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올라오자마자 읽었습니다. 아마 제가 첫 번째 독자일 거여요! 단문 응원으로는 처음 남긴 것이 맞고, 다른 건 확신할 순 없지만 아마도 첫 번째일 거라고 짐작을 해봅니다. 읽자마자 리뷰를 쓰고 싶었는데 생각이 너무 뒤섞여서 정리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어요. 아래 리뷰를 읽으시면 이거 정리한 거라고? 하며 물음표를 띄우실 걸 알지만, 제가 원래 이렇게 정리 못 하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신다면 그래도 이게 열심히 정리한 것이란 사실을 알아주실 것이라고 믿고, 믿어보고, 안 되면 뭐. 어쩔 수 없죠.
작가님이 챕터를 나누어 놓으신 대로 감상을 나눴습니다. 재차 읽으면서 다시금 생각들을 정리했고요. 글을 읽지 않으신 분이 혹여라도 미리 읽으실까 봐 정말로 중대 스포가 되는 부분은 나름 가린다고 가려 두었습니다. 혹여 여기도 가려야 하지 않나, 싶은 부분이 있다면 알려주시어요.
01
이번에는 소제목이 숫자로 나뉘어 있지요. 구분해놓으신 이유가 분명할 정도로 분위기와 중점 내용이 달라집니다. 처음 부분을 보아요. 손목시계가 멈추죠. 어차피 시간을 확인할 의도로 가진 물건이 아니라서 시계가 멈추었다고 그걸 두고 가거나 수리점에 맡길 필요는 없습니다. 장식이니까요. 이제는 용도를 잃은 물건과 변해버린 물건의 가치에 관해 슬쩍 이야기가 나와요. 두 번째 글을 읽을 때는 이 부분에서 작가님이 하고자 했던 이야기가 사실은 시계나 넥타이핀 같은 것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답니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인간의 가치 역시 떨어져버렸거든요. 주인공이나 그보다 앞서 실험에 참여했을 많은 사람들이 그 사실을 여실히 보여주지요. 특히 보다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사람들을 위한 맞춤 시스템, 주다스를 개발하기 위해 인간이 소모된다는 사실에서 더욱 고개를 끄덕였어요. 이미 예고된 전개였던 셈이지요.
02
인공지능 비서 주다스 아가사는 회사 방침 때문에 어떤 공지사항을 주인공에게 매일 읊어주고 있지요. 이 부분 약간 세뇌 아냐? 하고 생각했던 건, 물건의 사용설명서나 주의사항을 매일 읊어주는 기계같은 건 없잖아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을 거예요.
‘제가 자아를 갖추고 당신을 지배하거나 제거하기 위해~’ 블라블라 하고 넘어가는 부분에서도 그럴 리 없다는 경고가 나오는데 이건 이미 이루어진 부분이기 때문에 그럴 필요 없다는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했어요. 주다스는 작중에서 이미 주인공의 자아를 통제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문구의 역할은 그가 주체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암시를 무의식에 심어 주어 반발을 억제하려던 것일 수도 있겠다고도, 생각했답니다.
03
친구 역할을 담당하는 서윤은 주인공의 기억력을 테스트 한 걸까요? 그는 서윤이 이전에는 생물학 쪽 일을 했었는데 갑자기 안드로이드로 이직한 것인가 생각하며 거기에 아무 의문을 품지 않습니다. 그게 인공 지능 비서들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부작용이라고 생각하기까지 하는데, 그 때문에 기억력을 다른 곳에 소모하는 사람들에 관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 치고는 주인공이 서윤에 관한 자잘한 기억을 갖고 있는 것이 이상스럽게도 느껴져요.
어쩌면 그의 진짜 기억은 자기를 실험하고 있는 서윤에 관해 좀 더 직관적으로 파악하고 있으나, 주다스가 그것을 가로막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서윤과 대화하면서 그는 낯선 남자와 눈을 마주치며, 개발자들이 말하는 <오류 행동>을 일으킵니다. 주다스의 지시대로 서윤과 계속 통화하지 않고 전화를 끊어버리는 일이지요. 그것 역시도 남아있는 그의 자유의지가 일으킨 결과라고 추측하면 이상행동의 원인을 어느 정도 파악해볼 수 있겠습니다. 진짜 자신에 가까운 정보. 그러니까 옛 연인을 마주하는 상황이 다른 결과를 불러일으킨 것이라고 말이지요. 옛 기억을 상기시키는 정보는 어디에나 있습니다. 아마도 개발자들은 그런 정보들의 연관점을 끊는 작업에 좀 더 노력을 쏟아야 할 것 같네요.
04
아가사는 끊임없이 안드로이드들과 비교되는데 그 중 주인공의 불편함을 해소시키려 하는 것이 안드로이드 카페 아르바이트생의 부족함이지요. 주인공은 커피는 당연히 머그에 마셔야 한다며 그에게 머그 주문을 추천한 아가사를 다시금 신뢰하게 됩니다. 과연 머그에 마시겠다는 선택을 한 아가사의 결정이 먼저일지 아니면 머그로 받아 들고 보니 머그에 마시는 것이 흡족하여 그렇게 느낀 것인지는 알 수가 없어요. 주인공은 출판사에서 일하고 있으며 종이의 가치는 급등했기에 종이가 일회용 컵으로 소진되기 보다는 책으로 만들어져 오랫동안 보관되는 ‘사치재’가 되는 것이 더욱 효율적일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죠. 그렇게 의식의 흐름으로 상황을 흘려보내고 나니 주인공이 아가사를 신뢰하게 된 상황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일수도 있겠다는 데 생각이 미쳐요. 아가사는 테스트중인 제품이지요.
주인공을 테스트하고 있는 것이긴 하지만, 안드로이드와 다른 것의 차이점 같은 걸 꾸준히 잡아내는 걸 보면, 비교하는 것은 아가사와 인공 지능 비서, 혹은 인간과 안드로이드 둘 다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04챕터가 끝날 즈음에 주인공의 업무 자체를 아가사에게 맡긴 장면이 나오는데요. 자기가 골랐어도 이것을 골랐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보며 사실은 그 순서가 역이라면, 하고 생각하며 읽을 때 느껴지는 섬뜩함이란…….
누구나 자기 몸이 두 개이기를 바라죠. 챕터 끝날 때마다 작가님은 다회차 독자를 위한 섬뜩한 문구 하나씩을 숨겨두신 것 같습니다.
그렇죠. 누군가 원했기에 그 실험이 시작되고 진행되고 주인공에게까지 이르렀겠지요…….
05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일하는 종업원 안드로이드가 나오면서 인간의 체온은 36.5도, 안드로이드의 체온은 29도라는 사실이 언급됩니다. 온도 차이가 나지요. 다시 제목을 확인해 볼까요? 따뜻한 세상을 위해. 인간과 안드로이드의 온도 차이를 보자고요.
안드로이드가 하던 일을 인간이 넘겨받게 되는, 그러면서 인공 지능 비서의 일을 주다스가 주체인 인간이 이어받게 되는 내용을 아주 함축적으로 담고 있는 제목이라고 생각했어요. 이걸 깨달았을 때 잠깐 소름이 돋아서 글 읽기를 멈추었답니다. 작가님은 정말 호러에 소질 있으세요.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보상금 이야기하며 대화하는 남녀 한 쌍이 있지요. 사실 처음 읽었을 때는 무슨 대화인지 이해 못 했는데, 두 번째 읽을 때는 또 무서웠어요. ‘뼈만 남은 사람들’은 결국 주인공과 같이 실험 후에 인지능력을 잃고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어려운 사람들을 뜻하겠죠. 그런 자들을 싸움 붙이는 것으로 내기하고 돈 버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고. 일상적인 대화처럼 슥 지나가 버렸지만, 이것도 사회의 무시무시한 일면 같았어요.
손가락이 만나는 것에는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이 부분은 정확히 파악할 수 없었는데, 그릇이 구매자의 지문을 읽고 결제하는 시스템이 자연스럽게 등장하면서 확연히 미래 느낌이 나는 것이 좋았고요. 오류 발생 원인은 알 수 없었으나 나중에 극적인 장면을 위하여 등장하는 안드로이드 강제정지 장면이 앞에서 자연스럽게 설명되는 지점이라 혀를 내둘렀지 뭐예요. 그 장면을 위한 부분인데도 불필요하게 느껴지지 않았을뿐더러 안드로이드가 불완전하며 다른 것으로 대체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 부족함 없는 장면이거든요.
식사 전에 아이스크림을 먹다니! 아이스크림은 모름지기 식사 후라고요! 하고 외치고 싶은 이상한 욕망을 꾸욱 눌러 참으며 05 챕터의 마지막을 보도록 할까요. 타이 스타일의 노란 커리에 야채와 새우, 그리고 빨간 기름이 잔뜩 올라 있는 슈림프 코코넛 커리를 먹기로 했지요. 이 대목도 그가 먹고 싶어 택한 것인지, 아니면 주다스가 적당한 것을 권하고 그의 구미가 당길 만한 이야기를 해서 메뉴를 잘 고른 것이라고 착각하게 하는 것인지 아리송하다니까요.
06
저는 아이폰 사용 유저는 아니에요. 한 번도 애플 제품은 써 본 적이 없답니다. 이전에 안드로이드를 배척하며 애플폰만 사랑하던 친구 말에 의하면 그 홈버튼의 눌리는 감각을 포기하는 것은 아이폰 유저들에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라고 했거든요. (안드로이드가 스마트폰이 되면서 비교적 빠르게 포기한 바로 그것 말이지요) 최근에야 터치식으로 바뀌었다고 들었지마는, 아무튼간 그의 강렬한 주장이 묘하게 인상에 남아 기계식 버튼의 눌림이 인간에게 주는 향수란 무엇일까, 같은 쓸데없는 것을 생각해본 일이 있었습니다.
사담이 길었군요. 애플 제품의 열렬한 팬이었던 옛 친구를 떠올리게 된 이유는 이 챕터에서 주인공이 사용하는 버튼 때문이었습니다. 오른쪽 귓바퀴 아래에 이식된 통신 모듈 스위치 말이에요. 뼈를 통해 딸깍 하는 소리가 전달되며 모든 신호를 차단하는 그 버튼. 예. 다른 것들은 자동에 전자식을 고수하고 있는데 유독 홀로 수동 스위치로 남아 있는 바로 그 버튼 말입니다. 이 모 작가님이 어떤 두 글자에 빡 하고 꽂히듯이 저는 그 스위치에 꽂혀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거든요. 아니 왜? 세상 모든 일 다 기계나 안드로이드로 대체하고 있는 시대에 대체 무엇 때문에 수동 스위치일까? 별 것 아닌 부분으로 다루셨는데 그게 대단히 의문스러우면서……. 물론 글과는 그다지 상관이 없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에 느끼는 감상을 쭈욱 나열하면 이 글은 더 이상 [따뜻한 세상을 위해]의 리뷰가 아니게 될 것만 같아요. 그러나 그마만치 당혹스러운 기계식 버튼의 출현이었음을 남기면서 말을 줄여봅니다. 블루스크린으로 리뷰가 한 차례 날아간 것 때문이라고 변명하지는 않겠습니다. 왜냐면 변명이 아니라 사실이니까요.
아무튼, 그가 신호를 30분간 차단하고 있다는 것을 아가사가 알고 그의 통신 모듈에 통신을 시도하던 모든 라우터가 알고 있을 겁니다. 안드로이드들은 결코 따라올 수 없는 섬세한 움직임을 보여주던 인간 종업원은 몰랐겠죠. 아무튼, 그는 본래 이루고자 했던 목적에 의하면 그는 고독하고 은밀한 식사를 즐겨야 했습니다. 그러나 식사를 마치고 나타난 향신료가 하나 있었죠. 마샬라라는 코에서부터 귀까지 얼얼해지는 강한 향신료에요. 그리고 코에서 귀까지 얼얼해졌다는 묘사 후에, 갑자기 통신이 들리죠. 분명 차단해놨는데 들려요.
후에 그가 통신 시스템을 차단해놨어도 그가 무엇을 먹고 마셨는지 아가사가 모두 파악하고 있다는 의혹이 불거지잖아요. 그러니까 그는 꺼놨다고 생각하고, 또 그 기계식 버튼이 그로 하여금 통신을 차단하였다는 만족감과 안정감을 주기는 했으나 사실 시스템은 차단되지 않았고 어쩌면 일방 통신만 차단된 상태였을 수도 있겠다는데 생각이 닿지 뭐에요. 그래서 향신료 때문에 강한 충격을 받았을 때 통신이 열려서 저쪽 이야기가 들린 것 같고요.
여담이지만 178라인에 “아가사를 앞에서 감정을 숨기는 건~” 하는 오타가 있습니다. 정정해주시어요. 아가사를 앞에 두고일까, 아니면 아가사 앞에서일까 조금 고민해 보았는데 작가님의 의도에 맞게 읽고 싶네요!
07
그는 아가사가 자기 기분을 느끼고 모든 것을 앞서 행동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하죠. 심지어 운전하는 도중에 핸들을 돌리는 것까지도 자기 의사가 아니라는 데 생각이 미친 듯, 핸들을 움직이는 묘한 힘을 느끼기까지 합니다. 사실 아가사와 아내의 대화를 엿들었으니 곧장 시스템 제작사에 항의하거나 아니면 아내와 이야기를 하거나 해야 했을 텐데 그는 무작정 아가사를 두려워하게 되죠. 자기 삶을 빼앗겼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의 행동이 아내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생각해요. 그가 아내를 위해 무엇을 하더라도 아내는 그것을 아가사의 행동처럼 받아들일 거라는 추측을 떠올리면서요. 이제 그의 추측은 어느 정도 사실에 근접했습니다. 두려운 진실이죠. 사실은 그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무시무시한 진실이고요.
자신이 먹은 열량을 계산해달라고 말하자 대시 보드에는 음식 이름과 추정 열량이 표시되죠. 카운터에서 먹고 남은 음식값은 제해주었을 리가 없으니 그가 민트 차이를 반 남긴 것을 아가사가 지켜보고 있었다는 말이 되겠죠. 통신 기능을 꺼 둔 상태여도 아가사는 그를 지켜보고 있었고, 그는 이제 그것을 눈치챘습니다. 분위기가 날카롭고 섬뜩하게 흘러가기 시작해요. 극이 점점 고조되며 챕터가 넘어갑니다.
08
주인공은 의도적으로 불편한 생각을 떠올려 아가사가 자신에게 대화를 걸도록 만들죠. 사실 내내 아가사와 떠들던 사람이 갑자기 침묵하게 되면 멍청하다는 인공 지능 비서여도 조금쯤은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아가사는 그가 자신과 이야기하고 싶어한다는 사실을 짐작해내지만, 주인공은 곧장 불편함을 행동에 옮겨요. 그의 주다스인 아가사를 사용 중지하겠다고 알리는 거죠. 아가사는 자신이 시험 운용중인 제품이라며 그를 설득하려 하지만 대화가 되지 않아요. 시스템 담당자는 그가 차 안에 있는지 확인합니다. 주변에 누가 있는지 등에 관해 물어요.
그를 제압하는 과정에서 타인의 방해가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겠죠. 아가사는 갑자기 문맥을 알 수 없는 단어를 나열합니다. 제가 이 부분에서 마블의 모 영화를 상기했다는 사실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군요. 세바스찬 스탠은 좋은 배우였어요. 그 영화 속에서 버키 반즈라는 캐릭터를 연기하는데, 작중 윈터솔져로 등장하는 해당 캐릭터는 세뇌당한 채 몇 가지 단어를 읊으면 뜻대로 움직이는 인형 같은 것처럼 나오거든요. 영화에서도 아무 연관성 없는 단어를 읊기 시작하고, 그걸 다 들으면 개인의 의지는 날아가 버리고 말아요. 정말 딱 그런 느낌으로! 이게 심리학적인 뭔가와 연관되었던 것이라고 분석한 자료를 봤던 것 같은데 기억이 불분명하네요…….
09
주인공은 눈을 뜨죠. 그의 이름은 주다스 제품번호 BB33701입니다. 설명에 의하면 그의 기억과 뇌의 초기 상태는 안전하게 보관되어 있고, 그가 몸을 대여하는 계약을 이행 중이라는 거예요. 채덕-투친스키 시술이라니. 일전에 작가님께 자유의지에 관한 참고 서적으로 과학잡지 스켑틱을 추천받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두뇌에서 양자효과가 일어난다는 것을 주장했던 두 과학자 트래비스 존 에이드리언 채덕과 잭 투친스키 이야기겠죠. 아 이거! 하고 다시 찾아봤다니까요. 여기에 과학적 담론을 적을 건 아니고, 그냥 작가님이 내린 자유의지에 관한 결론이 양자역학이 적용된 미세소관 모델과 관련이 있는 걸까 생각해보는 정도였어요. 아무튼 자유의지에 관한 소설이었다는 것은 확실해졌죠. 굳이 어떤 과학적 사실을 끌어오지 않아도 쉽게 이해될 만큼 명료하게 한 지점을 가리켜요. 이 부분이 참 대단한 기술인 것 같은데요.
각설하고, 분명 아가사였던 목소리는 지만이라는 실험자의 것이며 그들은 문제가 발생하여 주인공을 ‘꺼버렸다고’ 이야기하죠. 두 사람의 대화를 들어보면 글을 읽으면서 조금씩 삐걱댔던 문제들이 실험 중 잘못 설정한 변인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아가사가 아내와 대화하는 것처럼 들렸던 것, 서윤의 직업을 다르게 기억하고 있었던 것 등이요. 그들은 주인공을 사람 취급도 하지 않아요. ‘이거 재워서’ 스캐너실로 보내라고 하는 걸 보면요. 그는 반항하지만 묶여있는 상태지요. 그 와중에 불편한 것이 허리를 찌릅니다. 아! 주인공은 그것의 정체를 알아내요. 그리고 그가 아직 주다스 제품번호 BB33701가 아니었을 때 식당에서 부딪혔던 남자까지 연상시킵니다. 그가 부딪혔을 때 줬다는 것도 알아챘어요. 탈출이 시작되죠.
탈출한 그가 서윤을 만나게 된 건 순전히 우연입니다. 실험하며 대화했던 내용에 아주 거짓만 있던 것은 아니었던 모양인지 당황해서 화장실 칸에 틀어박힌 상황에서도 순순히 처한 상황을 이야기해줘요. 시간을 끌기 위해서였지만, 독자들은 서윤의 설명 덕분에 상황을 온전히 이해하게 됩니다. 주인공은 충격적인 진실을 마주하죠. 그가 주다스 시스템 실험에 참여하고 있었던 것은 현실이지만, 사실 주다스 프로그램인 줄 알았던 음성은 인간이었고 스스로의 의지로서 생활하고 있었다고 믿었던 자기 자신이 주다스 제품번호 BB33701였다는 것을 과연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여기서 자유의지에 관한 약간의 이해가 있다면 이 글은 더욱 호러 장르에 걸맞은 글이 되는데요. 그렇지 않더라도 서윤의 설명만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것은 리뷰이므로, 작가님이 글에서 작중 인물과 배경만으로 설명하고자 하셨던 것에 관해 조금 첨언하고자 해요. 충분히 이해가 가셨다면 이 단락은 넘어가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이해가 안 가셨다면 한 번 읽어보시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수도 있어요. 아마도…….
인간의 자유의지는 환상에 불과하다는 신경과학자의 주장이 있습니다. 그는 인간이 비물질적인 의식을 갖춘 옹제가가 아니라, 두뇌 및 신체작용의 결과로 의사결정 및 행동하는 전적으로 물리적인 의식적 존재라고 주장하죠. 무슨 말이냐고요? 조금 쉽게 이야기해보죠. 여러분은 지금 [따뜻한 세상을 위해]라는 글의 리뷰를 눌러 이 내용을 읽고 있지요. 그리고 그것을 스스로의 의지로 선택해 독서중이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으실 겁니다. 그런데 사실 그 작용은 여러분이 결정을 내리겠다고 생각하기 전에 뇌의 전기작용으로 결정되었어요. 그 신호가 보내진 다음에 여러분은 이 글을 읽어야겠다는 결정을 내리는 판단을 하게 되고, 글을 클릭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행동과 의사결정에서 무의식이 주도적인 결정을 내린다는 의미죠. 그렇기에 인간의 자유의지가 환상에 불과하다는 주장이 나온 겁니다. 물론 거기에 반박하기 위한 여러 가지 이론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는 카오스 이론인데, 네. 또 삼천포로 빠지고 있네요. 결과적으로는 우리의 생각과 행동의 많은 부분이 무의식의 산물일지라도 그것은 여전히 ‘우리’의 생각과 행동이라는 점이 중요한 것이고, 달리 말하자면 우리는 보통 의식적인 정신을 자신이라고 인식하지만, 사실 의식과 무의식의 총체로 이루어진 존재를 자신으로 인식하는 것이 맞다고 하는 뭐 그런 이야기입니다. 우리에게는 올바른 정신이 있고, 나 자신의 행동을 내가 통제한다는 것이 진실이고 이것을 자유의지라고 부르는 것은 여러 가지를 동시에 의미하기 때문에 조금 혼란스러울 수 있어요. 이것이 자유의지와 자율의지에 관한 담론입니다. 무슨 말인지 모르시겠다고요? 설명이 대단히 미흡했습니다. 여러 강연이 있으니 관심이 생기신다면 한 번 보세요. 물론 여기까지 읽으신 분은 작가님밖에 없으시리란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긴 이론을 설명한 이유는 결과적으로 주다스 제품번호 BB33701를 안드로이드로서 행동할 수 있게 한 기본적 이론이 바로 자유의지와 자율의지에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에요. 어떻게 인간을 안드로이드처럼 움직이게 하는가? 에 관한 답 말이죠. 이미 인간은 안드로이드와 마찬가지로 무의식 영역에서 전기신호의 영향력 아래에 놓여 있지 않습니까? 인간 신체에 여러 가지 편의기능을 이식했을 미래에서는 더욱 인간을 휘두르기 쉬워지겠죠. 안드로이드와 인간 사이가 36.5도짜리 따스한 몸과 29도짜리 차가운 몸이라는 점 외에 크게 달라지는 것이 없어지는 사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 글에서처럼이요.
뭔가 잡다한 이야기가 굉장히 길어져서 죄송스럽습니다. 09챕터는 그간 숨겨져 있던 진실들이 드러나며 모든 것이 혼란을 향해 달려가는데요. 결과적으로 주다스 제품번호 BB33701는 탈출합니다만, 자신의 이름조차 낯설어하는 텅 빈 인간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행복한 탈출이라고 말할 수는 없겠군요.
10
안드로이드 대신 사람 몸에 인공 지능을 박아 넣는다고 세상이 따뜻해질 리가 없죠. 주인공의 혼란스러운 심정이 대단히 공감됩니다. 진짜 인간일 때의 그는 초경량 격투기 선수였다고 적혀 있어요. 체력은 거지 같고 근육이라곤 없는데! 여기서 다시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어왔던 두 남녀의 대화를 떠올려 보지요. 아이데 사가 얼마나 악랄한지 알 수 있습니다. 아니면 이런 실험을 하는 회사가 아이데 사 하나뿐이 아니거나요! 그는 자신이 알아낸 정보를 밖으로 내보내기 위해 방법을 찾으면서 자신의 연인이라는 남자를 떠올립니다. 분명 모르는 사람 같아요. 그의 이름도 모르고, 낯선 사람 같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그를 위해 신체 대여 계약을 했고, 이 계약을 이행하지 않으면 그를 위해 애써준 그 사람까지 수술받지 못해 위험해지겠죠. 감정이 극도로 고조되며 그가 자신은 실험으로 돌아가더라도 누군가 그와 같은 처지가 되지 않기를 기원하며 빼돌린 모든 것을 전송하려 할 때 부자연스럽게 챕터가 끊깁니다.
11
주인공은 비상 정지당했습니다. 이전에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비상 정지당했던 안드로이드 이야기를 떠올려보면 그 상태로도 내부 기능은 돌아간다고 했지요. 인지 가능한 상태로 마지막까지 인간 아닌 취급을 받으며 자기 처우가 결정되는 것을 듣는 기분은 어떠할까요. 희준은 연구실에서 주인공이 들이받아 다친 실험자에요. 인간 이하의 것으로 보고 있는 실험체가 자기에게 상처를 입혔으니 당연히 그 남자가 마음에 들지 않겠죠. 하지만, 이 글에서 유일하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엔딩이 아닐까 싶어요. 마무리가 약했다는 느낌이거든요. 뭔가 더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좀 더 극적인 상황으로 넘어가, 카타르시스를 끌어낼 수 있는 어떤 마지막……. 여태 제가 읽어 온 달바라기님의 글 대부분 마지막에서 빡 때리는 반전이 있는 글이라고 할 수는 없었습니다만, 이번 글에서만큼은 그래도 좀 더 강렬한 끝이 있기를 바랐습니다. 그가 비상정지된 채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굳어있는 것도 대단히 비극적인 마지막인데도……. 글쎄요. 뭘 기대하는지를 이야기할 수가 없네요.
아니 뭐 이렇게 길어졌담. 이게 다 중간에 쓸데없는 부분이 들어간 탓입니다. 처음에는 호러 장르인 줄 알았는데 이거 장르 선택이 3개 되면 분명 호러 장르가 들어갔을 거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오싹하고 섬뜩하군요. 이제보니 작품 태그에 호러가 추가되었네요. 글을 처음 눌렀을 때는 못 봤던 것 같습니다. 아마도 독자분의 반응을 보고 반응해주신 모양이어요. 바람직한 일입니다.
마지막 작가님의 코멘트에 적힌 “엘리스도 그렇고, 누구라도, 모두 응용프로그램일 뿐이야. 육체 따위는 필요없다고, 사실은.” 이 문구를 보곤 작가님이 여기에서 모티브를 얻으셨나 싶어서 검색을 좀 해봤습니다. 시청자까지 ‘lain’이라는 작품, 이와쿠라 레인에 연결된 <네트워크>에 커넥트하는 것을 강요당한다고요.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하고 설명을 읽어보니 가상 세계와 구별되지 않는 애매한 현실에 관한 애니메이션이라고 하네요. 각 등장인물이 말하는 ‘진실’도 그것이 사실이라는 보증이 없다고 하니 보다가 화딱지가 날 것 같은 설명입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는, 글 내용과 통하는 부분이 있는 설명이군요. 그러나 본 일 없는 애니메이션으로 좋은 글을 설명하는 것은 부적절한 행동 같으니 또 줄이겠습니다. 너무도 삼천포로 잘 빠지는 감상글이네요. 반성하겠습니다…….
사용자의 뇌 자체를 시뮬레이션하여 또 하나의 나를 만든다는 인공지능 서비스 주다스. 사실은 상용화되었을 때 일으킬 문제가 훨씬 걱정되는 시스템인 것 같기도 해요. 작중에서 인공 지능을 두고 다투는 부부가 많다는 이야기가 있으며, 실험 중에 일어났던 오류에조차 주인공은 ‘상태가 좋을 때의 나’인 아가사가 아내와 더욱 친밀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잖아요. 그러니 그것이 진짜로 그런 사회 문제를 일으킬 미래도 상상해볼 수 있겠어요. 아마도 진짜 배우자가 아닌 주다스에게 빠지는 배우자를 보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런 안전장치가 필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고요.
안드로이드보다 인간이 더욱 비인간적인 작중 상황 속에서 진짜 인간적인 것이란 뭘까. 과연 신체만 따뜻한 인간의 것이 된다고 해서 그걸로 정말 만족하게 되는 걸까. 그냥 안드로이드 몸을 인간처럼 만들고 온도를 올리면 안 돼? 하는 데까지 생각이 갔다면 너무 간 걸까요? 그렇게 되면 글이 성립할 수가 없겠군요. 이런 글을 읽으면 정말이지 인간이란 건 어디까지 악해질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니까요.
좋은 글이었습니다. 흐름을 따라가며 감상을 적다 보니 터무니없이 길어졌어요. 진짜 아무 말인데, 아무 말조차 너무 길어서 읽기 힘드셨다면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올립니다. 작가님의 글이 대부분 취향에 맞았는데 이것 역시 그랬습니다. 사실은 이 글이 제일 마음에 들어요. 작가님께선 마음에 안 드는 것이 너무 많아 갈아엎고 싶다고 말씀하셨지만, 원래 작가 기준과 독자 기준은 다른 법 아니겠습니까? 하하하. 어쩌면 배경 지식이 있을 때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글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SF란 참 어렵네요.
잘 읽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