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고개게임에 내 목숨이 달려 있다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악마의 장난 (작가: , 작품정보)
리뷰어: bridge, 18년 1월, 조회 147

유달리 잘 읽히지 않는 글이 있다

컨디션이 문제일 적도 있고, 글읽기를 시도한 해당 시간이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고 취향이 작용하는 경우도 있고 핑계댈 것이야 많은 법인데 <악마의 장난>역시 묘하게 첫인상이 뻑뻑한 글이었다

찰떡같이 흥미를 돋궈주는 소개글을 보고 냉큼 읽기로 결정했던 글인지라 조금만 더, 조금만 더를 속으로 외치며 읽어내리다보니 내용이 제법 흥미진진하다

즐겁고 신나는 흥미진진함이라기보다는 몰입하기가 무서운 상황에 내몰린 주인공의 처지 때문에 흥미진진해지는 그런 쫄깃함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온갖 뉴스마다 살인마들이 판치는 무서운 세상에서, 그저 영화 하나 보려고 비디오방에 들렀을 뿐인 ‘나’의 방에 다짜고짜 들이닥쳐선 위협적인 게임을 제안한 어느 사내 덕분이었다

여태 살면서 영화 속에서나 봤던 권총을 들이대며 ‘스무고개게임’을 하자는 (아마도) 예비살인마를 조우한 기분은 과연 어떤 것일까

적당히 소름이 끼치면서도 묘하게 현실감이 있어 척추를 바짝 세운다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궁금해 귀를 쫑긋 기울이게 된다

요구는 스무 가지의 질문을 통해서 어떤 남자의, 그것도 눈 앞에 있는 사내와 인상착의가 매우 비슷할 것 같은 남자의 살인행위를 증명해보라는 것이다

내거는 조건도 패기가 넘친다

실패하면 죽이겠다니, 물러설 곳 없이 급박한 상황임에 틀림없다

이쯤 가니 글을 읽는 입장에서는 이 남자가 나름의 ‘결백함’을 증명하고 싶은 것인가 라는 생각에 닿게 되지만 자신을 노리는 총구를 앞에 두고서 그런 생각이 쉬이 들리 없다

그렇게 목숨을 건 게임이 시작되고, 등 뒤로 영화 소리가 들린다

글을 쭈욱 읽어내려가기 전 의문의 사내가 처음 등장했을 적만 해도 ‘혹시 꿈일 가능성은 없나’ 라며 내던진 추측이 힘을 잃는다

그 어느 때보다 생생한 현실임이 갑자기 확 느껴진다

“시체와 같은 방에서 발견된…… 발견된 남자에게, 도망칠 시간이 있었나요?”

 

인간은 위기의 상황에서 자신도 몰랐던 능력을 발휘한다 했던가

단 몇 분만에 완벽히 ‘을’의 입장이 된 ‘나’는 재빠르게 이성을 되찾으려 노력하며 스무고개 게임을 시작한다

하나뿐인 목숨을 걸고 이성적으로 행동한다는 것만큼 이질적인 표현이 어디 있겠냐마는 누구라도 머릿속이 하얘지고 의도치 않게 냉정함을 찾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또 지금이라는 것이 묘미이다

이쯤 되니 난 20개의 고개를 모두 넘는 ‘나’를 상상하기 시작한다

글머리에서 이미 ‘이 사건’을 기술중인 ‘나’의 모습이 표현되었으니 그럴 가능성은 이미 매우 크겠지만 말이다

조마조마한 걸음이 이어지다 어느 순간 ‘나’의 깨달음과 함께 실제 나의 머릿속도 아득해진다

사내가 도끼를 꺼낸 직후 조금 다른 시점이 추가 되기 때문인데, 나의 ‘질문’이 나의 ‘상황’과 직결될 수도 있다는 것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라 새가슴인 나를 긴장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도대체 이야기가 어느 방향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건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하지만 처음에도 말했듯이 이 글은 어딘가 나랑은 조금 맞지 않는다

핑계일 수도 있고 착각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렇다는 생각을 지우기가 어려웠던 이유는, 호흡이 긴 문단 문단을 건너가는데 약간의 어려움을 느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특히나 중반부를 넘어서면서부터는 그런 증세가 도드라졌다

글에 반전이 필수라고 생각하는 편은 아니지만 반전을 기꺼이 즐기고, ‘이 다음엔 이런 일이 벌어지려나?’라는 상상을 하며 읽기를 좋아하고, 작가가 던져주는 떡밥으로 조각조각을 미리 맞춰보는 행위를 좋아하는 편인데 이 글은 마치 롤러코스터마냥 정신없이 몸을 비틀어댄다

내가 예상했던 것들이 갑자기 뒤집혀 버리고, 흐름에 조금 익숙해지나 싶으면 갑자기 새로운 패를 꺼내 ‘낯선’ 것을 들이미니 읽기에 부담이 된다

앞으로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게 부담스러워 쉽게, 편안하게 읽어내리기가 어렵다

그렇게 예상치 못한 장면이 또 하나, 그리고 또 하나 공개되는가 싶더니 이야기는 그야말로 롤러코스터가 꼭대기에서 아래로 쑤욱 하강하듯 강렬한 한방을 선사한다

내 취향의 글이 아님에도 여지껏 끝을 향해 달려온 것이 후회되지 않는, 실로 간만에 보는 멋진 엔딩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였다

또한 이렇게 수다스러운 느낌의 글이 아니라 이미지로 각인시킬 수 있는 만화 형태였더라도 꽤 오래 기억에 남을 이야기였다고 생각이 들었다

글의 제목은 잊어먹더라도 빨간 점퍼만은 오래오래 머리에 남아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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