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극히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이 리뷰에서도 언급했듯, 저는 동화적 설정을 가져오는 것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독자의 향수를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환상적인 분위기를 낼 수 있는 일종의 치트키나 다름없지요. 약간 비틀어낸 발칙한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이 동화라 생각합니다. 아이들의 이야기가 어른의 이야기로 바뀌는 순간의 그 소름돋음이 좋습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주의해야 할 게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비틀어낸 이야기가 설득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이야기가 흥미로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쓰고 보니 두 개가 아니라 하나의 줄기인 것 같기도 하네요.
<행복의 유리구두>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신데렐라의 이야기를 차용했습니다. 이 동화의 키워드는 신데렐라, 왕자, 유리구두, 요정 정도로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하나 더 끌어왔지요. 바로 원작에 가까운 잔혹동화에서 빌려온 존재인 언니 두 명에 대한 이야기를요.
의도는 분명했습니다. 어떤 글을 쓸까 고민하던 작가에게는 이 이야기가 문득 생각이 났겠지요. 동화를 비틀어볼까. 신데렐라는 어떨까. 이미 너무도 유명한 동화라 패러디된 이야기들이 많은데, 남들이 손대지 않은 부분을 손대보고 싶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언니들은 어떨까. 좋아, 그렇다면.
…그렇게 만들어진 이야기가 결말부에 드러나게 된 것이 어쩐지 눈에 보입니다. 동화도 좋고 비튼 것도 좋지만, 아쉬웠던 것은 너무 거칠었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저를 쉽게 이해시켜 흥미를 느끼게 하는 데는 실패하신 듯합니다. 동화니까. 요정이니까. –특히-마녀니까. 로 설명하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습니다.
초반부의 그 섬세한 감정, 그리고 배경들의 묘사는 다 어디로 갔나요. 가득차다 못해 약간 넘친다고 생각할 정도였는데 후반부를 급하게 마무리하신건지 아니면 비틀어 만들어낸 이야기를 풀어 설명하기에는 어려웠던 건지 뭉뚱그려 집어넣었다는 느낌을 아주 강하게 받았습니다. 이미 작가도 알고 있는 노골적인 오류를, “마녀니까.” 와 씁쓸한 표정에 모두 담아내기엔 –독자 중 한 사람인- 저를 납득시키지 못했달까요. 심지어 한 번에 이해하기도 어려워 거듭 읽어야 했습니다.
동화를 차용했다 하여, 그 원작과 우연성, 그리고 독자의 이해심에 너무 많은 부분을 기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더랬지요. 작가님은 그러한 것들을 이용하기에 가장 적합한 방법을 찾아냈지만, 오히려 너무 과한 나머지 어느 정도 역효과가 난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후반부에 대한 이야기는 충분히 한 것 같으니, 소설 전반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해 보려 합니다.
초반부가 마음에 들었던 것은, 동화를 차용한 제목임에도 불구하고, 독자의 기대를 어느 정도 벗어나 일상적인 이야기를 너무도 잘 풀어내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간단한 후기를 옆에서 함께 읽었던 제 지인의 평과 함께 하겠습니다.
“첫 화에서 등장한 ‘악몽 아닌 악몽’이라는 소재는 신선하면서도 공감이 갔다. 옛날의 아련한 추억이 다른 방식으로도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우리가 흔히 잊고 사는 생각이다. 그런 부분을 적극적으로 도입해 발단이 된 꿈을 서술하는 모습은 독자의 흥미를 유발하기에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라고 이야기하더군요. 저도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무의식 저 편에 잠들어있던 옛 기억이 어느 날 꿈으로 찾아오는 경험은 누구나 한 번 쯤 해보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3화까지 읽다보니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는 알겠지만 그것이 구체적이지 않다는 것이었다. 걷고 있는 주변 환경이 어떤 모습인지, 학생들이 부탁한 담배는 무엇인지, 소설 자체가 정보 투성이다 보니 불필요한 낭비를 하지 않으려는 의도는 좋으나 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역시나 비슷한 생각이었습니다. 의도한 것으로 보이기도 하나, 2~3화 대부분을 아주 가득 채우려다 보니 오히려 읽는 입장에서는 어쩐지 붕 떠있다는 느낌을 받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섬세한 부분이라 느껴지기도 하였지요. 이런 3화를 지나
4화, 제가 좋아하는 회차입니다. 자신을 요정이라 주장하는, 일상에 불쑥 찾아온 낯선 존재가 과거의 어떤 기억을 건드리며 주인공의 인상에 남습니다. 어쩐지 매력적인 여자아이와 함께 환상적인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회차입니다만, 이 이후로는 분위기가 달라져버려 아쉬웠던 회차이기도 했습니다.
공들인 초반부에 비해, 4회차가 넘어가면서부터는 점점 텐션이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주혁의 인간관계에 대한 염증과 우울이 놀랍게도 시아와 두어 번 만나는 순간 뿅 하고 사라져버린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심지어 잘 생겨지기까지 했어요. 그러나 그걸 이루어준건 시아가 아니었지요.
그럼 누구인가요? 시아가 마녀라 치부해버렸지만 사실은 주혁으로 하여금 시아가 요정이라고 믿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진짜 요정? 아니면 주혁의 모습이 바뀌었다는 건 단순한 맥거핀? 초반의 과하다 싶을 정도의 묘사와 설명은 아람과 형민의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부터 온데간데 없어져버린 것만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중반부는 아주 나쁘진 않았지만, 밸런스가 맞지 않는 것 같았달까요.
스물 넷의 사랑이 이렇게 미숙할 수 있구나, 싶은 주혁의 감정선부터 아직도 어린 시절에 머무르며 왕자님의 등장을 기다리고 있는듯한, 그러나 자기 자신을 신데렐라가 아니라 못된 언니라 말하는 시아. 하나도 자라지 않은 듯한 둘의 모습에 혼란스러운 것도 사실이라 몰입이 깨져버린 부분도 분명 존재했습니다. 특히 후반부의 안구이식에 대한 고민은 전혀 하지 않은 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현실에서는 몇 달에서 몇 년을 생각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굉장히 가볍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런 와중에 거칠게 뭉뚱그려진 비틀린 동화가 카운터펀치를 날리더군요.
주혁과 시아가 만나 사랑하며, 서로를 발판삼아 더욱 성장하길 바랍니다.
이번 리뷰는 여기서 마칩니다.
오랜만의 리뷰가 지적으로 점철된 듯 하여 어쩐지 죄송하기도 합니다. 의뢰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