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편’ 생각이 났습니다. 공모 브릿G추천

대상작품: 하고 싶었던 말은 사랑해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작가: 반도, 작품정보)
리뷰어: 제오, 18년 3월, 조회 82

(읽으면서 든 생각을 이것저것 써 보겠습니다. 중간 쯤에 스포일러가 있는데, 숨겨 놓지는 않겠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하렘물이란 다음과 같습니다 –

하렘물은 남성 독자들을 위한 이야기입니다. 애초에 하렘이라는 게 뭔지를 생각해 보면 당연하겠죠. 극중 남성 주인공은 대단한 능력은 없지만 (그래야 평범한 남성 독자들이 감정이입을 할 수 있겠죠) 대개 여자에게 다정하다는 특성이 있으며 (여성이 끌릴 만한 최소한의 개연성을 제공하려면 이렇게라도 해야겠죠) 비교적 순진하며 여성의 대시를 잘 못 알아챕니다 (그래야 극 전개 속도를 조절할 수 있고 여성의 애태우는 마음을 남성 독자 입장에서 즐기게 할 수 있고 심의를 비껴갈 수 있겠죠).

극중 여성들은 남성 독자의 눈으로 봐도 민망할 정도로 빈약한 이유로 주인공을 좋아하게 되고 (대단한 이유가 없어야 남성 독자들이 감정이입을 하기 좋겠죠) 여성들끼리 서로 크게 반목하지 않습니다 (그래야 하렘이 유지될 수 있으므로. 아니면 스릴러 비슷하게 되어 버리겠죠). 그들의 성격이나 배경은 남성 독자가 이해하기 쉽고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기 쉽게 만들어져 있으며 다년간의 노하우가 축적되어 몇 가지 유형으로 고정되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중에 특히 불쾌한 유형이 츤데레인데, ‘아닌 척 강하게 나오지만 그래봤자 여자이며 주인공 남자를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여자’ 기믹이기 때문입니다. 여성의 거부를 거부로 받아들이지 않는 남성편의주의적 사회 통념의 결정체라고나 할까요.

개연성은 기존 남성중심사회의 상식으로 납득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것만 제공됩니다.

이 정도인데요, 장르 역사가 오래된 만큼 변형도 많겠지만 이 정도가 보통일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이야기는 만화로 주로 나오고 라이트 노벨로는 안 나올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남자애들이 만화는 봐도 소설은 잘 안 읽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소설이 나온다면 여성들 중에서도 이런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얘긴데… 솔직히 상상이 잘 안 가네요. 뭔가 제가 모르는 세계가 있는지도. 남자애들도 소설 많이 읽으려나?

 

이야기에 앞서 전개되었을 ‘1편’은 위의 공식을 따랐을 것입니다. 철저하게, 남성 판타지를 충족시키는, 이야기.

그리고 ‘2편’인 이 이야기에서 한 하렘 구성원인 화자 여성이 메타적인 대사를 하면서 장르의 클리셰에 대해 시니컬한 반응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뭔가 기대가 되기 시작합니다. 이 구도를 여성의 입장에서 깨는 전개로 가려나? ‘1편’이 실제로 존재했다면 우려도 되었을 것입니다. 하렘물은 남성 판타지를 위한 것이므로, 그 판타지를 깨는 이야기로 가면 ‘1편’을 열심히 읽어준 남성 독자들을 배신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화자 여성은 하렘물 설정에 여전히 꽁꽁 묶여 있습니다. 무슨 계기였는지는 모르지만 (실내화를 갈아신다가 같이 넘어져 입술이 맞닿았을까요?) 주인공을 좋아하는 것은 여전하고, 하렘 구성원들과의 사이도 여전히 좋습니다. 고작 통상적인 하렘물에서 벗어난 생각을 한 게 ‘주인공을 독점하고 싶다’는 겁니다. 통상적인 하렘물에서는 좀 벗어났을지 모르지만, 하렘물의 변형 범주에는 여전히 속하며, 현실적인 생각이라고 해 주려고 해도 그 현실이라는 게 남성중심적이고 남성편의주의적인 현실입니다. 남자가 바람둥이 개자식이라도 여성은 여전히 그 남자를 일편단심 좋아하는 그런.

꿈도 희망도 없습니다.

아마 글쓴이는 그런 절망적인 상황 묘사를 통해 하렘물이라는 장르와 현실의 상식을 묶어서 비난하려 한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비난을 알아채기에는 그 상황 – 여전히 주인공군을 좋아하는 상황 – 이 남성중심적인 사회의 상식을 가진 독자의 입장에서는 너무 자연스러울 것 같다는 게 찜찜합니다.

 

대상 독자 설정에 대해.

이 이야기는 하렘물을 즐기는 독자(아마도 남성)들에게는 약간 불편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하렘물 자체에 대한 지식은 있어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대상 독자는 하렘물이라는 서브컬처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면서도 거기에 반감을 가진 사람이어야 하는데… 그런 독자가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이제 ‘3편’ 이야기.

다음과 같은 내용의 ‘3편’이 나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유학을 가기로 마음먹은 화자에게 갑자기 세 명의 남자가 대시합니다!

한 명은 부잣집 꽃미남 천재.

한 명은 스포츠 만능 훈남.

또 한 명은 학교 주먹세계를 주름잡는 불꽃의 전학생.

다른 유형도 있겠고 부잣집 도련님의 속성은 여러 명으로 분산할 수도 있지만, ‘1편’의 여성 머리수와 같게 하기 위해 이 정도로 하겠습니다. ‘1편’과 ‘2편’의 주인공군은 네 명의 역하렘 구성원 중 한 명으로 전락합니다!

‘3편’에서 가능한 관전 포인트는 이렇습니다.

‘1편’과 ‘2편’의 주인공군은 과연 이런 상황에서도 화자 여성을 상냥하게 대하며 공정하게 좋아할 수 있겠는가?

원래 하렘물에서처럼 남성 네 명들 간에 꽃피는 우정.

혹은 네 명들 간의 불꽃튀는 경쟁.

화자 여성이 일본 설화 ‘타케토리 모노가타리'(이런 게 있더군요. 아마 국내나 다른 나라에도 비슷한 설화가 있을 듯)의 공주처럼 네 명에게 무지하게 어려운 퀘스트를 주고, 그 네 명이 그 퀘스트를 각자 수행하는 이야기. 예를 들어 천재는 각종 공부 관련 대회의 최우수상 다섯 개를 획득해야 한다든지 등등.

‘4편’에서는 그중 한 명이 메타 독백을 시작할지도.

 

여기까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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