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몰래 여고 시화전을 보러갔다가 샘한테 들켜서 들었던 말이 여즉 미술작품을 대할때면
떠올리게 됩니다.. “니는 내가 봤을때 예술적 재능이라꼬는 눈 씻고 봐도 없어보이는데 우째, 내가
모르는 새 니가 미술에 조예가 좀 생긴나? 가서 보이까 뭐 좀 알게뜨나, 미술작품을 보이까 뭔가
막 몸이 달아 오르면서 정신적 충격이 오고 하더나, 아이모 무작정 여고생 집적거릴라꼬 갔나?라고
하시면서 엎드리!라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궁디팡팡을 많이 맞았습니다.. 뭐 나쁘지 않은 농담처럼
흘려버릴 이야기지만 그때 샘의 말씀이 한참 후에 스탕달 신드롬이라는 단어를 알게 되면서 미술작
품을 가뭄에 콩 나듯이 대할때면 언제나 이 단어를 떠올리며 뭔가 나에게 와닿는 작품이 있을까라는
기대감을 가지게 되더군요, 그러나 아직까지 그 어떤 전시회에서 작품을 보더라도 딱히 흥분이 이는
그런 작품을 접해보질 못했습니다.. 아니, 가질 않으니 볼 확률도 거의 전무하다고 봐야하나요,
그런 의미에서 제가 사는 동네에서는 지하철같은 대중교통수단의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곳도 없으니
일반적인 대중적 전시를 쉽게 접할 공간이 거의 전무한 것이기도 하지요, 한번씩 아이들 미술관 견학
시에나 함께 경험해보는 것을 제외하곤 미술작품과의 인연은 그렇게 와닿질 않는다고 봐야겠지요,
하지만 이런 것은 있습디다.. 화면으로나 미디어로 접하는 미술작품과는 다른 캔버스에서 직접 대면하는
작품의 느낌은 천지차이라는 것이지요, 딱히 스탕달 신드롬에 가까울 정도로 숨이 가빠오거나 정신이
혼미해지고 기절까지 하진 않지만 한참을 그 작품만 바라보고 멍하니 있는 경우는 모든 이들에게 적용
되는 것일겝니다..그럴때에는 전시회에서 마주하는 작품에게서 느껴지는 작가의 의도를 무의식중에 아하,
이러한 마음과 이러한 생각으로 작품을 만들어내셨나보다라는 나만의 감성을 이끌어내기도 한다는 뭐 그런
이야기입죠, 음악도 마찬가지지만 직접적으로 인간의 내면속에 잠자고 있는 감성의 감정 파노라마를 이끌어
내는 것으로는 미술작품만한 것도 드물죠, 바라보기만해도 순간적으로 퍽하고 뇌리와 감성을 무너뜨리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이야기겠지요, 그런걸 아마도 약한 정도의 스탕달 신드롬의 일종이라고 하는 것일꺼구요,
그런데 이런 스탕달 신드롬에 가까운 감정이입이 되는 미술작품이 대단히 비현실적인 공포감을 던져준다면,
한 남자가 불이 타오르는 집에서 화염에 휩싸인 체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는 온몸이 녹아내리는 와중에도
춥다는 말을 반복하면서 죽어가죠, 그리고 새로운 일상이 시작되는 출근길의 남자가 등장합니다.. 석윤이라
는 이름의 남자는 변함없는 일상과 출근길에서 우연히 지하철 환승구간의 통로에 전시된 미술작품을 조금은
여유롭게 바라봅니다.. 오늘따라 고개를 들고 주변을 둘러볼 시간적 여유가 조금 더 생겼기 때문이지요,
그는 많은 작품들중에서 대형 캔버스에 밤하늘처럼 새카만 배경에 가득찬 큰 보름달이 그려진 작품을 바라
봅니다.. 말 그대로 꾸밈도 기교도 없이 작품에서 느껴지는 느낌은 차갑고 싸늘함이 전부인 이 작품에서 석
윤은 뭔가 자신의 내부에서 내려앉는 듯한 느낌을 받고 조금씩 그림으로 다가서고 숨이 막히는 증상과 함께
온 몸에 냉기가 그를 휘감는 듯 합니다.. 몸의 전 근육이 수축하고 소름이 돋고 쓰러질 듯 자신의 뇌속으로
얼음송곳이 박히는 느낌에서 누군가 그를 치는 바람에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버립니다.. 그리고 다시금 현실
의 이성을 되찾게 되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고 느낌이지만 그런 감성을 뒤로 한 체 애써 출근길
을 서두르게 됩니다.. 그리고 출근 후 그에게 벌어지는 당혹스러운 온몸의 반응은,,,
휴우, 대단한 묘사를 선보이는 작품입니다.. 시작부터 보여지는 이미지의 묘사나 상황의 표현력은 대단히
감성적이면서도 감정적인 의도를 짙게 드러냅니다.. 원래 아무렇게나 쓰여지는 문장이 그러하다면 문장에
대한 능력이 탁월하신 분이실테고 그게 아님 한 문장을 쓰실때조차 최소한의 고민과 문장에 대한 상황과
감성에 대한 노력을 기울이시는 분이시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한국판 스티븐 킹쌤같은 느낌을 받았습
니다.. 초반 불타는 이미지를 그려내시는 묘사력이 아주 뛰어나서 개인적으로는 상당한 매력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상황에 대한 구성 역시 상당히 흐름이나 연결방법론이 좋았습니다.. 챕터1의 묘사로 인
지된 상황이 챕터2의 현실속에서 드러나는 이야기의 서사에 집중하게 만들어주어서 독자로서 집중할 수 있
는 즐거움이 있었구요, 무엇보다 상황이 주는 독특한 비현실성의 의도가 즐거웠습니다.. 그게 퐌타지스럽든
비현실적인 감성적 폭발이든 상관없습니다.. 그냥 느낌적인 느낌으로다가 그럴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하
게 되는 뭐 그런 문학적 감성같은 의도를 가지게 되더라구요,
여기서부터는 스포일러가 약간 있을 수 있으니 안읽으신 분들에서는 책부터 읽고 오시길
그런데, 마지막 챕터3에서 앞의 이야기에 대한 마무리적 측면으로 드러나는 진실은 개인적으로는 조금 아쉬
웠습니다.. 아니 일반적으로는 충분히 타당한 결말적 흐름이고 많은 독자분들께서도 수긍하고 이해 가능한
결말적 마무리겠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앞서 벌어진 상황이 주는 감성적 느낌이 약간은 사그러들어버리는 안
타까운 느낌이 들더라구요, 하나의 비현실적인 그림에서 비롯된 상황의 답을 찾아주는 방법론이긴 하지만 굳
이 독자들을 위해서 상황적 개연성을 만들어주는 꼼꼼한 논리적 구성을 해주실 배려까지는 하시 않으셨어도
무방하지 않을까 하는게 제 느낌이었습니다.. 물론 이 마무리조차 작가의 의도와 느낌이 제대로 묻어나고 살
아나는 좋은 감성임은 말 할 것도 없습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챕터2에서 벌어지는 상황적 긴장감과 끈
끈한 공포적 심리를 보다 구체적이고 면밀하게 그려내시는 묘사를 더 해주셨더라면 더 멋진 장르적 감성이
작품 전반에 매력적으로 묻어나지 않았을까하는 뭐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챕터4의 마지막 반전은 또 이와는 다르게 상당히 좋았습니다.. 뭐랄까요, 앞서 그려낸 작가님의 구체적 묘사
에 대한 상황적 반전이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듯 해서 이 소설의 장르성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황당함이 잘
표현된 마무리라는 생각을 하게 되더군요, 역시나 또 드는 생각은 한국판 스티븐 킹의 느낌을 지울 수 없었
습니다.. 오해는 마세요, 여러 면에서 제가 읽어봤던 킹쌤의 작품들에서 느꼈던 좋았던 장르적 감성과 문장
의 표현력이 이 작품에서도 느껴졌다는 말씀을 드릴려는 것이니, 그만큼 좋았다구요..
즐겁고 재미진 작품 잘 읽었습니다.. 현실적이지 않은 작품적 특성이긴하지만 어째 무척 공감이 가는 상황과
심리더군요,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이 주는 공감은 상당히 좋은 문학적 감성이 아니면 쉽게 독자들에게 다가가
질 못한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만큼 작가님의 문장력이 좋았다는 생각이 들구요, 앞으로도 꾸준히 건필
하셔서 보다 좋은 작품으로 훌륭하고 돈 많이 버시는 작가님으로 거듭나시길 기대해볼께요, 감사합니다^^