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석꾼 우가우가>는 찬란했던 문명을 이룬 인류가 모든 것을 잃은 뒤에 다시 나타난 문명에서, 만석꾼, 즉 곡식 만 석을 거두어들일 능력이 되는 넓은 땅을 소유한 사람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어째서 그가 글자를 알고 있는지, 그리고 노예제도가 왜 다시 나타났는지 등은 매우 짧은 이야기 속에서 추측하기 어렵지만, 지금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매우 야만적이고 인간에 대한 배려가 없는 인간이 권력을 잡고 있다는 것 정도는 파악할 수 있다.
실제로 인류가 사라진 뒤에 다시 등장한 문명을 다루었던 영화가 있었다고 기억한다. 제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80만 년 뒤에 인류는 다시 수렵시대로 돌아가서 하루 하루 동물을 잡아 먹으면서 살았고, 대립하는 부족 간에 싸움이 벌어지면 무기가 좋고 쪽수가 많은 쪽이 승리하는 매우 미개한(…) 문명이 지구에 존재한다. 시간여행자는 이를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는 아마도 자신의 뜻대로 미래를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미래는 설령 시간여행자라고 해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이며, 그리고 자신이 미래를 바꾼다고 해도,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문명이 무너진다면 큰 의미를 갖기란 어려울 것이다.
만석꾼 우가우가는 어떻게 배웠는지는 모르겠지만 글자를 읽으면서 과거의 문명을 개관(synoptic)적으로 살펴볼 뿐이다. 공동체 안에서 쓰이지 않는,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언어가 의미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가 글자를 모르는 다른 사람을 가르치거나 배우지 않는다면 우가우가가 읽는 문자도 의미를 잃어버리고 말 것이다. 21세기를 살아가는 나로서는, 이런 야만적인 문명이 나타나지 않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