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이유없이 어떤 글에 훅 끌릴 때가 있다.
섭씨 233도의 경우 제목을 보고 일단 한번 눈이 갔고-일반적으로 숫자가 들어간 제목은 그냥 제목보다 조금 더 눈에 잘 띄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한다-다음으로는 뭐가 섭씨 233도라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족이지만 미리 제목에 대한 이야길 하자면 이 섭씨 233도는 종이가 불에 타는 온도로 아주 유명한 책의 제목 <화씨 451>과 같은 온도이기도 한데- 그 작가에게 바치는 글은 아니라고 쓰여 있지만 아마 우연찮게라도 그 책의 제목을 보다가 혹은 책을 읽다가 어…? 하고 갑자기 어떤 아이디어를 얻게 되어 제목을 저리 붙이게 된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제목 자체만 보면 내용이 전혀 예측이 안가고 아리송한데 그래서인지 오히려 더 재미있게 다가왔던 듯.
아주 직관적으로 내용이나 소재에 대한 소개를 하는 제목이 있는가하면 이렇게 궁금증을 자아내며 은근한 암시를 뿌리거나 미끼를 던지는 듯한 제목도 있는 법이니까.
글의 소개조차 보지 않고 바로 읽기를 시작했다. 곧장 이어지는 ‘노숙자’에 대한 이야기에 옛날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노숙자를 처음으로 직접 봤던 오래 전의 일이다. 텔레비전 속 드라마나 뉴스에서만 봤던 그들은 실제로 보니 생각 이상으로 위협적이었고 불편한 느낌을 주었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그 때는 늦은 시각, 새벽이었다.
여튼 단편적으로나마 노숙자에 대한 이미지가 진하게 새겨져있기 때문인지 몰입이 빠르게 된다. 그렇게 작가가 그려주는 이미지를 쏙속 받아먹다 보니 어느 순간 요상한 장면과 함께 본론이 시작되고 있었다. 어느 노인이 오만원짜리 돈다발을 불에 태우고 있는 장면 말이다.
뭘까. 호기심이 발동한다. 마치 내가 이야기 속의 ‘나’인 것만 같다.
조금은 자질구레할 수 있을,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던 노인의 사연은 다분히 현실적이다.
가까운 내 주변에는 없지만 뉴스나 인터넷 상의 글을 통해 한번 정도는 접해봤을 그런 사연이다.
이후로도 길게 이어지는 노인의 사연은 ‘나’로 하여금 ‘짜증’을 불러일으키게 되지만 상대는 별 신경쓰지도 않는 눈치다.
구구절절 마음 아픈 이야기겠지만 어쩌랴. 그도 그럴 것이 안타깝기야 하지만 어쨋든 ‘남’의 이야기니까. 지금 손에 든 돈을 불태우고 있는 노인의 행동이 ‘나’에게는 더 의미있는 부분이니까.
그리고 ‘내’가 노인의 ‘사연’ 따위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듯 사실은 노인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노인의 삶 이야기에 심드렁한 반응을 보였던 것처럼 노인도 곧 다가올 ‘나’의 결말에 별 감흥을 못 느낀 모양이었겠지.
‘남’의 이야기니까. 죽음을 코 앞에 둔 어느 젊은 여자의 최후보다는 지금 남아있는 삶을 최대한 쓰고 싶은 대로 써야 하는 ‘나’의 행동이 더 중요한 부분이니까.
짧지만 강렬했다.
차가운 새벽 공기의 내음도 느껴지고, 파다닥 타들어가는 지폐도 눈 앞에 아른거린다.
아쉬운 점은 늙고 병들고 못 배웠을 노인의 말투가 너무 젊고 3, 40대 스러웠다는 것. 반드시 노인이라고 해서 특정 말투를 사용해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다분히 아쉽게 느껴지는 부분이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그러나 나름 서스펜스가 나쁘지 않게 실려 있는 글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