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상황이다.
분명 작가 본인의 의지로 적는 글이지만 글을 쓰다보면 등장인물들이 참 작가 말을 안 듣는다. 그럴 때면 마치 소설 속의 등장인물들이 자유의지를 갖고 원고마감시간을 코앞에 둔 작가를 괴롭히기 위해 일부러 반항을 하기 시작한다는 피해망상에 시달리기도 한다. 좀 더 이성적으로 접근하자면 ‘자신이 원하는 전개를 진행하기 위한 납득할만한 개연성이 떠오르지 않는 것’뿐이지만, 등장인물들이 작가의 의도를 벗어나 기행을 저지르며 극 전체의 분위기를 망쳐놓는다면 ‘내가 지금까지 여기에 쏟아 부운 시간은 다 뭐였지?’하는 자괴감이 몰려온다.
과연 그럴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상의 존재는 자유의지를 갖지 못한다고 여긴다. 그렇다면 자유의지란 무엇일까? 소설 속의 등장인물들은 작가가 사전에 설정한 세계관 위에서 그 세계의 규칙에 따라 움직인다. 작가가 적는 대로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는 소설 속의 등장인물들도 사실은 개연성이라는 빡빡한 규칙과 규율에 얽매여 행동할 수밖에 없다. 그 규율에 벗어나는 행동을 하는 순간 극의 개연성을 망치는 ‘차라리 없는 게 나은 문장’이 되는 것이다. 이때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뭔가를 자유의지로 선택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등장인물들의 선택은 글을 쓰기 전부터 이미 기획되어 있거나, 집필 도중에 그러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도록 유도된다. 깨끗한 사과와 벌래 먹은 사과 중에 깨끗한 사과를 골랐다고 해서 그것을 선택의 자유가 있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이제 질문을 좀 더 확장해서, 그러한 등장인물들을 집필하는 작가 본인인 우리에게는 자유의지가 과연 있을까? 소설 안의 등장인문들에게 개연성이라 불리는 것과 같이, 현실세계에 살아가는 우리에겐 법, 사회통념, 가치관, 문화 기타 등등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요소들이 있다. 웃어른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은 과연 우리의 자유의지에 해당하는 일일까? 자명종 알람소리에 아침에 일어나는 건? 이가 썩지 않기 위해 식사 후에 양치질을 하는 것은? 홈쇼핑 프로에서 얻은 올해의 유행 패션정보에 따라 옷을 구입하는 것은? 우리는 정말로 치킨과 맥주를 좋아할까? 원한다면 얼마든지 평소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고 하지만, 소설 속 주인공들 역시 얼마든지 개연성을 무시하고 움직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들에게도 자유의지가 있는가?
‘과연 우리는 등장인물의 의지를 완전히 통제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한 이 메타픽션 소설은 우리에게 많은 철학적 질문을 던진다. 소설 속 등장인물을 통제하려다 의도와 다르게 흘러가자 당황한 작가 히로키 역시 그렇게 놀라도록 처음부터 기획되고 의도된 소설 속 등장인물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