슐러에게 바치는 찬가에게 바치는 감상 공모(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슐러에게 바치는 찬가 (작가: 리체르카, 작품정보)
리뷰어: mjs1469, 18년 1월, 조회 174

으스스한 소문을 지닌 고성, 비밀을 감춘 듯한 의문의 후원자, 사악한 마녀와 저주, 사제, 그리고 그림.

어떻게 이 글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게다가 저는 본래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니, 더욱 몰입하여 즐겁게 읽을 수밖에요.

로켓같은 글이었습니다. 앞의 네 챕터에서 서서히 가속도가 붙어 뒤의 두 챕터에서 화끈하게 날아오르는, 그러면서도 한편 한편의 호흡이 쳐지거나 너무 빠르지 않고, 앞의 네 챕터와 뒤의 두 챕터가 따로 노는 느낌이 들지도 않았구요. 제 기준에서 가장 재미있던 편은 [머리맡의 그을음] 챕터의 3편이었어요.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풀리겠구나 싶은, 마치 발사된 로켓에서 1단이 분리된 뒤 2단이 점화되는 느낌이 들었어요.

이 글에서 가장 좋았던 점은, 이야기에 등장하는 공간 각각이 확실한 색깔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는 거예요. 말 그대로, 색깔을요. 칠흑같이 새카만 지하도와 어두컴컴한 감색을 띄는 니르젠베르크 성, 슐러가 머무는 방은 주홍빛이 일렁이는 따스한 적갈색이었고 성의 정원은 짙은 먹색이 섞인 청록이었어요. 슐러가 물감에 대해 배우는 곳에선 다양한 색과 질감이 한가득 느껴졌고, 또 사제가 머무는 성전은 새하얀 성에가 낀 창백한 회색이었어요. 이야기의 중심 소재 중 하나가 푸른색을 위시한 색들이었고, 공간에 대한 서술이 적절히 사용되어 빛과 색에 대해 무리 없이 연상할 수 있었으며 그렇기에 어느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읽을 때면 그 공간의 색이 자연스레 눈 앞에 펼쳐져 좋았어요.

색 이야기가 나왔으니, 글에 등장한 색과 안료와 그림에 대한 섬세하고 전문적인 묘사의 훌륭함 또한 칭찬하지 않을 수 없네요. 제가 관심이 있는 소재여서 그런진 몰라도 정말 즐겁게 읽었어요. 그 분야에 대한 작가님의 애정과 정성도 느껴졌구요, 몰랐던 정보들을 알게 된 점도 좋았습니다.

그러나 그 만큼 아쉬웠던 점도 있어요. 구상 그림으로 치자면 적절한 밑색으로 조화와 균형을 맞췄고, 덩어리감도 잘 잡혀있고 개체마다의 강약이나 원근도 좋은데 그림자와 하이라이트가 없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분위기를 이끌어 내는 데까지는 훌륭했지만 각 공간의 개성과 인상, 공간에 대한 독자의 애정을 불어넣을 수 있는 묘사가 부족하게 느껴졌어요. 과하게 장식적일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공간을 이루는 소재에 대한 서술, 예를 들면 소재 특유의 질감이나 냄새, 그 소재가 가진 성격 등이 조금 더 묘사되었다면 훨씬 머릿속에 이미지가 강하게 남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이건 인물에도 마찬가지인데, 완독을 한 지금 제 머릿속에 여러 등장인물들의 성격이나 말씨는 남아있어도 생김새나 착장은 거의 남아있지가 않네요.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취향이고, 글의 호흡을 고려하셨거나 기타 의도가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인물 이야기가 나왔으니 이번엔 등장 인물들에 대해 말해볼게요. 슐러. 부럽습니다. 먼치킨이죠, 먼치킨. 보는 것만으로도 남의 그림 기술을 전부 훔칠 수 있는 사륜안의 소유자인데다가 길바닥에 그려둔 낙서 하나로 성주에게 스카웃되어 물심양면으로 후원을 받다니. 구겐하임의 선택을 받은 잭슨 폴록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요. 물론 잭슨 폴록이 베테랑 걸인은 아니었지만요. 그 후원의 목적이 마녀의 저주를 풀기 위해 목숨을 걸고 그림을 그리는 것도 아니었지만, 하여튼. 산전수전 다 겪은 절절한 인생사도, 여리기도 하고 강하기도 하며 감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좋았습니다. 조금 더 날서거나 불안한 인물이었어도 재밌었을 것 같구요, 알젠토와의 케미(?)와 서서히 화가로서 성장하는 부분도 참 좋았어요. [꿈꾸는 자들의 정원] 챕터의 5편에 나온, 빈 종이를 앞에 두고 그림 그리기를 두려워하게 되는 장면을 볼 때는 크게 공감했습니다. 나중에 그걸 극복하는 모습은 정말 멋졌어요!

불쌍한 알젠토. 참… 이 글에서 가장 불쌍한 인물이예요. 저를 투영하기에는 알젠토의 실력이 너무 뛰어나긴 합니다만 그래도 참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한계를 알고 있는데다가 제자는 천재지, 후원자는 자신을 초보자 튜토리얼로 삼고 있지… 좋은 곳에 갔기를 바랍니다. R.I.P

칼스텐과 엘렌은, 이야기 안에서 조금 더 많이 다뤄졌어도 좋았을 것 같아요. 둘 다 신비스런 면모가 있는 건 마음에 들었지만 풍기는 분위기에서 그치고 이야기를 전개하는 일종의 수단으로 사용되었다는 느낌이 있어 조금 아쉬워요. 특히 엘렌이 그렇네요. 칼스텐은 초반의 의뭉스러움이나 중간중간 등장하는 날개 등에서 비롯되는 개성이 후반부에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며 힘을 잃은 것 같았어요.

디트마일은 처음에는 왠지 정이 안 갔었는데, 글이 끝날 때쯤엔 참 짠하더라구요.

저는 강한 여성 캐릭터에 대한 기본적인 호감이 있어 마녀를 참 좋아합니다. 악하고 파괴적인 면모와 순애적이면서 변태적인 면모가 마녀를 더 인상깊게 만들어 준 것 같아요. 아, 그런데 하나 걸리는 점이 있어요. [슐러에게 바치는 찬가] 챕터의 6편에 나오는 대사인, “그를 막아. 그를 말려! 저 새끼가 그림을 완성하면 나만 끝나는 게 아니야. 다 끝난다고. 아무것도 없어져!” 이 부분 말인데요, “그를 말려!”와 “저 새끼가”가 같이 있는 점이 어색하게 느껴졌어요. 각각 따로 읽는다면 괜찮은데, “그를 막아. 그를 말려!”는 글로 읽을 때는 괜찮지만 실제로 회화에 사용하지는 않아서 입으로 소리내어 말하면 어색한데, 뒤에 붙는 “저 새끼가”는 너무 현실적이고 착착 달라붙어 둘의 조합이 저를 잠시 멈칫하게 만들었어요. 저만 그런 걸 수도 있어요…

이런, 할 얘기는 얼추 다 한 것 같은데 감상을 어떻게 끝내야 할 지 모르겠네요. 그림과 색이라는 훌륭하고 신선한 소재와 음산하고 신비스런 분위기가 너무나도 좋았던 이야기였습니다. 최고의 문장 하나를 꼽으며 감상을 마무리할까 해요.

최고의 문장 – 그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예술활동은 마녀의 힘을 약화시킵니다. [머리맡의 그을음] 챕터 3편에서 발췌.

아시겠나요, 여러분? 악을 멸하고 세상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우리는 예술활동을 계속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로 후원자를 구하고 있는데요, 혹 자신이 칼스텐처럼 부와 명예를 모두 가졌는데 후원자를 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제게 쪽지를… 아, 참. 목숨을 내놓는 조건은 사양합니다.

 

훌륭한 글을 읽게 해 주신 리체르카 작가님께 감사의 말씀 올리며 이만 감상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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