려내 다소 가지를 쳐낼 필요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살짝 지루해지는 부분도 있었거든요^^;

이야기는 시연이란 한 여자가 문득 겪게되는 기이한 하루에서 시작합니다. 일어나 보니 도무지 자기가 쓴 것 같지 않은 쪽지가 있는 것입니다. 점으로 표기된 쪽지였는데, 처음 보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시연은 그게 점자이며 자신이 그걸 읽을 수 있다는 걸 놀라움 속에 알게 됩니다. 점자로 씌어진 그 문자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으로 가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 말에 따라 호기심 삼아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오쿨리 투이’역으로 간 시연은 그만 트럭에 치여 죽고 맙니다. 이것이 소설의 프롤로그 입니다.

본편이 시작되면 인물이 바뀌어 이제 막 ‘국민정신건강진흥원’으로 차출되어 ‘마인드루프 일을 맡게 된 사이버안전국 소속 경찰관 구한울의 입장에서 전개됩니다. 그는 줄여서 ‘국정원’인 ‘국민정신건강진흥원’의 원장 장사인에게서 누군가 ‘마인드루프’에 있는 ‘스피릿’을 죽이고 있다면서 그 사건을 해결하라고 말합니다. 한울은 자신이 경찰이 된 동기인 ‘마인드루프’와 관련된 어머니의 죽음을 조사할 적기라 생각하고 거기에 응합니다. 단 한 명의 파트너인 류미정과 함께.

그러나 근무 첫 날부터 만만치 않은 난관에 봉착합니다. 조사차 가게 된 ‘개인 루프’에서 버스로 돌진한 트럭 때문에 사망한 스피릿 때문에 그만 ‘디폴트’에 빠지고 만 것입니다. 바로 그 ‘스피릿’이 시연이었습니다. ‘디폴트’란, 루프의 주인인 스피릿이 죽어 세계가 지워지는 바람에 빠져나오지 못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전원이 끊어져 갇히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죠.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밝혀집니다. 이러한 스피릿, 즉 시연의 죽음이 계속 반복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구한울과 류미정의 존재 또한 과거부터 반복되고 있었고 말이죠. 다시 말해 시연의 개인 루프는 정말로 루프되고 있었던 겁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그리고 누가 왜 시연을 계속 죽이는가?

이것이 바로 구한울과 류미정이 풀어가야할 미스터리입니다. 25회까지 연재된 현재는 그 이유가 밝혀진 상태입니다. 그것으로 작가가 처음부터 이야기 설계를 제대로 만들어놓고 풀어가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더군요. 개연성이라고 해야 하나, 아무튼 앞뒤가 잘 들어맞습니다.

앞서도 말했듯, 독특한 세계관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세심한 설정 그리고 개연성 있는 전개로 ‘나인스카이즈’는 꽤 읽을만한 작품입니다.

예전에 SF를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SF란 어쩌면 자신이 상상했던 세계를 논리와 합리로 실체화 하는 작업일지도 모르겠다고 말이죠. 아마도 아서 G 클라크의 ‘라마와의 랑데부’ 혹은 할 클레멘트의 ‘중력의 임무’를 읽으면서 했던 것 같습니다. ‘나인스카이즈’를 읽으면서도 그런 생각을 하게 되네요. ‘설정 놀음’도 SF를 읽으면서 얻을 수 있는 큰 재미 중의 하나죠. 그런 걸 좋아하신다면 ‘나인스카이즈’는 더욱 최적의 선택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나인스카이즈’는 무슨 의미일까요? 아직 소설이 그것에 대해 밝히고 있지 않아서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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