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작품 잘 읽었습니다! 그럼 리뷰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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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이야기는 초반 후크가 중요하다고들 합니다.
그렇다면 후크가 무엇이냐? 도입부의 몇 페이지에, 인상적인, 혹은 미스테리한 사건을 배치해서 독자들이 계속 페이지를 넘길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요소를 의미하죠.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상당히 흥미로운 후크로 시작합니다. 운명적으로 마음에 드는 여자를 만난 한 남자가, 그녀와 함께 오붓한 시간을 보내려고 합니다. 그녀와 길 건너편에 있는 ‘어떤 장소’에 가서 시간을 보내기로 하지요. 그래서 횡단보도를 건너는 순간… 그들은 차에 치입니다.
이후 남자는 정신을 차리고, 자신이 병원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충격적인 진실을 알게 되지요. 사실 횡단보도를 건넌 사람은 자신 혼자 뿐이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렇다면 독자들의 머릿속엔 이러한 질문이 생기지요. ‘대체 그 여자의 정체는 뭐지?’ ‘남자가 가려고 했던 그 ’장소‘는 대체 뭘까?’ 등등. 만약 이야기가 계속 이어진다면 독자들은 계속 그 궁금증을 유지한 채 페이지를 넘기게 될 것입니다. 상당히 인상적인 도입부에요. 좋습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시간이 지납니다. 그리고 남자는 바에 가서 바텐에게 자신이 겪었던 이 이상한 경험에 대해 얘기합니다. (사실 바 얘기가 먼저 나옵니다. 액자식 구조이지요.) 그리고 말을 다 한 남자는, 바를 나갑니다. 그리고 바의 구석에 있던 (아마도 저번에 횡단보도에서 남자와 만났던 것으로 추정되는)여자가 바텐더에게 다가옵니다. ‘아직 눈치챈 것 같아?’라고 소근대면서요. 바텐더는 ‘아직 전혀 모르고 있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야기는 끝납니다. 이 부분에서 저는 ‘좀 급작스럽다’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도입부에서 중간을 거치지 않고 갑자기 클라이맥스, 결말로 돌진했다는 느낌일까요. 도입부와 클라이맥스 사이에 약간의 이야기를 더 추가시켜 주신다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2. 제 기준에서 ‘최고의 엽편’은, 짧은 이야기임에 불구하고 결말에 반전이나 강한 여운을 줘서 두고두고 생각나게 하는 이야기를 말합니다. 그러한 면에서 이 작품에는 좋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정보를 최대한 통제해, 독자들이 다양한 해석을 하게 만든다는 점에서요. 일단 이 이야기에 대한 제 해석은 이렇습니다. ‘여자는 저승사자이고, 남자를 저승으로 데려간 뒤 남자가 죽었다는 비밀을 그에게 숨기고 있다.’ 왜냐하면 남자는 횡단보도에서 분명 여자를 보았는데, 사람들은 남자 혼자 길을 걷다 차에 치인 것을 봤다고 하니까요. 적어도 여자가 평범한 인간은 아니라는 구체적인 증거이지요. 또한, 남자가 ‘길 건너편에 있는 어떤 장소’에 가기 위해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만약 여자가 저승사자라면 그 의미가 분명해집니다. 저승이지요. 하지만 이 이야기는 여자가 저승사자라는 구체적인 단서를 전혀 주지 않습니다. 그저 결말에 여자가 등장해, ‘아직 눈치챈 것 같아?’라고 소근거리기만 할 뿐이지요. 대체 뭘 눈치챈 것 같다고 하는 걸까요. 그때 저는 깨달았습니다. 설마 남자가 이미 죽었고, 이 장소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것이 아닌, 저승에 존재하는 ‘바’인 걸까? 그렇다면 이야기의 플롯은 전체적으로 확실해집니다. 남자를 홀려 저승으로 데려간 뒤, 장난을 치길 좋아하는 저승사자에 관한 이야기죠. 하지만 이렇게 이해하더라도, 독자들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질문이 남습니다. 독자가 ‘스스로 플롯을 메꾸는 이야기’라는 아이디어는 정말 좋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플롯에 구멍이 좀 많다’는 점이 좀 아쉬웠네요. 이야기에 전체적으로 ‘이 곳이 사실 저승이었어’라는 복선만 좀 추가해주신다면, 이야기의 완성도는 더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끝까지 재미있게 잘 읽었어요. 작가님의 다음 작품이 기대됩니다. 같은 작가로써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건필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