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밝혀둡니다. 저는 로맨스 장르에 대해 한마디 할 수 있는 깜냥이 못됩니다. 저에게 로맨스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섹…?” 뭐, 이런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로맨스’라고 분류되어 있는 이 장편 소설에 대해 리뷰를 적는다는 건 애초에 무리한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적습니다. 그러니까 이 리뷰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세요.
장편을 쓴다는 건, 참 힘든 일입니다. 독자는 0.1초만에 읽고 지나가는 문장일지라도, 작가는 한 문장을 쓰기 위해 시냅스 끝까지 쥐어짜야 하지요. 특히 SF 장르는 참 어렵습니다. 전문지식을 기반으로해서 상상력을 덧붙여야 하는데, 또 그 상상력이 지나치게 설명조가 되면 지루해지기 쉽지요. 단적으로, SF 장르에서 등장인물 중 한 명이 “설명은 그만해!”라는 대사를 내뱉는 순간, 작가도 내심 눈치를 채게 됩니다. ‘이거 슬슬 망조가 들어가는군.’
인공지능과 안드로이드, 가상현실 등등 <소울서킷>에 사용된 소재들은 이제는 일반인들에게도 상당히 친숙합니다. 덕분에 구질구질한 설명 없이도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진행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소울서킷>은 제철과일처럼 시기를 아주 잘 맞춰서 내놓은 작품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단지 시기가 잘 맞다는 것만으로 이 웰메이드를 설명하기는 부족합니다. 작가가 디테일을 아주 잘 활용합니다. 그리하여 잘못하면 설명조의 하드SF가 될 뻔한 걸 완성도 높은 대중소설로 만들어냈습니다.
작품을 다 읽고나면, 가슴이 따뜻해집니다. SF 장르라는 걸 깜빡 잊을 정도이지요. 우연히 하나의 칩이 되어 재탄생해져 버린 발랄한 아줌마의 이야기입니다. 바뀐 미래를 경험하면서 새로운 인생과 몸과 사랑을 찾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삶의 희망을 전달합니다. 로맨스라고 분류되어 있긴 하지만, 남녀 사이의 로맨스가 핵심은 아닙니다.
SF 소설은 마니아들을 위한 소설이라는 편견도 있지만, 잘 쓴 SF는 일반 대중들에게도 충분히 재미를 선사합니다. <소울서킷>은 SF 마니아가 아니라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작품입니다. 요새 알파고니 인공지능 비서니 가상현실이니 하는 이야기들이 하도 유행이니, <소울서킷>은 어쩌면 SF 마니아가 아닌 이들에게 더 잘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진짜배기 마니아들은 더 강한 자극을 원할지도 모르지요.)
아주 잘 쓴 작품이라, 뭔가를 지적하고 싶은 마음은 사실 별로 없습니다. 그냥 다른 분들도 이 작품을 읽고 스냅스 끝까지 따뜻하게 데워지는 이 느낌을 함께 받는다면 좋겠군요.
다만, 이게 돈이 걸린 청탁 리뷰라서 억지로라도 뭔가 쓴소리를 지어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있습니다. 문학의 세계에서는 왜 그런 거 있잖아요? 쓴소리라야 몸에 좋고, 그러니 돈값을 하려면 뭔가 쓴맛이 나야할 것 같고… 씁쓸하네요.
이하는 뭔가 돈값이 될까 싶어 적는 헛소리이므로 스포일러 처리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두 가지 이야기가 있습니다. 밝게 시작해서 비극으로 끝나는 이야기가 있고, 처참하게 시작해서 한줄기 희망으로 끝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소울서킷>을 읽으면서, 마치 <어린 왕자> 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미래라는 새로운 행성에 불시착한 어린 아줌마의 이야기 말입니다. 하나 하나의 에피소드들이 모두 동화처럼 독자를 미소 짓게 만듭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서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큰 흐름 말입니다. <어린 왕자>가 세계적인 명작이 된 것은 물론 한구절 한구절이 빛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그 못지 않게 서사도 작용합니다. <어린 왕자>는 결국 비극이지요. 왕자가 떠나니까요. 막말로 사막에서 애가 뒤진 겁니다. 생텍쥐페리가 마지막에 애새끼를 죽인 겁니다. 잔인하지요.
<소울서킷>의 이야기 아래에는 내내 희망이 흐릅니다. <허클베리 핀의 모험>처럼 이야기의 저변에 내내 페이소스가 흐른다면, 밝게 시작해서 밝게 끝내도 상관없습니다. 만약 <The Road>처럼 처음부터 내내 절망으로 가득찬 이야기라면, 마지막 한 줄은 희망을 적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한 유형. 생의 표면에 드러난 고통과 고독을 보여주지만, 그 아래에 숨은 희망이 흐르는 동화 같은 이야기라면, 그 희망을 완성하는 결말은 비극일 수 있습니다. 뻔한 흐름이지만, 서사라는 건 원래 뻔합니다. 인간이라는 게 조건반사처럼 뻔한 흐름에 반응하거든요.
사랑하는 작중 인물에게 가혹한 짓을 못하는 작가들이 간혹 있습니다. 내내 애정을 담아 보살펴 오던 인물에게 가혹하게 굴고 싶지 않은 게 사람 마음이기도 하지요. 생텍쥐페리도 어린 왕자를 죽이고 싶지는 않았을 겁니다. 어쩔 수 없는 것뿐이죠. 영화 <대부>의 명대사가 생각나는군요.
“개인적인 감정은 없어. 비지니스일 뿐이지.(It’s not personal, it’s just business.)”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해야할까요? 혹시라도 작가님께서 결말의 방향을 잡을 때, 조금이라도 인정에 끌렸을까봐… 그냥 노파심에 이런 말씀을 드립니다.
아주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