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사는 조금 산만해도 괜찮습니다 비평

대상작품: ADHD 용사님 (작가: 노르바, 작품정보)
리뷰어: 영원한밤, 2시간 전, 조회 8

본 리뷰는 최대한 스포일러는 배제하였습니다.

※ 분류상 비평 리뷰이나, 팬심을 담은 분석적 광고에 가깝습니다.

한달 열흘 전 즈음 구독해둔 작가님의 새로운 작품 등록 알림이 떴습니다. 제목부터 눈길을 끌었고, 정통 판타지 배경임을 드러내면서 본문에서 직접적으로 ‘ADHD’라는 이질적인 단어를 당당하게 써 둔 프롤로그는 흥미로웠습니다.

판타지장르에 대한 고찰을 다룬 위 작품으로 작가님의 작품을 처음 접했기에 기대가 오른 상태였고, 무거운 작품이 아닐 것이라는 직감과 함께 연재를 기다렸습니다. 마침내 완결이 났고, 응원하는 마음으로 리뷰를 씁니다.


1. ADHD를 ‘설정’이 아닌 ‘서술의 언어’로 사용하는 방식

이 작품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특징은, 분명히 작중 세계관에는 ADHD라는 병명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서술에서는 ADHD라는 표현을 명확히 사용한다는 점입니다. 중세풍의 익숙한 판타지 세계 안에서 ADHD는 제도적으로 규정되거나 진단되는 개념이 아닙니다. 주인공 아론은 단지 ‘조금 특이한 용사 지망생’으로 인식될 뿐입니다. 그러나 작품은 이를 애써 우회하거나 희석하지 않고, ADHD라는 단어를 직접 호출함으로써 독자의 이해 지점을 분명히 설정합니다.

주인공의 행동은 이러한 서술 방식과 긴밀하게 맞물려 있습니다. 학교에 매번 5분씩 지각하는 모습, 하나의 과제에 몰두하면 주변 상황이나 다른 요구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태도, 그리고 대인관계에서 반복적으로 어긋나는 반응들은 모두 이야기의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제시됩니다. 작품은 주인공의 이러한 모습을 개성이나 결함으로 단순화하지 않고, 매 회차마다 ADHD를 가진 사람들의 특성을 판타지 세계관을 살아가는 인물의 행동으로 흥미롭게 보여준 뒤, 이를 현대의학적 관점에서 짤막하게 곁들이는 방식을 취합니다.

이러한 설명은 교육적 목적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습니다. 진단명이나 증상을 나열하기보다는, 방금 읽은 장면을 다시 한 번 정리해 주는 정도에 그치면서도, 독자가 스스로 연결 지을 여지를 남겨둡니다. 읽는 입장에서는 ‘이 용사가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를 평가하기보다, ‘이렇게 사고하고 인식할 수도 있다’는 이해의 지점에 도달하게 됩니다. ADHD를 이야기의 장식이나 특이점으로 소비하지 않고, 서술의 기본 언어로 삼는 이 태도가 이 작품을 단순한 설정 소설이 아닌, 명확한 주제 의식을 가진 이야기로 만듭니다.


2. 단순한 플롯이 오히려 돋보이게 만드는 인물 중심 서사

이야기의 기본 골격은 용사가 왕명을 받아 마왕을 토벌하러 떠난다는, 매우 정직하고 익숙한 판타지 구조를 따릅니다. 사건의 전개 역시 복잡하지 않으며, 반전이나 거대한 세계관 설정을 앞세우려 애쓰지 않습니다. 이러한 단순함은 이 작품에서 결점이 되기보다는, 인물의 내면과 행동을 부각시키는 장치로 기능합니다.

플롯이 과도하게 사건 중심으로 흐르지 않기 때문에, 읽는 이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무엇이 일어나는가’보다는 ‘이 인물이 왜 이렇게 반응하는가’에 머무르게 됩니다. 전형적인 이상적인 용사라면 보였을 법한 판단과는 다른 주인공의 선택, 상황에 대한 과도한 몰입이나 반대로 놓쳐버리는 주변 맥락들은 반복적으로 제시되며, 이를 통해 ADHD를 가진 사람이 세상을 인식하고 대응하는 방식이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특히 인상적인 점은, 작품이 이러한 차이를 갈등의 원인이나 극복의 대상으로 설정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주인공은 자신의 특성 때문에 끊임없이 좌절하거나, 어느 순간 정상화되는 방향으로 변화하지 않습니다. 대신 작품은 그 상태 그대로 이야기를 진행하며, 용사의 여정 역시 그 연장선상에 놓습니다. 그 결과 이 작품의 서사는 성장이나 교정의 이야기가 아니라, 특정한 인식 구조를 가진 인물이 세상과 관계 맺는 방식을 담담하게 따라가는 기록에 가깝게 그려집니다.


3. 에필로그와 후기를 통해 완성되는 작가의 메시지

이 작품의 에필로그는 이야기의 사건을 정리하는 기능보다는, 작품 전체를 관통해온 태도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장치에 가깝습니다. 마왕 토벌 서사가 끝난 뒤 이어지는 이 글은, 극적인 여운이나 추가적인 설명을 덧붙이기보다, 모든 ADHD를 향한 짧고 분명한 메시지에 집중합니다. 앞선 서사에서 반복적으로 보여주었던 시선을 가장 응축된 형태로 전달합니다.

작품을 다 읽고 직접 읽어보기를 권합니다.

이어지는 후기에서는 작가님이 본인 역시 ADHD를 가지고 있음을 밝히며, 이 작품을 쓰게 된 개인적인 동기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작가님은 작품이 연재되는 동안에도 작가코멘트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그러한 사실을 드러냈기도 했지만, 이러한 작가 고백은 작품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게 만들기보다는, 오히려 지금까지 읽어온 이야기의 방향성을 확인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주인공의 행동과 선택, 그리고 이를 바라보는 서술의 태도가 결코 우연적인 설정이 아니었음을 분명히 하며, 이 서사가 경험에서 비롯되었음을 자연스럽게 인식시킵니다.

그 결과 『ADHD 용사님』은 단순한 판타지 이야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특정한 특성을 가진 사람들이 스스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또 어떻게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지에 대한 메시지를 완성합니다. 에필로그와 후기는 작품을 설명하는 부록이 아니라, 이 이야기가 끝내 도달하고자 했던 지점을 또렷하게 짚어주는 마무리로 기능합니다. 출간물로 나온다면 꼭 포함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ADHD 치료제인 메틸페니데이트 처방 환자 수는 지난 2020년 14만259명에서 작년인 2024년 33만6천810명으로 5년간 약 2.4배가 넘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작중 설명하는 ADHD 증상에 따른 행동패턴과 매우 유사한 모습을 보이는 주변인이 있어서(…) 더 공감하면서 봤습니다.

 

알리되, 가르치지 않는.

가볍지만 우습지 않게, 무거운듯 딱딱하지 않게.

 

장편이지만 어렵지 않고,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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