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창작형 리뷰입니다.
[상연일기(上演日記)]
작품명: [역겨운 커피]
첫 번 째 카카오톡 회의 (2018.3.10.)
참여자: 연출, 조연출, 드라마터그, 브릿G
연출: 안녕하세요. [상연일기]의 연출 한정우기입니다. 편의상 앞으로 연출이라고 호칭하도록 하겠습니다. [상연일기]는 브릿G 내 작품을 무대화한다는 전제를 기반으로 자유롭게 토론하는 소모임 활동입니다. 조연출과 드라마터그는 작품을 읽은 독자를 대상으로 매번 임의로 매칭이 되구요, 익명을 기반으로 합니다. 오늘은 첫날이라 카카오톡으로 회의를 진행합니다. 자, 자기소개, 자기소개.
조연출: 자기소개? 아, 안녕하세요 조연출입니다. 원래 조연출은 이런 자리에 올 리가 없는.. 발언권이 없는 미약한 존재(?)라던데.. 뭐 이건 진짜가 아니니까요. 글은 한 달 전쯤에 읽었어요.. 사실 ‘작품 공감’을 안 눌러서 매칭 안 될 줄 알았는데..
연출: 하하……
브릿G: 안녕하세요. 브릿G입니다. 매칭 한 게 접니다…. 전 발언은 하지 않고 기록만 합니다.
연출: 욕을 하거나 19금 이야기를 하면 블라인드 처리 하실 거래요. (소곤소곤)
드라마터그: 함부로 내뱉는 19금 발언은.. 블라인드 처리는 물론이요 성희롱으로 고소를 해야…..
연출: 자기소개부터!
드라마터그: 아, 네. 안녕하세요. 드라마터그입니다. 드라마터그는 좀.. 익숙하지 않은 말이죠. 저도 드라마터그가 되었다길래 그게 뭔가 찾아보고 나서야 알았어요. 쉽게 말해 ‘예술감독’이래요. 독일식으로는 드라마트루그, 미국식으로는 드라마터그라고 불리고… 공연 프로그램 북에 자주 등장합니다. 무슨 일을 하냐고는 묻지 마십시오. 자기들도 잘 모르는 것 같더라구요 ㅋㅋ 흔히, ‘내부 비평가’라고 말하는데요. 구체적으로 하는 일은 드라마터그마다 다 다릅니다. 각색부터 제작까지 다 관여하는 사람도 있고 그냥 각색만 관여하는 사람도 있고.. 소설로 따지면.. 출판사 편집자의 편집 업무와 그나마 좀 비슷하지 않을까요?
조연출: 자기소개가 엄청 거창하네요.. 그래서 어떤 업무를 하실 건데요?
드라마터그: 글쎄요… 같이 회의하면서 찾아봐야겠죠?
연출: 아, 일단 참고하실 건. 우리 모두 마음만 프로일 뿐, 실제로는 아마추어라는 점입니다.
드라마터그: 아마추어라니.. 뭔가 슬프네요 ㅠ
연출: 사실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를 잘 모르겠어요. 전업이면 프로이고 겸업이면 아마추어인건가요? 아니면 돈을 벌어야만 프로인 걸까요?
조연출: 그게 문제에요. 상당수 예술가들은 최저임금도 못 받잖아요. 어디 속해서 하는 게 아닌 이상, 예술가들은 프리랜서인 거니까.. 실제로는 무직자 취급이나 받고.. 그거 아세요? 모옌도 노벨문학상 받기 전에 무직자 취급당해서 비자발급 못 받았대요.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연 특강도 못 올 뻔했다고 하더라구요. 결국 특강을 주최한 대학이 총장 이름으로 초청서를 보내주고 그걸 증명서로 제출해서 그제야 올 수 있었다고 하더라구요.
드라마터그: 저도 사실 브릿G에 글을 써서 올리는데.. 그럼 우리가 하는 창작은 어떻게 볼 수 있는 걸까요?
조연출: 당연히 노동으로 봐야죠. 심지어 창작은 육체적 노력과 정신적 노력이 둘 다 들어가잖아요. 그게 진짜 문제에요. 사람들은 예술을 노동으로 안 봐요. 자기 좋아서 하는 거 아니냐고, 누가 예술 하라고 시킨 것도 아니지 않냐고 말하더라구요. 참, 진짜 어이가 없어서.
연출: 이야기가 잠시 다른 방향으로 새어나갔네요. 다시 본론으로 돌아옵시다. 오늘은 모로님의 [역겨운 커피(Disgusting Coffee)]란 텍스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합니다. [역겨운 커피]는 희곡 형식으로 쓴 소설입니다. 생각할 만한 여지도 많고, 무대 위에서 상연했을 때 여러 기법을 시도해 볼 수 있는 텍스트죠.
조연출: 그래요? 전 사실 첫 텍스트로 [역겨운 커피]를 한다 길래 저 양반이 날로 먹으려고 하는 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연출: 날로 먹는다니요… 막상 무대화하기에는 어려운 텍스트입니다.
드라마터그: 공감. 등장인물 중 한명이 고양이니까요.
조연출: 그래서 그건 어떻게 할 건데요?
연출: 뭘요. 고양이요?
조연출: 고양이가 무대 위에서 연기를 할 수는 없잖아요. 영화나 애니메이션이면 모를까.
연출: 저는 ‘소외효과’를 써보면 어떨까 했는데요.
드라마터그: 그게 뭔데요?
연출: 음.. 독일의 극작가인 브레히트가 만든 방식이에요. 러시아의 ‘낯설게 하기’에서 유래했다고 하죠. 브레히트가 중국의 경극을 보고 영향을 받았다는 말도 있구요.. 일부러 관객의 몰입을 방해하는 거에요. 그래야 작품을.. 더 나아가서는 우리가 사는 세계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거니까요.
조연출: 일부러 몰입을 방해 한다구요? 어떻게요?
연출: 뭐.. 남자 역할을 여자가 하고, 아이 역할을 노인이 한다거나.. 이런 방법도 있구요. 서술자가 등장해서 중간에 개입을 할 수도 있구요. 갑자기 관객한테 말을 걸어서 분위기를 확 깰 수도 있구요. 저게 배우가 실제로 하는 자기 이야기인지 대본에 나오는 대사인지 헷갈리게 하는 것도 있고.. 일부러 관객 앞에서 무대 제작이나 무대 전환을 보여주거나.. 아니면 너무 이상하게 말해서 도저히 집중이 안 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수도 있겠네요.
드라마터그: 미러링도 소외효과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는 건가요?
연출: 그렇겠죠? 미러링이라는 게 사실 주체와 객체를 뒤바꿔서.. 주로.. 성역할 도치를 통해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현실 속 문제점을 인식하게 만드는 거니까요.
조연출: 그래서 소외효과를 통해서 고양이를 어떻게 드러내겠다는 거에요?
연출: 뭐.. 방법이야 많죠. 진짜 고양이가 의자에 앉아있는 데, 서술자가 등장해서 대신 말할 수도 있고. 아니면 누가 봐도 그냥 여자인데 다른 배우들이 모두 고양이 취급을 하는 걸 수도 있고. 아니면 고양이랑 정여인은 남자배우가 하고 종업원을 여자배우가 할 수도 있죠.
드라마터그: 하긴, 텍스트 내에서 고양이가 여자를 의미하니까…. 그냥 여자로 등장해도 괜찮겠네요.
연출: 서술자가 나와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서술자가 카페 테이블 위에 양반다리로 앉아서 신문을 읽으면 재미있지 않을까요? 신문에 쓰인 문구는 사실상 영상으로 띄우거나 누가 읽어주지 않는 이상 관객들이 알 수가 없잖아요.
조연출: 근데 그런 공연을 누가 봐요. 재미없을 것 같은데.
드라마터그: 일단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으니 먼저 이야기 하고 넘어갈게요. [역겨운 커피]는 재미없는 작품이 아닙니다. 재미있어요. 그리고.. 꼭.. 재미가 있어야만 의미가 있는 건 아니지 않나요?
조연출: 여자들이나 재미있다고 하겠죠. 전 잘 모르겠던데요.
드라마터그: 조연출님이 그렇다고 해서 모든 남자들이 다 그런 건 아니죠.
(30초 뒤)
연출: 자자. 우리 작품 이야기 합시다 작품 이야기. 그럼 제목인 [역겨운 커피]에서 ‘커피’는 어떻게 볼 수 있을까요?
드라마터그: 아, 어려웠어요 그거. 정확하게 뭘 상징하는 지 모르겠더라구요.
연출: 뭐, 사실 작가의 의도 따위(?) 맞추지 못해도 상관없으니까요. 원래 디코딩 하는 데 있어서 독자는 자기 맘대로 하는 거에요. 작가와 분리된 독자만의 자율적인 순간인 거니까.
드라마터그: 그럼 제 맘대로 말해도 되는 건가요? 처음에는 사실 하루 종일 아르바이트하고 잠시 숨 좀 돌리면서 여유를 찾기 위해서 마시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읽다보니까.. 콩다방이나 별다방 커피 마시는 여자들을 된장녀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걸 비판하기 위해서 나온 건가 싶기도 하고.. 나중에 고양이가 커피 마시고 죽는 거 보면서.. 고양이가 새끼를 뱄다고 하잖아요. 고양이를 사람이라고 치면, 임산부가 커피를 마시는 건데. 그럼 모두들 욕했을 걸요. 뱃속에 아이가 있는데 커피를 마신다고. 카페인이 태아에게 안 좋기는 하지만 그건 진짜 하루에 무슨 2-3리터 마시는 사람들이나 그런 거지.. 한 두 잔 정도는 상관 없잖아요. 여자들에게 들이대는 잣대가 너무 많고, 너무 심해요. 나중에 애를 낳아야하니 여자한테 담배피면 안된다고 말하면서 그 잣대를 남자한테 들이대는 건 본 적이 없어요.
조연출: 아기가 남자 뱃속에 10달 동안 있는 게 아니잖아요.
드라마터그: 아기는 정자 없이 만들어지나요? 남자도 흡연 오래하면 정자가 기능을 못해요. 애 태어나서도 마찬가지죠. 피부나 옷에 묻은 니코틴도 타인에게 전달이 된다던데, 아기 태어났다고 담배 끊는 남자를 별로 못 봤어요. 옛날에는 더했죠. 아빠들이 집에서 담배 폈잖아요. 애 바로 옆에 두고. 그러면서 담배 피는 여자한테만 뭐라고 하잖아요. 여자가 무슨 담배냐, 애는 어떻게 낳냐. 여성을 애 낳는 기계로 보고 몸을 통제하려고 하면서 막상 애를 낳아서 키우면 맘충으로 몰아요. 애 낳는 게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유세냐고 난리고. 산후조리원이라도 가봐요. 돈 지랄 한다고 난리지. 산후조리원 기사 보면 댓글이 다 그 이야기에요. 산후조리원은 한국에만 있다고. 김치녀들 때문이라고.
연출: 일단, 요즘 같은 시대에 애 낳는 게 대단한 일인 건 맞구요. 한국에만 산후조리원이 있다는 말은 틀린 말이에요. 중화권에도 산후조리원 있어요. 중화권은 월자중심(月子中心)이라고 하죠. 거기는 우리나라보다 더 심해요. 우리나라는 산후조리원에.. 보통 1-2주 정도 들어가 있지만. 중화권은 기본이 한 달이에요. 대만에서는 만월(滿月)라고 해서 한 달 동안 머리도 안 감아요. 대륙 한족 여자들도 애 낳고 나서 영양 보충해야한다고 하루에 계란을 한 판 씩 먹고. 찬 기운 닿으면 안 된다고 냉장고도 안 열던 데요. 옛날에는 대가족이라서 가족들이 케어를 해줄 수 있었지만, 도시화가 된 뒤로는 사실상 불가능해졌죠. 그래서 산후조리원으로 가는 거구요. 시골에는 없지만 도시에는 월자중심이 있어요. 또 동양여성들은 골반이 좁아서 아이 낳기가 더 힘드니까요.. 서구랑 비교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지요. 근데 서양 국가에도 중화권 여성이 있는 곳에는 월자중심이 있다고 하더군요.
드라마터그: 제 생각에… 기사에 그런 이상한 댓글을 다는 사람들은.. 애 낳아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일 것 같아요. 자기 와이프가 애 낳고 잘 걷지도 못하고 하루 종일 피를 쏟아내는 걸 보면 절대 그런 말 못하죠.
조연출: 에이, 그건 아니죠. 옛날에는 애 낳고 바로 밭에 김매러 가고 그랬는데.
드라마터그: 언제적 이야기를 하시는 거에요. 그런 식으로 따지면 채찍 맞으면서 일하는 것도 당연하게요? 옛날에 노예들도 다 그랬잖아요.
연출: 같은 부모라 할지라도 육아는 엄마의 역할이라는 인식이 있으니. 확실히 이것도 성차별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조연출: 그래도 애는 엄마가 키워야하지 않겠어요? 아이한테도 그게 더 좋아요. 너무 어린 나이에 어린이집 다니면 애들한테도 안 좋죠.
드라마터그: 물론 아이의 정서발달을 위해서는 시설에 맡기는 것보다는 주 양육자가 있는 게 좋겠죠. 근데 주 양육자가 반드시 엄마일 필요는 없잖아요. 그리고 아빠랑 엄마가 육아휴직만 제대로 할 수 있으면, 아이가 좀 크고 나서 어린이집에 들어가는 거구요.
조연출: 아니, 근데 저는 이런 이슈가 나올 때마다 하고 싶은 말이. 자기들이 좋아서 낳은 애인데 자기들이 알아서 해야지 왜 우리가 그런 거에 신경을 써야하는 거죠? 출산휴가랑 육아휴직만 해도 그래요. 애 낳고 키운다고 가버리면 그 업무를 n분의 1을 해서 다른 팀원들에게 맡긴다구요. 완전 피해주는 거에요 그거.
드라마터그: 그건 회사 잘못 아닌가요? 노동의 유연성을 그렇게 강조하면서 사람 짜를 때만 유연하게 하려고 하면 안 되죠. 그리고 남이 낳은 아이 대신 키워주라는 거 아니잖아요. 아이를 잘 키울 수 있게 사회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자는 거지. 사회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자는 게 잘못된 건가요?
연출: 자자. 우리 작품으로 다시 돌아가 봅시다.
조연출: 아니, 솔직히 여자들이 집에서 애 안보고 회사에 남아서 뭐하게요. 돈도 훨씬 적게 벌고, 남자보다 일도 더 못하잖아요.
연출: … 그건 아니죠. 남자보다 많이 버는 여자도 많구요. 그냥 사람마다 다 다른 거에요. 그리고.. 정확히 말하자면 여자라서 돈을 못 버는 게 아니라 회사가 여자라는 이유로 돈을 많이 안 주는 거 아닌가요?
조연출: 연출님… 여자에요?
연출: 예? 네. 그런데요.
조연출: 드라마터그도 여자에요?
연출: 갑자기 여기서 그런 말이 왜 나오죠?
조연출: 하, 저 이거 못하겠어요.
조연출님이 대화방을 나갔습니다.
연출: ??????????
드라마터그: 헐
연출: 이… 이를 어쩌죠? 제가 너무 뭐라고 했나??
브릿G: 제가 따로 이야기 해볼게요. 잠시만요.
연출: 럴수.
드라마터그: 근데 저 여자 아닌데. 저 남잔데.
연출: 드라마터그님 남자분이세요?
드라마터그: 네.
브릿G: 저기.. 길고양이들이랑은 같이 일 못하겠다고 하시는데요;;
연출: 길고양이요? 텍스트에 나오는 그 길고양이요??
드라마터그: 그래도 텍스트 내용은 기억하나보네요. 끝까지 용케 읽은 게 대단하다.
브릿G: 중간에 빠져서 미안하다고.. 저한테 카톡으로 커피 교환권 보내주셨는데.. 이거 제가 보내드릴까요?
연출: 커피요?
드라마터그: 하필 보내도 커피를 ㅋㅋㅋ
연출: 먹고 죽으라는 건가 봐요….
드라마터그: 정중하게 거절하겠습니다.
연출: 근데, 여기 길고양이 말고 개도 있다고.. 다시 돌아오라고 하면 안 될까요?
드라마터그: 저기.. 저도.. 미친개는 싫어요..
연출: 아.. 네 ㅋㅋㅋㅋㅋㅋ
아무래도, 하고 싶은 말을 많게 만드는 주제(?)인지라 저도 모르게 글을 끊지 못 하겠… 원래는 무대화에 포커스를 맞추려 했는데.. 결국은 같은 주제를 향해 달려갈 수 밖에 없네요. [역겨운 커피]가 24매 글인데, (중간에 끊었는데도!!) 리뷰는 36매가 나왔어요 ㅠ
그만큼 할 말이 많아서 그런 거겠죠.. 이제 예술도 노동으로 인정을 받아 노조가 결성이 되었는데.. 육아는 노동으로 인정 받지 못하는 현실 ㅠ 조연출이라는 캐릭터는 마냥 허구적인 게 아니라.. 엄연히 실재하는 누군가가 될 수 있죠…. 예전에 모 일본 대기업 상사에 다니던 친구(남자)가 회사를 그만뒀는데, 그 이유를 물어보니 자신보다 입사가 빠른 여자 선배한테 (일본어로) 존댓말을 했다고 혼났다고 하더군요. 남자선배가 불러서는 여자한테는 존댓말 하는 거 아니라고 그랬대요. 그래서 너무 놀라 퇴사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 곳은 여자 뿐만 아니라 남자가 지내기에도 좋지 않은 곳이라고, 그때 그 친구가 저에게 했던 말이 매우 인상적이었어요. 드라마터그는 그때 그 말에서 태어난 캐릭터랍니다.
모두가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