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신 감상 공모 브릿G추천

대상작품: 지식의 신 (작가: 번연, 작품정보)
리뷰어: 화룡, 17년 12월, 조회 109

먼저 언급해 둘 것은 나는 호러 장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황금가지 밀리언 셀러 클럽에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호러 장르가 많은 것에 다분히 불만을 품고 있을 만큼 그렇다. 어째서 싫어하게 된 것인지는 자신도 명확하게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장르를 이루는 클리셰의 많은 부분을 싫어한다. 여타의 장르를 좋아하는 순서대로 늘어놓는다면 아마 호러 장르가 가장 밑에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호러 장르에 재미있는 작품이 하나도 없는 것은 아니다. 좋아하는 장르라면 어느정도 참고 읽을 만한 사소한 단점도 싫어하는 장르에서는 유난히 눈에 띌 뿐이다. 그런 면에서 ‘지식의 신’을 읽고 정말 재미있었다고 강한 인상을 받은 것은 스스로도 놀라운 일이다.

 

예를 들어 절박한 고시생이 머리카락이 자꾸 눈을 찌름에도 불구하고 외모에 신경쓰며 앞머리 다듬으러 미용실을 가는 장면에서는 아니 정 짜증나면 당장은 헤드밴드나 머리띠라도 하면 되고, 하다못해 젤이라도 발라 빗어넘겨 버리면 되는거 아닌가 싶은 딴지를 걸 수도 있고, 군대갈 남자라고 귀신이 두렵지 않으면 되겠냐는건 성차별 아니냐는 둥 딴지를 걸 수도 있다. 상기의 예가 올바른 지적이라는 것이 아니라, 첨을 읽을 때는 그런 불만을 전혀 떠올리지 못할 만큼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그렇게 싫어하는 호러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주인공 희진에게 있었던 일을 담담히 설명해주는 제 3자인 양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다만 이 때 작가의 눈은 작품의 또 다른 주인공인 수미보다는 희진에게 더 가까이 있으며, 마치 희진의 어깨위에 올려놓은 카메라를 통해 보는 듯하게 서술한다. 이 감상을 쓸 때 ‘화자’라고 몇 번 썼다가 다시 지워야 했을 만큼, 즉 마치 1인칭 시점으로 글을 쓴 것으로 착각이 들 만큼, 희진이 느끼는 당혹감과 그 감정이 서서히 공포로 변해가는 과정을 매우 선명하게 묘사한다.

 

특히  당혹감이 완전히 공포로 변한 시점에서 작가는 독자의 심장을 조였다 놓았다 하기 위해 서식에 변화를 주는 기법을 쓴다. 한 단어 한 단어 일부러 쉼표를 반복해 쓴다던가, 연속해서 줄바꿈을 한다던가, 대사 안에 의성어를 과하게 섞는다던가… 이러한 기법으로 독자가 글을 읽어나가는  속도를 일부러 떨어트리며 특정 장면에 강한 대비를 준다.

 

나는 딱히 이런 기법이 잘못되었다는 식으로 생각하지 않지만, 잘못 쓰면 촌스럽고 작품에의 몰입을 방해한다고 생각해서 신중히 사용해야 한다는 입장인데, 이 작품에서는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적재적소에 잘 사용되었다고 생각한다. 특히 거의 1인칭에 가까울 정도로 희진의 심정을 가까이서 묘사한 덕분에 이런 기법의 사용이 더 효과적이었다. 마치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주던 담력시험장 조교가 중요한 장면에서 말소리를 낮추고 속삭이듯 말하다 큰 소리로 놀래켜주는 듯한 그런 느낌을 소설에서 받을 줄이야.

 

더 놀라운 사실은 이 이야기가 사실은 그리 무서운 이야기가 아닌데도 무섭다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이야기, 어제 뉴스에서 단신으로 흘려들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조그만 토픽으로 5분만에 읽고 지나쳤을 수도 있는 그런 이야기다.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고시생이 거식증에 걸려 영양실조로 사망하였습니다. 극도의 경쟁사회가 되어 버린 우리 사회, 이런 비극을 막을 방법은 정말 없을까요? KBS, 김영영 기자였습니다 운운.

 

그러나 희진의 어깨 너머로 사건을 보며 나는 이 무섭지 않을 이야기에 무서워 떨었다. 처음에는 그저 머리를 안 감을 정도로 절박한 수험생일 뿐이었다. 나도 안 감아볼까? 잠깐 생각이 들 정도의 그저 그런 미신. 그것이 조금 뒤에는 머리카락을 자르면 먹을 테니 달라는 이야기에서 진짜로 머리카락을 가져다 먹는 사람에서 이윽고 깊은 어둠 속 바닥을 기어다니며 남의 머리카락을 주워먹는 이야기로 변한다. 광기가 마침내 귀기로 변하는 그 장면에 이르러서도 정말 무서운 것은, 이것이 실제 있었던 일이라 하더라도 딱히 놀랍지 않을거라는 그 사실감이다.

 

다만 처음 몰입해서 읽은 이후, 감상을 적기 전에 생각을 정리하려 몇 번 더 읽자 아무래도 옥의 티가 보인다. 특히 걸리는 것은 ‘지식’을 강조하는 부분인데, 제목에서도 그렇고 내용 안에서도 수미의 대사를 빌려 ‘머리카락=지식’ 이라는 것을 자꾸 상기시킨다. 아까 서식을 바꾸는 기법이 연출적으로 훌륭했다고 했지만, 대사 안에서 특정 부분만을 이탤릭체로 강조하는 것 만큼은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이 기법 자체가 잘못되었다기 보다는 그런 식으로 강조하려는 작가의 의도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상기시키지 않아도 대부분의 독자는 도입부에서 이미 머리카락에 지식이 남아있는다는 설과 이를 위해 머리카락을 먹으려 하는 수미에게서 깊은 인상을 받은 상태로, 이후 자꾸 이를 상기시키는 것은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에 불과하다.

 

특히 마지막에 이르러, 어쩌면 가장 중요한 장면인 수미의 시체를 뒤집는 장면에서 다시 한번 이를 하나의 문장으로 체화해 강조한 것은 너무 직접적이라 어찌보면 독자를 얕보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좀 더 세련된 방식으로 이야기의 주제를 전달할 여지가 있다고 생각된다.

 

호러를 좋아하지도 않고 별로 읽어본 적도 없는 사람의 시선으로 본 감상이다. 어쩌면 너무 뻔한 이야기를 했을 수도, 어쩌면 너무 엉뚱한 이야기를 했을 수도 있다. 다만 정말 좋은 글을 잘 읽었다, 그리고 앞으로의 작품도 기대한다는 마음을 전하는 심정으로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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