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이 인간적인 감정을 표현하는 것을 다루는 콘텐츠는 굳이 색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해서 대중들은 대개 신이함과 두려움의 감정을 함께 가지고 있으며, 윤리와 철학의 문제 등 다양한 관점에서 인간과 인간의 복사물에 대한 실존적인 고민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글은 그러한 다소 진지하고 복잡한 고민을 잠시 접어두고 읽어도 충분히 색다르게 다가옵니다.
글은 소프트SF 보다는 스페이스 오페라에 가깝습니다.
제재로 차용된 스피릿과 오퍼튜니티는 실제로 NASA 의 화성 지표면 로봇 탐사계획에 의해 화성 탐사를 하던 쌍둥이 로봇이며, 이런 제재를 차용해서 글을 작성한 작가의 재기에 글을 읽는 내내 슬몃슬몃 웃음 지으며 글을 읽어 내려갔습니다.
물론 화성 탐사 로봇과 그 이력에 대한 기반 지식이 없어도 글을 읽어내는데 전혀 무리가 없습니다.
다만, 글을 다 읽고 나서 스피릿과 오퍼튜니티에 대한 실제 내용을 검색하고 살펴보면 보다 색다른 재미를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글을 읽으면서 무척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구성과 표현입니다.
3분 정도 글을 읽어 내려가다보면 이후의 전개과정과 결말이 쉽게 유추되는 글입니다.
내용의 단조로움은 글을 이끌어가는 주체들 각각의 관점을 바꿔 서술하며 변화를 줍니다.
스피릿의 관점, 오퍼튜니티의 관점. 그리고 우주비행사들의 관점으로 나뉘어 서술되는데 ,앞선 두 로버 관점에서의 기술은 단연 이 글의 백미라고 생각합니다.
두 로버는 논리적 추론을 통해서 자신들에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효율적인 프로세스를 추구합니다.
오퍼튜니티와 스피릿은 그들을 제작한 인간들이 입력한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논리적 추론과 그에 따른 기계적인 행동을 수행하는 것 뿐이지만, 그 결과는 지극히 인간적인 행동과 감성으로 표출됩니다.
이런 결과는 실상 오퍼튜니티와 스피릿의 논리적 추론을 독백 형태로 표현한 방법에서 이미 의도되어 있습니다.
기계적으로 나열되어야할 명령문들이 이성과 감성의 복합적인 사고체계를 가지고 판단하는 인간의 사고 과정처럼 묘사되어 있는 것이죠. 그리고 그 경계를 모호하게 하기 위해 표현의 정도를 조절한 것도 좋았습니다.
우리는 보통 ‘이성’과 ‘감성’을 대척점에 놓고 교집합이 없는 별개의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 글에서는 논리적 사고와 반복을 통한 추론이 만들어내는 결과값이 우리가 비과학적이라고 치부하는 감성으로 수렴하는 아이러니를 보여주며 신선한 자극을 줍니다.
정량적으로만 파악될 수 없는 이해득실의 너머에서 정성적으로 수렴되는 두 로버의 행동과 모습은 이미 인간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죠.
작가님의 다음 작품도 기대하겠습니다.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