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 트릭과 상당한 스토리 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증거 시리즈 – 증거가 없으니 입을 다물 수 밖에 (작가: 반도, 작품정보)
리뷰어: BornWriter, 17년 12월, 조회 122

매우매우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매우매우 스포일러 함유합니다.

매우매우 매우매우 매우합니다(?)

 

이 작품을 읽고 그런 생각을 하였다. 정확히는 어떤 작품에 대한 생각이다. 일본의 요네자와 호노부라는 추리 소설 작가가 있는데, <빙과>라는 걸출한 소설을 써낸 사람이다. <빙과> 시리즈는 시시콜콜한 수수께끼물의 시초는 아닐지언정 기폭제는 되었다. 브릿G에서 예를 들어보자면 천가을 님 같은 분이 이런 시시콜콜한 수수께끼물을 쓰시는 분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참고로 시시콜콜한 수수께끼라는 작명은 내가 하였다. 후후.

이 작품도 그런 분류에 속한다. 사건은 시시콜콜하고, 수수께끼는 쉽지 않다. 잘 짜여진 추리소설이 그러하듯 풀릴 듯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가 독자에게 주어진다. 이 시점에서 나는 추리 소설의 구조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수수께끼가 등장했다. 그러면 다음에는 무엇이 와야 할까. 해답? 오답? 그렇지 않다. 우선은 수사가 와야 한다.

만약 그 유명한 탐정 셜록 홈즈가 대충 들은 내용만을 가지고 후다닥 범인을 맞춰버리면 시리즈가 이토록 오랫동안 사랑받지 못했을 것이다(물론 홈즈의 대단함을 보이기 위해서 후다닥 범인을 맞추는 장면도 나오긴 하지만, 그게 메인 에피소드는 아니니까). 홈즈는 수사하고 위험에 처하기도 하고 비타민과 독약 사이에서 주저하기도 하며, 하여튼 오만가지 고난 끝에 범인을 찾는 데 성공한다.

<빙과> 씨리즈와 같은 시시께끼물(이름이 너무 기니까 줄여 쓰겠다)의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수사를 하는 일이 오히려 드물어진다. 대신 시시께끼물에서의 수사는 대화를 통해 이루어진다. 다양한 엑스트라가 등장하고, 그들의 입을 빌어 여러 정보를 제공한다. 이들의 등장은 보통 우연하다. 서점에 갔는데 친구가 거기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거나,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를 먹고 있는데 옆테이블에 와 앉는다거나. 하여튼 이런 시시께끼물에서도 주인공이 이리저리 움직이기는 한다.

 

이 작품에서는 그런 내용이 탈락되어있다. 탈락되었다는 표현이 거식하다면 축약되었다고 해도 무방하겠다. 반 아이들을 한 데 모아놓고 증언을 받고, 그 내용을 토대로 추론을 하니까, 상당히 수사 과정이 심플하게 되었다. 이것은 독자들에게 많은 정보를 단시간에 제공하기 때문에 잘못하면 ‘독자가 이 내용 전부를 기억하지 않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또한 가만 앉아서 떠들어댈 뿐이니 긴장감이 별로 없다. 그냥 늘어지는 것 뿐이고, 마치 그 자리에 앉아있을 학생들처럼 “아따 언제 끝나냐”하는 마음이 되어버린다. 가장 중요한 추론 씬이 그래서는 안된다. 추론의 결과가 오답이라 해도 그러하다.

독자에게 제시되는 정보가 한 번에 많은 양인 것도 문제이기는 하지만, 디테일이 매우 떨어진다는 것도 지적하고 싶다. 가령 모래같은 것이 그러하다. 독자는 탈의실의 바닥이 대리석인지 싸구려 장판인지도 모르고 있다. 이것은 꽤 많은 것을 좌우하는데, 가령 운동장에서 한참 뛴 운동화로 싸구려 장판을 밟으면 모래로 된 발자국이 선명하게 남기 때문이다. 그러니 모래의 양과 분산된 형태 따위가 제시되었어야 옳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그러한 종류의 디테일은 찾기 어려웠다.

또한 디테일이 부족해서 작중 인물들이 하는 말은 너무나도 타당성이 없어져버린다. 추리 소설은 호러와 마찬가지로 정보의 제공이 작가에 의해 통제되어야 하고, 또한 독자가 모든 정보를 다 알아서도 안 되는 장르이다. 독자는 서서히 알아가야 하며 끝에 가서야 모든 것을 이해해야 한다. 그렇지만 이 작품은 서서히 알아가기는 커녕 왕창왕창 집어던지는 듯한 느낌을 준다. 정보를 다루는 작가의 실력이 조금 많이 아쉽다.

사실 트릭이랄까 사건의 내용 자체는 나쁘지 않다. 괜찮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지갑이 없어진 게 아니라 옷이 뒤바뀐 거라니, 확실히 읽는 도중에도 금방 떠올릴 수 있는 결말은 아니다. 그렇지만 스토리가 트릭의 멋짐을 퇴색시켜버린 감이 상당히 심하다. 작품의 길이를 훨씬 짧게 하거나, 아예 길게 만들어버리는 편이 이 작품을 위해서 좋을 거 같다. 개인적으로는 그냥 500매짜리 중편으로 만들어버리는 편을 추천한다.

 

 

+ 문장은 스토리보다 더 아쉬웠다. 문장 구조에 대해 공부한다면 훨씬 수월하게 읽히는 글을 쓸 수 있을거라 조언해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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