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둥 떠다니는 오크의 이야기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오크 변호사 : 독수의 과실 (무료판) (작가: 유권조, 작품정보)
리뷰어: 코르닉스, 18년 2월, 조회 113

게으른 감상입니다.

스포일러 있습니다.

 

 

먼저 고백하겠습니다.

 

저는 이 소설의 제목을 보고 ‘판타지 역전재판’을 기대했습니다. 역전재판 시리즈만큼 드라마틱하지는 않아도, 판타지에 등장하는 마법과 종족이 사건에서 큰 비중을 가질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어 엘프와 오크의 혼혈인 A가 살인현장에 있었던 까닭은 진범이 특정 혈통의 엘프만 들을 수 있는 마법 유물을 이용해 A 씨를 현장에 유도했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요.

하지만 아니었습니다. 분명 마법도 종족도 등장합니다. 하지만 한계는 분명했고 무엇보다 작 중에 등장하는 사건 자체는 마법이 개입되지 않은 지극히 평범한 살인 사건입니다.

다밀렉은 리아나에게 자신은 탐정이 아니라고 단정 지어 말하면서 변호사라는 부분에 힘을 실어 줍니다.

탐정의 정체성을 부인한 만큼 진실을 밝혀내는 부분은 극적이지 않습니다. 대신 재판은 본격적입니다. 재판이 진행되는 순서, 법원의 분위기, 판결문의 문체(?)를 읽으면서 작가님이 정말 소설을 위해 얼마나 많이 조사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재판만이 아니라 배경도 그렇습니다. 법무부, 경무부의 권력 다툼은 물론이고 오크 독립파와 비독립파까지 얽혀있습니다. 등장인물은 자기 자신의 이득과 조직을 위해서 움직입니다. 정말 보통 심혈을 기울이지 않고서는 쓰기 힘들 것 같았습니다.

배경만 본다면 오크 변호사를 중심으로 오크 해방 운동과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갈등이 주요 사건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억압적인 제국과 자유와 독립을 원하는 오크. 주변 배경만 보면 매우 정치적으로 갈 수 있는 주제이고, 최초의 오크 변호사라는 타이틀은 그렇게 가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오크 변호사>는 그런 이야기가 아닙니다. 주변 상황과 달리 주인공인 다밀렉이 그걸 막고 있습니다.

 

다밀렉은 상당히 독특한 캐릭터입니다. <오크 변호사>는 주로 다밀렉의 시점에서 진행되지만 동시에 다밀렉에게 가장 공감을 하기 힘듭니다. 오히려 호룬토스나 라사레인, 심지어 키에라 경사의 행동이 공감이 가는 편입니다. 이런 성격이 1부가 지나면서 바뀔 거라 생각했지만 2부가 되어서도 크게 변하지 않습니다. 답답할 정도입니다. 다만 공감은 할 수 없어도 이해는 할 수 있었습니다.

다밀렉은 선량한 소시민에 해당합니다. 대체로 원칙에 따라 행동하고 가끔은 원칙을 어기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다치고 죽어가는 자를 외면할 정도로 냉혹하지 않습니다. 눈앞의 선을 실천합니다. 그게 어떤 관계나 결과로 이어질지 생각은 하지만 그럼에도 내버려둘 수 없는 인물입니다. 이는 의뢰인을 위해서는 언제든지 입장을 바꿔야 하는 변호사와는 어울리지 않는 성격입니다. 오히려 의사나 간호사에 가깝겠네요. 국경없는 의사회처럼요.

이념이 아닌 인류애만을 가지고 행동하는 인물이라는 소리는 거꾸로 모두에게 미움을 받는 인물이라는 소리이기도 합니다. 약자에게는 부조리한 체제를 수호한다며 욕을 먹고, 강자에게는 약자를 돕는다며 멸시당합니다. 이는 다밀렉의 서 있는 위치와 닮아있습니다. 변호사이면서도 오크인 것처럼요. 주류와 비주류. 다밀렉은 그 사이에 있습니다. 다밀렉은 다른 인물에 비해서 유난히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어느 이념에도 쉬이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그저 양심과 원칙에 따라 움직일 뿐입니다.

다만 이 부분에서 공감할 수 없었던 건, 끊임없이 부당한 대우를 받고도 포지션을 유지하는 모습 때문이었습니다. 경관들에게 욕을 먹고 위협 당하는 거까지는 시대상이 그러하니 넘어가겠지만, 누명을 쓰고 목숨까지 위협 받는데도 어느 한쪽에게도 적대적으로 바뀌지 않습니다. 오히려 둥둥 떠다니고야 말겠다는 결심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1부에서부터 말이 나왔던 모의재판과 한번도 언급되지 않은 다밀렉의 과거가 나온다면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

어쩌면 정답을 제시하고 행동하는 인물에 너무 익숙해서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밀렉의 입장에서는 꿈과 현실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기 어려울 겁니다. 정치적인 행보를 보이는 순간 다밀렉이 평생을 원했던 변호사 타이틀은 그대로 날아갈테니까요. 소설은 끊임없이 정치적으로 바뀌는 현실과 꿈 사이에서 고민하는 다밀렉을 보여줍니다.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정체성과 꿈과 현실 사이에서 떠다니는 다밀렉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현실에 대한 영향력은 점점 커집니다. 2부 들어서 드래곤과 친분까지 쌓은 다밀렉은 과연 어떻게 행동 할까요. 앞으로가 기대됩니다.

 

마지막으로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점은 적겠습니다. 먼저 발생하는 사건이 다소 작위적으로 보였습니다. 흐름에 따라서 사건이 터지는 게 아니라, 필요에 따라 사건이 터지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이는 다밀렉이 워낙 독특한 캐릭터이기에 벌어지는 문제라고 보입니다. 워낙 사명을 부여하기 힘든 성격이니까요.

또 다양한 등장인물이 등장하고 각자의 캐릭터가 자신만의 동기로 행동하는 데 반해서 외우기는 상당히 힘들었습니다. 리아나랑 호룬토를 제외하면 누군지 까먹은 경우가 잦았거든요. 특히 경찰 쪽은 어투까지 비슷하다 보니 거기서 거기처럼 보이더군요. 물론 제가 연속적으로 읽지 않아서 그런 것도 있습니다. 등장인물의 이름, 종족, 지위를 메모하면서 읽으니 좀 낫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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