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길 위에서 다시 읽는 허수아비 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허수아비 (작가: 배명은, 작품정보)
리뷰어: 자하경, 17년 12월, 조회 135

다소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어느 날, 브릿G에서 ‘단편들, 한국 공포 문학의 밤’ 출간 기념으로 단편별 공유+퀴즈 이벤트를 진행하는걸 보게 됐습니다. 옳거니 하고 참여했더니 덜컥 첫 날 이벤트에 당첨되고, 작가님의 축하까지 받으며 과분한 경품들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받게된 책과 축하의 말씀에 돌려드릴 수 있는게 뭘까 생각을 좀 했습니다. 그리고 미력하지만 감상으로나마 보답하고자, 리뷰를 남기겠다고 마음을 먹게 된 것입니다.

우선 작품을 읽게 된 경위가 위와 같구요. :) 책을 주욱 읽고 제일 먼저 리뷰를 남기는 작품이 본 작품인 것은, 무엇보다 읽어낼 요소와 곱씹을거리가 곳곳에 잘 만들어진 소품처럼 안배되어준 덕분입니다. 차를 여러번 우려 마시듯 읽을 때마다 색다른 맛이 배어나는 ‘허수아비’에 대해 조금 이야기를 해보고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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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예로부터 죽음과 생명, 그리고 그 순환의 매개체로써 자리잡아 왔습니다. 그리고 이야기는 비와 강이라는 직접적 소재를 통해 이러한 물의 이야기를 다층적으로 풀어냅니다.

작중 화자인 나는 촬영을 위해 최 군과 함께 강진으로 향합니다. 와중에 비가 쏟아지는 장면부터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작품에서 제일 먼저 등장하며 줄곧 서술되는 물의 요소인 비. 작품 전반에서 비는 ‘나’의 심상을 많이 반영합니다. 흔히 마음이 복잡하면, 폭풍이 몰아친다고도 표현하죠. 나 스스로가 서술하는 것 이상의 불안감, 죄책감 등 한층 심층적인 감정의 변화를 비를 통해 작품은 묘사합니다. 작품 전반에서 비는 시시때때로 쏟아지다 그치다를 반복합니다. 이는 아내의 시신을 수색하는 회상에서도 같은 맥락을 보이는데, 불안정한 나의 심리를 를 대변하는 요소로 작용합니다.

나는 최 군과 함께 사고로 흘러들어간 마을에서 강에 떠밀려오는 잡동사니로 허수아비를 만드는 노인을 만나게 됩니다. 차를 고치러 온 카센터 윤 씨의 입을 빌려 설명되는 일의 저간 사정은, 동화 할매와 노인의 갈등을 다룹니다.

동화 할매는 소라의 익사 사고와 허수아비의 관계성을 지적하며 문제의 원인을 해결하려고자 하는데요. 물의 올바른 역할(죽음과 생명의 순환)을 거스르는 노인에게 맞서는 존재로 서술되는 동화 할매는 풍으로 쓰러지며 결국 노인의 행위를 저지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대립 구도는 다소 익숙한 설화적 구도로도 읽히며, 동화 할매는 무속 신앙에서 노고할미(삼신할미) 신앙으로도 표현되는 물할미의 메타포로 읽힐 수 있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전반적인 맥락에서 약간의 비약을 섞자면 노인이 모은 허수아비들의 넋과 원한이 할매의 풍에 영향을 끼친게 아닌가하는 추측까지 이르게 되는데요. 동화 할매는 짧게 언급되고 지나가는 등장인물이지만, 제가 읽은 요소 외에도 읽어낼 요소가 많은 인물이라고 생각됩니다. 기회가 된다면 작가님의 더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D

서사의 갈등에 힘을 실어주는 허수아비들이 살아 움직이는 것은 모두 강 근처에서 벌어지는 일입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죽음과 삶의 경계이자 새로운 생명으로 나아가는 길인 강이지만, 뒤틀린 혼건지기굿으로 건져진 허수아비들은 둑에 못박힌채 순리를 거스르는 존재들입니다. 일반적인 씻김굿과 혼건지기굿에서 이어지는 천도굿 없이 무속적 행위로 허수아비의 틀 안에 가두어진 넋들의 모습은, 대중 영화에서 자주 보던 강시의 모습을 겹쳐보이게도 합니다. 무덤가에 매인 강시들처럼 강에 매인 허수아비들의 모습이 말이죠.

이야기의 흐름에서 결국 노인은 동화 할매의 대척점에 선 무속적 존재로 자리매김하고 마을을 자신의 터로 삼아 승리한 존재로 완성됩니다. 이야기의 이 지점에서 설화적인 느낌이 물씬 묻어나며 옛스러운 공포와 호러의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결말에 이르러 나는 결국 허수아비 무리에서 아내를 찾아내게 됩니다. 이때 이승에서 이름붙여지는 물리적인 강과는 거리가 있지만, 물이라는 큰 틀 안에서 지니고 있는 순환의 목적성이 극대화되며 이야기의 맥을 관통합니다. 그리고 갈등의 급류는 나와 소미 어머니를 허수아비에 합류시키는 것으로 결말짓습니다.

허수아비로 이루어지는 이런 갈등에서 살아남은 조연 최 군의 이야기도 여러모로 읽을만한 요소였는데요. 의도적으로 나와 최 군은 길을 찾는 방법이나, 차량 수리에서 보이는 모습 등 여러 요소에서 대비되는 존재로 서술됩니다. 이는 과거에 얽매인 사람이냐 아니냐를 암시되는 부분으로 보입니다. 소미 어머니와 나는 결국 소미와 아내에게 얽힌 사람들이자 호러적 희생자로, 최 군과 소미 아버지는 이와 다른 호러적 생존자로서 말이죠.

이 외에도 허수아비의 잠재적 공포를 극대화하기 위함인지, 생활 속에 묘사되는 정적인 물체들의 생물적 묘사도 곳곳에 숨어있었는데요. 흥미로운 읽을거리이자 화자인 나의 심정에 이입하는데 적절한 요소들로 읽는 맛에 감칠맛을 더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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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요소 요소도 많을 뿐더러, 각각의 맛이 남다르고 전통적인 요소들의 단단한 핵심 위에 그려진 이야기라 다시 읽으면서도 매번 흥미롭게 곱씹으며 본 작품이었습니다. 본 작품을 써주신 작가님께 다시금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글을 마무리 짓습니다.

부족한 글에 너무 두서없이 이야기를 다룬게 아닌지, 섣부른 생각을 너무 확신한게 아닌지 모두 조심스럽습니다. 보시고 어떤 의견이라도 편히 주시면 감사히 수용하는 기회로 삼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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