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술을 마신 것처럼 흠뻑 취하게 되는 이야기… 공모

대상작품: 전신보 (작가: 이나경, 작품정보)
리뷰어: 후더닛, 18년 1월, 조회 54

 이렇게 쓰고 있긴 합니다만 사실전신보 리뷰 쓰기가 어려운 소설입니다. 리뷰의 목적이 어디까지나 대상 작품을 읽는 이가 감상하도록  하는데 있다고 한다면전신보 사전 정보 없이 직접 읽는 것이 가장 좋은 감상법이거든요. 여기엔 수없는 반전이 있고 시간이 마구 교차되어 있으며 인물 또한 이런 저런 인연으로 실타래처럼 엉켜 있으니 아무래도 읽으면서, 이건 이렇게 그것과 연결되는구나!’ 느껴가는 것이 작품의 진짜 가치를 발견하게 아닐까 싶어지는 것이죠. 이런 마음이 머리 한구석에 또아리를 틀고 있으니 섣불리 리뷰를 썼다가 행여 저도 모르게 내용을 무턱대고 발설하여 직접 읽으며 얻는 즐거움을 조금이라도 앗아갈까 두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무모하게 쓰고 있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보편적 충동 때문이랄 있습니다. 정말 재밌는 작품을 만나면 그것에 대해 떠들고 싶어지잖아요? 저만 그런가요? , 어쨌든 작품은 제게 그러한 수다의 충동을 마구 불러일으키더군요. 이성은 억눌러야 한다는 경고를 보내는데도 충동을 억누를 없었습니다. 결국 이렇게 쓰게 되었습니다. 이런 보면 저도 혹시전신보 나오는 존재처럼 짐승이 변한 사람인 걸까요? 그렇다면 저는 과연 어떤 짐승일까요? 가만있자, 수다쟁이 짐승이 뭐가 있더라?

 ‘전신보 제목처럼 변신하는 존재들에 대한 이야기고, 변신은 주로 짐승들이 합니다. 배경은 조선 시대. 이야기의 소재와 형식 때문인지 어릴 즐겨 읽었던 전래 동화 느낌이 많이 났습니다. 사실전신보 많은 에피소드들은 알려진 전래동화의 변형된 버전이기도 합니다. 1회는 익숙한 동요산중호걸 내용을 많이 가져왔습니다. 산을 다스리는 호랑이의 생일 잔치가 열리고 많은 동물들이 호랑이의 마음에 들기 위해 이런 저런 선물을 싸들고 오는데 자기보다 좋은 선물을 가져온 이를 질투하는 동요 내용과 많이 유사하죠. 그리고 2회는 나뭇꾼이 살기 위해 호랑이에게 헤어진 형님이라고 말했는데 호랑이가 말을 철썩같이 믿고 진짜 홀어머니를 위해 효성을 다하는 효자가 되었다는효자 호랑이 변주하고 있죠. 이런 닮은 때문에 이야기가 마음에 쉽게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과 전혀 다르게 전개됩니다. ‘전신보 정말 많은 에피소드가 그것도 다양한 모습으로 나오는데, 그러면서도 하나의 이야기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것이 어떤 것인가는 직접 읽으실 분들을 위하여 밝히지 않겠습니다. 그런 줄기를 찾아보는 것도 소설을 재밌게 읽는 길이니까요. 다시 말해 소설은 형셩색색의 조각들이 모여서 하나의 거대한 형상을 형성하는 모자이크화라고 있습니다.

 이야기가 짧은 간격을 두고 휙휙 바뀌기 때문에 지루함을 느낄 새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형식이 결코 쉽지는 않습니다. 원래 사람의 머리란 기승전결 따지는 좋아하게끔 만들어졌다더군요. 단편적인 정보들을 인지해도 그것들을 연결하여 하나의 이야기로 만드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이죠. ‘전신보같은 소설이 가능한 것도 그러한 우리의 두뇌가 지닌 타고난 천성 때문이겠지요.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넓게 산포해 놓은 이야기들을 하나로 통일시켜야 우리의 머리는 재미를 느낍니다. 그렇게 되지 못하면 산만하다는 평가와 함께 얼마 안가 화면을 닫아 버리겠죠. ‘전신보 점에서 성공을 거뒀습니다. 이리 저리 여러 방향으로 던져 놓은 이야기를 유기적으로 매조지 하고 있다는 것이죠. 거기다 반전까지 버무려서 말이죠. 이런 사람을 두고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죠. ‘천부적인 이야기꾼이라고. ‘전신보 읽은 지금의 제게 작가는 정녕 그렇게 보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읽으신 분들 중에 반론을 제기하실 분도 있을 같아요. 유기적으로 통일하고 있다고 하지만 구멍이 없진 않기 때문이죠. 분명 작가가 의도적으로 그렇게 것일테지만, 이야기의 가장 결정적인 부분을 자주 생략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제겐 이런 흠결이 매력적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빈구멍들이야말로 독자가 노닐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죠. 비근한 예로 영화곡성 생각하시면 같네요. 감독이 미처 헤아리지 못했거나 일부러 빠뜨려 버렸기에 생겨난 영화의 구멍들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해석을 내놓았던가 하는 것을 말이죠. 때문에 작품은 원래 가지고 있는 것보다 훨씬 풍성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때로는 빈틈이 작품을 가치있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런 빈틈이 독자를 더욱 능동적으로 작품에 참여하도록 하여 작가와 독자가 함께 작품의 생명을 오래도록 연장시키기 때문이죠. 이런 까닭에 저는 작품이 가지고 있는 공백들이 마음에 듭니다. 이야기 마디와 마디 사이의 헐거운 고리로 인해 제가 멋대로 조립하는 것도 가능할테니까요. 부디 독자로서 가지고 있는 이야기의 블럭들이 많아지길 바랍니다.

 무섭다, 두렵다 하면서도 어느새 주저리 주저리 잘도 많이 떠들었네요. 그저 생각나는대로 썼기 때문에 제대로 썼는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하나만은 제대로 전하고 싶습니다. ‘전신보’, 재밌으니 읽어보시라는 말을. 그러면 지금 순간 당신도 나와 똑같은 마음일 겁니다. 셰헤라자드의 이야기를 듣는 왕과 똑같이 어서 다음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작가는 소설을 원래는 아내 생일 선물로 마련했다고 하더군요. 회당 하나씩. 그렇다면 아내에게 너무 가혹한 일이 아닐까 합니다. 세상에 그렇게 가장 재밌을 끝내놓고 1년을 기다리게 하다니평온한 결혼 생활을 바란다면 다시 생각해 보는 좋지 않을까요?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