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대한민국에는 신종 괴질이 떠돌고 있습니다. 그것은 ‘늑대인간 병’으로 이 병에 걸리면 외양이 변하고 폭력성이 강해지며 스스로를 제어할 수 없게 됩니다. ‘삼진 브로커리지’의 직원 평인은 이 병에 걸린 사람들의 뒤처리를 맡고 있습니다. 인기 그룹 ‘KISSER’의 멤버 두 사람이 폭행 사건을 저질러 기소되는 일이 벌어지고, 이를 수습하는 와중에 평인에게 오랜 친구인 민우가 연락을 해 옵니다.
‘치료는 하지 않습니다’는 가상의 병인 ‘늑대인간 병’을 토대로 하고 있습니다. 다 읽고 나면, 왜 글의 장르에 SF와 판타지가 함께 포함돼 있는지 알 것 같아요. ‘늑대인간 병’은 환상적인 소재입니다만 현대 의학으로 그를 극복하려 하고 있거든요. 그리고 그 해결에 아직까지 개발되지 않은 기술들이 동원되고요. 이게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이야기의 주인공 평인은 일종의 브로커입니다. 이름부터가 그런 일을 할 법한 ‘삼진 브로커리지’라는 회사에 다니고 있어요. 사실은 계약직이고 이 회사의 정사원인 석주의 조수인데요. 두 사람이 하는 일은 늑대인간 병에 걸린 사람들의 뒷감당을 도맡는 것입니다. 이 병은 폭력성을 끌어내는 특징이 있어, 한번 발현되고 나면 이런저런 사고 때문에 골치가 아프거든요. 대신에 법적으로 심신미약 상태가 인정이 돼서 이 병을 갖고 있다는 게 증명이 되면 처벌을 면하게 됩니다.
삼진 브로커리지에서 노리고 있는 것도 이 지점이고요. 석주와 평인은 주로 늑대인간 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들을 그 병에 걸린 것으로 위조하는 작업을 맡고 있습니다. 큰 사고를 쳐도 늑대인간 병에 걸렸다고 우기면 빠져나갈 수 있어요. 책임은 사람이 아니라 병이 지는 것입니다. 치료를 받으면 다시 일상으로 복귀가 가능하고요. 저런 병에 걸린 경력이 있으면 당연히 취업에는 불리하지만 이들이 타겟으로 삼는 대상들은 취업 같은데 연연하는 사람들이 아니니까요.
재미있는 부분은 독자가 이 글에서 늑대인간 병에 걸린 사람들을 직접 목격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병에 걸린 환자들은 그냥 언급만 되고 지나가거든요. 사실상 배경으로만 존재해요. ‘치료는 하지 않습니다’에서 늑대인간 병은 사법 처리를 피하고 군대를 면제받기 위한 회피 수단입니다. 유명한 신종 정신병이라고 봐도 될 것 같아요. 하지만 그로 인해 결국 거대한 파국을 맞을 정도로 커다란 갈등이 벌어지니 소재로서의 쓰임은 부족함 없이 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 작품에서는 좋은 결말을 맞는 사람이 거의 없는데요. 대부분의 주요 인물이 자신이 벌여놓은 일로 인해 최악의 상황에 처하게 됩니다. 석주는 자신이 뒤처리를 맡았던 사건의 피해자 아버지를 우연히 만나 보복을 당했어요. 민우는 분풀이 삼아 평랑을 해쳤다가 평인에게 기습을 받았고요. 평인 역시 여동생을 잃게 된 이유는 자신이 그런 브로커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애당초 민우가 부탁을 해올 일이 없습니다.
양심을 팔았다고는 하지만 사실 이들은 작은 유혹에 넘어간 사람들입니다. 석주는 자신의 장기를 살려 회사에서 요구하는 일을 하고 있을 따름이고, 민우는 일생일대의 기회 앞에서 군대에 가야 하는 게 억울해서 편법을 쓰려 했어요. 평인 역시 어차피 그가 주도하는 일이 아니며 계약직이자 조수일 뿐입니다. 자신들이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그런 식으로 사회의 맹점을 이용했을 거라고 생각하면 합리화가 쉬워요. 마지막에 누구 하나의 잘못이 아니니 세상을 미워하려 했다는 말을 평인이 괜히 하는 게 아니에요.
그러므로 이 글의 ‘늑대인간 병’은 사회 부조리를 드러내는 도구입니다. 큰 죄를 저질러도 어떤 이들은 빠져나갈 방법을 찾아냅니다. 기득권과 결탁한 윗선의 요구를 따르는 것만으로도 누군가는 큰 이득을 볼 수 있습니다. 피할 수 없는 문제 앞에서 한 발짝만 디디면 바로 사용할 수 있는 편법이 있습니다. 양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하면 좋겠지만 모두가 그럴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여동생을 잃고 난 후 평인은 자신이 회사에 있을 때와 같은 수단을 사용해서 대응하려 해 보지만 이미 늦었어요. 그처럼 없이 살고 약한 사람이 그런 방법을 마음대로 쓸 수 있을 만큼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전반적으로 이 글은 감정의 진폭이 크고 사건이 극단적으로 진전되는 면이 있습니다. 200페이지가 넘는 글인데도 속도가 그리 느긋하지 않아요. 등장인물들의 상황 판단이 지나치게 갑작스럽고요. 하지만 주요 소재로 삼고 있는 늑대인간 병이 분노조절장애와 쉽게 구별이 되지 않는만큼 이런 전개가 득이 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제가 느끼기에는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다른 대안이 없을 때 특정 전개를 밀어붙여서 얻는 이득이 크다면 그렇게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 쪽이라 이런 부분이 크게 단점처럼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결말에서 평인은 결국 파국을 맞았어요. 다른 수단이 모두 봉쇄된 입장에서 그의 분노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건 사적 복수뿐입니다. 늑대인간 병이 발병하고야 만 것 같지만 작가는 그걸 분명하게 알려주지 않아요. 일을 벌이고 경찰의 보호 하에 병원에 입원해 있던 민우는 평인에게 죽고 맙니다. 글은 열린 결말로 끝이 나지만, 저는 뒷부분을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참사가 벌어지고, 경찰이 들이닥쳐 총을 겨누고 있는 그 다음에. 늑대인간 병이 발병했다고 치고 상상을 이어간다면.
작중의 다른 사람들처럼 평인은 정상 참작을 받을 수 있을까요. 왠지 그럴 것 같지가 않습니다. 이 글에서 늑대인간 병의 혜택을 입은 사람은 모두 기득권이거나 이용 가치가 있는 사람들뿐이었어요. 그에 해당되지 않는 평인을 그렇게까지 애를 쓰며 지켜줄 사람은 없어요. 바로 그 자리에서 난동을 부리다 사살되지 않을까요? 어쩌면 그 때문에 제목이 이렇게 붙여졌을지도 모르지요. 이용할 가치가 없는 사람들을, 치료는 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