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을 가르면, 사람을 죽일 명분이 생긴다. 공모 공모채택

대상작품: 은빛 찬란한 기억 (작가: Nosmos, 작품정보)
리뷰어: 최현우, 17년 12월, 조회 48

김정재와 박창석은 서로 만난 적도 없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들이었다. 특별히 서로를 원수처럼 미워할 이유가 없었고, 하물며 서로를 죽일 연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재는 박창석을 향해 총부리를 겨눴고, 결국 방아쇠를 당겼다. 이념이라는 허울만 남은 단어는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했다.

김정재와 박창석은 한국전쟁 시기를 살아야 했던 수많은 사람들을 대변한다. 김정재가 민병대에 지원한 것은 사회주의에 어마어마한 적개심을 품고 있거나 빨갱이들을 직접 쏴 죽이지 않고서는 분이 풀리지 않는 성격이라서가 아니다. 단지 그는 총알받이가 될게 뻔한 군대에 지원하는 것보다 민병대에 들어가는 게 더 낫겠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박창석 역시 뿌리 깊은 사회주의 열사와는 거리가 멀다. 지주 출신의 할아버지는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아버지를 둔 그는 어이없게도 가족의 사상이 의심된다는 누군가의 밀고로 붙잡혀왔을 뿐이다. 그가 이야기를 나눴던 중년 남자는 서울 사는 동생이 사회주의 운동에 참여해서, 어린 두 명의 중학생은 멋모르고 선생님을 따랐다가, 농부는 아무것도 모르고 도장을 빌려준 이장이 보도연맹에 가입시킨 탓에 빨갱이 낙인이 찍혔다.

한국 근현대사에 벌어진 무의미하고 어처구니없는 참극. 잊혀져가기에 더욱 지나치기 쉬운 그 역사를 다시금 되살리는 기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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