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무슨 말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우선 저란 놈은 장편을 안 읽는다, 부터 시작해야겠습니다.
montesur 작가님의 [이계리 판타지아]를 제외하면 장편 연재작을 읽은 것이 전무합니다.
그것은 제가 단편 작가로 시작해서 일 지도 모릅니다. 아무래도 단편과 장편의 호흡은 다르죠. ‘매 회 기다림의 두근거림’ VS ‘굵고 짧게 완결을 해치운 후의 감탄’ 은 누가 더 잘났다고 평가할 수 없을 정도로 묘한 라이벌 관계입니다. (물론 장편 단편 가리지 않고 모든 걸 섭렵하는 굇수분들도 계시죠.)
더군다나 글을 읽는 게 더딘(아니 현실을 말해. 넌 글을 읽는 게 더딘 게 아니라 글을 안 읽어!)……네, 일에 치여 내 글 쓸 시간도 없는데 무슨 연재작을 읽어 하던 제가 뜻하지 않은 우연의 겹침에 근래 벼르던 작품들을 읽어 보게 되었답니다.
바로 단문 응원 이벤트와, 파리 날리는 매장의 절묘한 결합!
썰렁한 매장에서 우두커니 서서, 뭔가 작업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찾는 척 하며, 월급루팡 짓을 했더랍니다. 그렇게 이 작품, [엘 문도]를 읽게 되었습니다.
([묵호의 꽃]과 [엘 문도], 그리고 하나(?) 더 있습니다. 이건 다음 리뷰로! [묵호의 꽃]은 아직 20회까지만 읽었고, 저는 리뷰는 다 읽고 쓴다는 주의라,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묵호의 꽃]도 리뷰 할 생각입니다. 워낙 쟁쟁한 리뷰들이 많아서……쭈그리 모드)
자자, 아무 말 리뷰입니다. 신변잡기 정도는 괜찮죠?
장아미 작가님의 이미지는 뭐랄까, 굉장히 도도한 귀족의 이미지죠. 저는 그렇게 느꼈는데, 사실 작품을 보며 그 작가의 이미지를 저장합니다. 이것은 영업을 하면서 사람을 나누는(사람입니다. 사랑 아닙니다.) 습관에서 기인 됐습니다. 개 진상, 좀 진상, 그냥 사람, 천사님, 구세주 뭐 이런 식인데요. 작가님은 좋아하는 색도 보라색(?)이라 하셨고, 문체를 보면 굉장히 탐미적이고, 그래서 쉽사리 접근을 못 하는 부분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엘 문도] 리뷰를 하냐고요? 공지에 올리신 구절에 확 끌렸거든요.
이 소설을 다 읽은 다음에는 당신은 아마도 저라는 사람에 대해, 하나 이상의 비밀을 알게 됐을 거예요.
궁금해! 궁금하닷! 과연 ‘탐미의 장아미’작가가 그리는 판타스틱 모험이란 무얼까하는 호기심과, 또한 그 문체를 보고 배우고자 하는 열망에 나도 모르게 이끌려 입문을 하게 됐죠. 저는 성향이 리얼리티 호러인지라, 판타지에는 쥐약입니다. 그 1인자의 소설도 안 봅니다!(사실은 출간하고 보려고…요). 결과적으로 이 이벤트와 파리 날림이 겹친 우연의 일치에 따라 평소 보지도 않던 연재작을 몰래 본 첫 걸음은, 신의 한 수가 되어 버렸고, 퇴근하자마자 컴퓨터 앞에 앉아 리뷰를 쓰게 만들어 버립니다.
***여기서부터는 글을 읽고 보시길 권합니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제목 [엘 문도]는 주인공 나래의 아버지가 쓴 사라진 유작 원고의 제목이자, 시공의 통로를 통해 떨어진 마법사와 연금술사가 등장하는 또 다른 세계를 둘 다 가리킵니다. 소설은 유망한 작가였던 아버지를 사고로 잃은 나래와 어머니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어머니의 말에 이르면, 아버지는 천재 작가였습니다. 어머니와 나래 둘 다 꿋꿋이 버티지만, 가슴 한 구석으로는 기억과 슬픔을 겨우겨우 억누르는 실정입니다. 나래는 어렸을 때 모종의 사건으로 초능력을 각성하게 되는데, 이것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철저히 비밀로 감추고 있습니다.
우연히 붉은 머리 연금술사 ‘아리’를 쫓아 또 다른 세계 [엘 문도]로 떨어지게 된 나래는, 한바탕 난장을 겪고 검은 소년 마법사 ‘욜 카다’를 만나 게 됩니다. 결국은 이들 셋의 모험담이 주가 되겠죠. 나래의 초능력은 [엘 문도] 에서도 여전하며, 이는 분명 작중 큰 영향을 줄 것이 자명하게 보입니다.
작가님의 공지 글에 30화 언저리로 완결 된다 하셨으니, 현재 15화인 고로 정확히 반을 따라왔습니다.
위에 언급 한 아리와 욜 카다 는 이미 나래의 아버지가 쓴 소설 속의 등장인물 들입니다. 작품은 현실의 나래와, [엘 문도] 의 나래를 교차하며 미스터리 한 분위기를 만들어 긴장감을 고조 시킵니다. 이미 현실의 나래 또한, 판타지 적인 인물입니다. 왜냐면 그녀는 어마어마한 초능력의 소유자이기 때문이죠. 현실 파트 부분에서도 정말 현실적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나래의 아버지의 존재 자체가, 신비하게 그려집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친구이자, 나래의 엄마가 일하는 [자가 발전소 출판사]의 사장 현철 아저씨 또 한 마찬가지에요. 작 중 나래는 이 모든 것이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 거짓일수도 있다며 의문합니다. 나래의 엄마와 현철 아저씨는 묘한 관계임을 암시하는 장면도 있습니다. 미망인인 엄마가 화장을 하고 치장하는 장면에서 분통 터트리는 나래의 모습도 보여요. 나래는 사춘기이고 아직 10대입니다.
더 파고 들어가 보면 작 중 주요 등장인물들은 모두, 나래의 아버지가 창조한 인물입니다. 아리와 욜 카다는 작품 속 등장인물이며, 나래는 딸입니다. 나래가 초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의미심장합니다. 그 초능력은 절대적입니다. 충분히 갈고 닦으면 천하무적의 능력이죠. 바로, 순간 이동과 염동력입니다. 염동력은 공방이 가히 무적인 기술입니다. 이 능력이 현실에서와 [엘 문도] 모두 발동되는 것을 보면, 나래는 처음부터 [전설 무기]를 손에 들고 나타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고로, 나래의 아버지가 창조한 이 들 중에 가장 강한 인물인 것입니다.
또한 작품 속에서 나래의 아버지의 유작 원고인 [엘 문도]가 존재한다, 라는 것은 명확한 사실로 그려지지 않습니다. 나래의 의문을 풀어줄 수 있다 믿었던 현철 아저씨는, 명확히 부정합니다. 그런 원고는 없다고. 그러나 그가 수집 한 여러 인형들 중 작 중 주요 등장인물인 ‘모나 아리’의 값비싼 구체 관절 피규어가 진열 되어 있다는 사실을 보면, 그를 과연 믿을 수 있나 하는 의문이 생기게 됩니다.
자, 이제야 보여 집니다. 이 작품은, 그냥 예쁘고 따뜻하기만 한 판타지가 아닙니다.
아버지를 잃었지만, 딱히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아버지를 잃었기에 새 출발 해야지 하며 엄마를 보다가도, 막상 그런 모습이 보이면 화가 납니다. 아버지와의 추억이 깃든 장소에 엄마를 데려가지만, 겉으로는 내색 않고 퉁명스럽게 말합니다.
그러나 시공의 통로를 통해 떨어진 [엘 문도]에서는, 엄마만 생각합니다. 자신을 걱정 하기 뻔한 엄마를 걱정합니다. 어떻게든 돌아가려 하죠. 아리와 카다의 모험에도 배제 되지 않기 위해 자신의 초능력을 보여줍니다. (아리의 방의 어질러진 것들을 정리하는데, 저는 이 부분에서 뭔가 다른 의도를 보았답니다!) 아리는 그런 그녀에게 마법사였냐고 묻죠. 그녀는 단지 빨리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10대 소녀의 사춘기, 맞죠? 그렇습니다. 이것은 성장 소설입니다.
현실에서 판타지로 들어가는 대표적인 소설로 앨리스 시리즈가 있습니다. 그 은유와 복선들로 보면 굉장히 유명한 성장소설의 바이블이기도 합니다. [엘 문도]의 나래도, 엘리스와 같이 모험을 겪으면서 성장 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이 모든 것은 나래의 환상일 수도 있습니다. 아버지의 소설 [엘 문도]를 보며, 떠올린 풍경일수도 있겠죠. 자신만의 공상에 빠진 10대 소녀의 이야기는 많은 매체에서 인용되어 왔습니다. 아직 반절 밖에 못 본 입장에서는, 나래가 [엘 문도]에서 더 박진감 넘치는 모험을 겪으면서 아버지에 대한 사실을 알게 되어 가는 게 기대되기는 하지만요. 작품 내내 심어 둔 나래 아버지의 존재는, 전체적으로 관통하는 미스터리이자 의문을 풀 수 있는 핵심 존재입니다.
너무 깊이 빠졌나요? 뭐, 재미없으면 이게 다 무슨 소용입니까? 재미가 있어야 읽죠! ‘탐미의 장아미’의 문체를 훔치려고 1화를 클릭한 저는, 그냥 뿅 가버렸답니다. 도도하고 귀족적인 이미지의 장아미 작가님이 이렇게 살짝 가볍고, 그렇지만 은근 무거운 10대 소녀가 주연인 판타지를 재미지게 연재하리라고는 생각도 못 했거든요.
너무 재밌는 소설 감사합니다. 많은 분들이 읽어 주셨으면 합니다. 제 리뷰가 하나의 구독, 하나의 댓글에 도움이 되길 빕니다. 그 동안 장아미 작가님의 작품에 접근이 힘들었다면, [엘 문도]로 시작하세요. 당당한 나래와, 귀여운 아리와, 얄미운 카다의 매력에 퐁당 빠지실 겁니다.
얼른 써주세요!!!!!!!!!!!!!!!!!!!!!!!!!!!!!
PS. 제가 느낀 게, 작가님은 호러도 잘 쓰실듯요……(으흐흐)
2화 보시면 아실 겁니다. (호러! 호러! 당신도 호러로! 우리 모두 호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