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예술가가 있습니다. 그의 시작은 뭔가를 베끼는 것입니다. 코난 오브라이언이 말했듯,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아류로 커리어를 시작하는 법입니다. 하지만 이 예술가는 남들과 조금 다릅니다. 남들의 아류로 남을 수 없는 확연한 ‘재능’을 발휘합니다.
이런 예술가에게 후원자가 등장합니다. 후원자는 의식주 일체와 예술을 위한 재료, 그리고 기술을 배울 수 있는 선생을 제공합니다. 예술가는 성장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베끼는 것이 아닌, 정말로 그리고 싶은 대상을 찾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그려내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자신은 누군가의 아류였을 뿐입니다. 정말 재능이 있을까? 기술은 충분한가? 망설임을 뛰어넘어도 여전히 벽이 그를 가로막습니다. 공포입니다. 그걸 그려내려다 실패한 수많은 선배들의 이야기를 듣습니다.흉흉합니다. 이런 공포는 이 예술가 혼자만의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고래로부터 내려온 것이며, 불멸에 가까운 두려움입니다. 인간의 예술은 어디서 시작되었을까요? 라스코 동굴 벽화를 떠올려 봅시다. 구석기 시대의 사람들을 떠올려 봅시다. 총은커녕 날조차 변변하지 못한 돌창, 돌도끼를 꼬나쥐고 덤비기엔 어떤 동물도 만만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두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두려움에 떠는 대신 그들을 그려냈습니다.
물론 똑같은 과정은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에 가깝습니다. 두려워하기 때문에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리고자 싶어 하기 때문에 두려워 합니다. 아마 여기에 글을 쓰시는 분들은 무슨 말인지 아실 거라 믿습니다. 감히 내가 이 주제를? 이 소재는 나에게 좀 버겁지 않나? 내가 표현하려는게 전달되기는 하는 걸까?
한 마디로 요약해 “내가 하지 않는 것이 차라리 더 나은게 아닐까.”
이런 두려움은 심지어 실체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몸이 아프고 마음이 병듭니다. 그러나 안료를 준비하고 붓을 들어 갈고 닦은 기술을 펼칠 때, 이 두려움은 허무할 정도로 쉽게 제압됩니다. 그리고 결국 하나의 작품이 되는 것입니다. 이때 예술은 탄생합니다. 불멸의 공포는 불멸의 예술이 되어 영원히 남을 것입니다. 예술이여 영원하라!
뜬금없는 예술론에 의아해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슐러에게 바치는 찬가는 제게 그런 작품이었습니다.
슐러는 재능있는 화가였고, 단순한 모사 작업에서조차 숨길 수 없는 그 재능 때문에 후원자를 만납니다. 꾸준히 기술을 배워 스승조차 질투할 정도의 실력을 손에 넣고, 살아서는 도저히 할 수 없을 거 같던, 모든 이들이 실패한 공포스런 위업에 도전합니다. 결국 드디어 마녀를 그려 불멸의 영광을 얻습니다. 니르젠베르크의 저주는 이제 슐러에게 바치는 찬가가 되어 많은 이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살아가겠죠. 예술이여 영원하라!
굳이 옥의 티를 하나 꼽지만, 저는 여기에 나오는 칼스텐이 맘에 들지 않습니다. 여기 등장하는 모든 인물과 요소는 현실의 예술가가 마주하는 것과 대응시킬 수 있어요. 슐러는 당연 재능있는 예술가인 당신일 것이며, 마녀는 당신이 가장 두려워하나 결국 당신이 완성할 당신의 소재일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칼스텐 같이 의식주를 제공하고 정기적인 건강검진에 예술의 소재를 제공하고, 기술을 가르쳐 주기 위한 세미나를 열어주며 무엇보다도 당신의 재능을 한점 의심하지 않는 후원자는 없으니까요. 대신에 당신의 재능을 후려치고 당신의 재능을 헐값에 팔아서 당신에게 돌려주는, 심지어 지각하는 제하고, 그런 악덕업자가 있을 뿐이죠(본 리뷰는 L모 기업을 특정하지 않습니다). 물론 장르가 판타지니까, 그런 후한 후견인 정도는 용납 할 수 있겠죠.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예술이여 영원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